치매(癡呆) 아닌 인지(認知) 저하(低下)입니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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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작품

 

엄마의 운동과 여가 활용을 위해 창덕궁, 경복궁, 덕수궁, 종묘는 물론 인사동 화랑가, 전시장, 백화점 등 종로와 중구를 중심으로 안 다녀본 곳이 없다. 방송 일하러 갈 때는 엄마를 모시고 갔고, 내가 집에 있을 때는 신문과 책, 색칠하기를 권했다. 호기심, 학구열 많은 엄마지만 금방 싫증 내는 등 오래 집중하는 걸 힘들어하셨다.

 

 

삼시 세끼 문제

엄마의 삼시 세끼 준비가 가장 시급한 과제였다. 나는 “요리할 시간에 영화 한 편, 책 한 권 더 본다.” 주의로 살아왔고 살아갈 예정이기에, 집에서 한 끼니도 해 먹지 않을 때가 많다. 엄마를 모시고 집 근처 종로경찰서, 현대빌딩, 종로세무서 구내식당을 전전했다. 걷지 못하는 엄마를 모시고 시간 맞춰 가는 게 쉽지 않았다. 일반 식당은 비싸고 불친절한 주제에, 수저와 젓가락 소독도 하지 않을 정도로 위생이 엉망이며, 짜고 매워서 물을 엄청 들이키며 화장실 가느라, 밤에 잠을 자지 못하기에 엄두가 나질 않았다.

 

고혈압과 당뇨로 식사에 신경 많이 쓰는 한 지인도 이리 꼬집으셨다. “우리나라 식당들은 차리자마자 돈 벌 궁리만 하지, 친절한 것도 음식에 정성 쏟는 것도 위생적인 것도 아니어서 3년도 안 돼 망한다는 통계, 당연해. 코로나19가 이런 식당을 더 빨리 싹 쓸어버리면 좋겠어. 음식과 위생과 친절에 사명감 가진 이만 손님 입에 들어갈 음식을 만들고 돈을 받아야 해.”

 

안국역 근처 서울노인복지센터(http://www.seoulnoin.or.kr/)와 혜화역 인근 종로노인종합복지관 (http://www.jongnonoin.or.kr/)을 알게 되었다. 엄마 회원증을 만들면서 내 것도 함께 만들어 구내식당을 이용했다. 엄마는 저렴한 비용에 슴슴한 어르신용 식사를 딸과 함께 먹는다는 걸 반기며, 밥을 싹싹 비우셨다. 집에서는 돈 아깝고 내가 고생하는 게 미안하다며 식사를 안 하려 하셔, 내 속을 무던히 태우시더니.

 

다만 압도적으로 많은 할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식사하는 걸 엄청 싫어하셨다. 심지어 “구역질 나서 한 테이블에서 못 먹겠다.”며 자리를 옮기기도 하셨다. 남자 어르신들께 당부드리고 싶다.“식사 시 남에게 폐 끼치지 않도록 조용히 깨끗하게 식사하고, 식후엔 식탁을 닦는 등, 자리 정돈해주세요.”엄마는 남녀 좌석을 분리하면 밥이 잘 넘어가겠다 하셨는데, 대찬성이다. 그나마 일주일이나 이용했을까, 두 기관 모두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다.

 

서울노인복지회관에서는 코로나19 우울증이 없냐며, 가끔 전화 안부가 오는데, 내 우울증은 내가 알아서 해결할 테니 제발 어르신용 도시락 만들어 판매하라고 건의하곤 한다. 예순 살 넘은 이에게 부엌에 들어가라는 건 정서 육체 학대요, 고문에 다름 아니다. 복지회관 답은 이랬다. 코로나19로 자원봉사자 발길이 끊겨, 저소득층 식사해드리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코로나19가 끝나면 건의는 해보겠다.

 

저소득층 어르신에게 무료 급식 드리는 것, 백 번 잘하는 일이다. 나머지 소득 계층도 매일 쌀 씻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도록, 마을 입구마다 공동체 식당을 운영하거나 도시락 판매를 해주길 소원한다. 내가 보건복지부 장관이 되면 당장 이것부터 실시하겠구만. 온 국민이 부엌에 들어가 가스 냄새 맡으며 시간 낭비하지 않도록, 요리 좋아하는 이들에게 맡기면 되지 않겠나. 일자리 창출 측면에서도, 진정한 복지 국가로 자리매김하는 데도, 이보다 효과적인 사업이 없지 싶다.

 

 

 

데이케어센터 알아보기

나는 엄마와 24시간 함께 하는 데 지쳐 화를 자주 냈다. 야단치면 안 된다, 즐겁게 해드려야 더 악화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실천하기 어려웠다. 엄마 모시다 내가 먼저 저세상 갈 것 같다며 친구들에게 울며 하소연했고, 정신과 상담도 받고 침도 맞아보았다. 미국 유학 중인 큰조카가 이렇게 충고해주었다. “이모, 비행기 사고 나면 나부터 산소마스크 쓰고 다른 사람을 도우라잖아요. 울 엄마도 친할머니 모시는 스트레스로 암에 걸려 먼저 가셨는데, 이모마저 지치면 안 되니, 외할머니를 시설에 보내는 거 너무 어렵게 생각마세요.”

 

내 생활을 유지하며 엄마를 돌봐야 언제 끝날지 모를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겠다 싶어, 데이케어센터를 알아보기로 했다. 집에서 가까운 곳을 중심으로 데이케어센터 다섯 곳을 방문 조사했는데, 협소한 공간에 많은 어르신을 말 그대로 수용하고 있었다. 유치원은 운동장에 놀이시설 등, 아이들이 너른 공간에서 뛰놀 수 있게 하면서, 나라와 가족에게 헌신한 어르신이 종일 머무는 공간은 그토록 좁고 시설이 낙후했다니. 무슨 비밀은 또 그리 많은지 구석구석 둘러보는 것도 싫어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특히 개인이 운영하는 데이케어센터는 도떼기시장 같았다.

 

어머니의 작품

 

운 좋게 관에서 운영한다는 00실버데이케어센터에 자리가 났다. 인지 지원 등급은 일주일에 세 번, 9시부터 5시까지, 그것도 보호자가 모셔가고 모셔 와야 한단다.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오후 4시면 만사 제치고 달려가야 해, 온전하게 내 일을 볼 수 없었다. 주변 충고에 따라 장기요양 등급 재심 청구를 했고, 하느님이 보우하사 지난 4월, 4등급을 받아 지금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아침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점심, 저녁 식사하고 오시고, 토요일엔 점심만 드시고 저녁 5시에 돌아오신다.

 

식사 준비를 안 해도 된다니, 2020년 들어 가장 행복한 사건으로 꼽을만했다. 그러나 재심 청구 절차 과정 시 겪은 마음 고통이 어찌나 심했던지, 지금도 눈물 없이는 떠올리기 힘들다. 우황청심환 먹고 다음 회에 찬찬히 기술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