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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릉답사 두번째, 건원릉

동구릉 - 사적 제 193호
-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 산2의1 - 57만평
- 도성 (경복궁) 동쪽에 있는 아홉 능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왕릉군)
- 태조 이성계 건원릉 포함 모두 9릉 17위의 왕과 왕후 릉이 조영되어 있슴.

- 1855(철종6) 추존왕인 문조의 수릉이 마지막 9번째로 들어오면서 동구릉이 됨, 그전에는 동오릉, 동칠릉으로 불리웠다.

짝수는 음수인지라 동이릉, 동사릉으로 부르지는 않는다.

서삼릉, 서오릉도 마찬가지임.

그래서 2개의 릉이 있는 경우에는 능호를 합쳐서 태강릉, 헌인릉, 선정릉으로 부른다.

 

건원릉은 조선 1대 태조의 능으로, 조선 왕릉 제도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봉분에는 다른 왕들처럼 잔디를 심지 않고 억새풀을 덮었는데, 고향을 그리워하는 태조를 위하여 아들 태종이 고향에서 흙과 억새를 가져다 덮어 주었다고 함.

해마다 한식날 한번, 억새를 베는 예초행사를 갖는다.

 

높고 웅장한 봉분의 아래는 다양한 문양을 새긴 12면의 화강암 병풍석이 둘러싸고 있다.

병풍석에는 열 두 방향의 악재로부터 왕릉을 보호하기 위해 십이지신상을 새겼으며 병풍석 밖으로는 12칸의 난간석을 둘렀고, 난간석 밖으로는 석호와 석양이 네 마리씩 교대로 배치되어 있다. 석호와 석양은 왕을 지키는 영물들로, 밖을 향하여 언제든지 방비할 수 있는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석양은 채홍사 내시, 석호는 경호내시)

 

봉분 앞에는 혼유석이 있는데, 혼유석 밑에는 도깨비가 새겨진 북 모양의 고석 5개가 놓여 있다. 한 단계 아래쪽에는 장명등과 석마 한 필씩이 딸려 있는 문석인이 놓여 있고, 그보다 더 아래쪽으로는 무석인과 석마가 양쪽에 놓여 있다.

 

태조는 생전에 계비 신덕왕후와 함께 묻히기를 원해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貞陵)에 자신의 묏자리를 마련해두었지만 태종 이방원은 부왕의 유언을 따르지 않고, 신덕왕후의 능을 도성 밖 정릉으로 이장해버리고 태조의 능을 지금의 자리에 조성하였다. (1408년 태종 8)

 

태조의 원비이자, 정종과 태종의 어머니 신의왕후는 1391년 조선 건국 1년 전 건강악화로 사망하여 개성에 묻혔으니 결국 이성계는 어느 왕비와도 같이 묻히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