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부부도 행복할까?

- 소통하는 평등한 관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고선주 (서울시 50플러스 중부캠퍼스 관장)

 

 

중년 이후 길어진 삶의 함께 보내는 배우자와의 행복한 관계를 만드는 조건으로 서로 소통하고 평등한 관계로의 전환을 이야기한다. 50+ 부부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소통과 평등이다. 부부는 인생후반전에는 의사결정을 위한 '조직의 언어'가 아니라 대화과정을 즐기는 '공감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 또한 부부의 평등성은 50+이후 삶의 질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요인이다. 부양자로서의 남성과 양육자로서의 여성으로 분리된 성역할을 고수했던 부부라면 더욱 더 이 시기에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혼자서 보내기보다 서울시 곳곳에 위치한 캠퍼스와 센터를 이용해볼 것을 권한다.

 

 

1970년 62.3살에 불과했던 기대수명이 2015년 82.1세로 무려 20살이나 늘어났다. 2030년 출생하는 여성이라면 기대수명이 전 세계에서 가장 긴 90.8살로 기대되고 있어, 지금 우리는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더 오래 살게 되었다. 이러한 수명의 증가는 대부분 중년 이후 노년기의 삶이 길어지는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사람들이 경험하는 중년 이후 가족의 시간도 그대로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가족 중에서도 배우자와의 관계는 함께 있는 시간도 길어지고 그 관계도 변화하면서, 성인 이후 삶의 질을 좌우하는 가장 강력한 관계 중의 하나로 점점 더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50+에게 배우자는 인생 후반전 가장 중요한 삶의 파트너이지만 좋은 관계의 유지가 쉽지 않은 그야말로 ‘가깝고도 먼’ 사이다.

 

사랑이 최고조에 이른, 소위 관계의 최고 정점에서 ‘결혼’이라는 배우자 선택을 하지만 ‘부부’라는 이름으로 묶이고 나면 관계는 변화하기 시작하다가 자녀가 태어나면 ‘부모’라는 역할에 우선순위를 내주게 된다. 특히 한국의 부부는 자녀 양육을 함께 담당하는 일종의 양육 동업자로서 부모 역할을 우선하기 때문에 동업자 역할로서의 부부관계는 자녀의 대학 진학 이후 목표상실을 경험하게 된다. 예전 부모세대는 지금과 달랐다. 자녀 수가 많고 기대수명도 60살 내외이어서 부모로서의 소임을 다하고 나면 몇 년 이내에 한쪽의 배우자가 사망하는 경우가 많아 중년 이후의 부부관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수명은 길어지고 자녀수는 적어지면서 50+이후의 가족의 대부분은 자녀독립 이후에 부부만 남는 시간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결국, 가족 안에 부부관계가 가장 중요해지는 시기는 신혼이 아니라 50+시기이다. 그러나 이전세대는 경험하지 못했고 그래서 가족 안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역할모델도 없고 학습도 되지 않은 이 새로운 배우자와의 관계는 요즘의 50+에게는 매우 낯선 모습이다. 이성으로서의 매력이 우선하지 않는 관계, 부모 역할의 비중이 감소한 관계에서 그야말로 현재 한국 사회 50+부부는 좌충우돌 중이다. 이 좌충우돌이 얼마나 어려운가는 최근에 보이는 졸혼의 유행과 황혼 이혼 증가를 통해서 증명된다.

 

최근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트렌드가 ‘졸혼’이다. 이 졸혼이란 단어는 일본 소설에서 처음 등장했는데 유명연예인이 방송에서 고백하면서 급물살을 탔고 최근 여러 드라마에서 하나의 대안으로 그려지고 있다. 실제 가정법원의 이혼조정에서도 졸혼으로 조정되는 결과도 많이 있는 편이다. 1990년대만 하더라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던 신혼 이혼을 제치고 최근 황혼 이혼이 전제 이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커지고 있는데 이러한 이혼으로 가기 전 혹은 다양한 이유로 합리적인 대안으로 졸혼을 받아들이고 있다. 실제 캠퍼스를 방문하는 50+세대의 졸혼에 대한 고민을 읽어보면 ‘종료한다’ 라기보다는 행복한 후반전 삶을 위해 배우자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으니 ‘타협한다’ 쪽에 더 가까워 보인다. 부모의 부부관계와도 다르고 젊은 세대의 부부관계는 어쩐지 낯설고 그래도 변화가 필요한 건 알겠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인 셈이다.

 

그럴 때 관장으로서 드리는 조언이 ‘부부는 동무다’라는 개념이다. 지금의 세대는 중매보다는 대부분 연애 혼을 선택해서 결혼한 사람들로 부부의 시작은 애인이었다. 애인이란 사랑이라는 정서적 측면에 기울어진 선택, 그리고 신체적 친밀성을 거쳐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역할이 우선시되는 부모로서의 시기를 경험한 것이다. 그래서 부모 역할의 비중이 감소하고 나면, 어쩐지 사랑이란 단어는 어색한 배우자와 다시금 친밀한 관계를 복원하는 것을 낯설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50+의 부부는 친밀성이 중요하다고 해도 이는 젊은 청춘 시절의 애인보다는 동무에 가깝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동무라고 부를까?

 

둥무는 무언가를 함께 하는 사람이고 서로 간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사람이다. 부부가 동무라는 뜻은 부부는 늘 함께하기보다는 서로의 독립 공간과 독자적인 영역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때로는 함께하지만 함께 있지 않은 것에도 익숙하다. 50+의 삶에서 부부관계가 다시금 중요해졌다고 해서 이것이 과거의 친밀한 관계로 회귀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간 수십 년의 시간을 통해 역할의 과정을 거친 새로운 관계로 재부상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결혼 기간 동안 부부는 역할과 관계의 시소타기를 경험하게 된다.

 

다음의 그래프를 보면 더 잘 이해가 될 것이다.

 

 

<그림 1> 결혼 지속 연수에 따른 부부의 관계 및 역할 중요도 변화

자료 : 고선주.(2015). ‘부부관계 만족; 평등에 기반한 관계와 역할의 시소타기’, 최연실 외 15인. 「한국 가족을 말하다: 현상과 쟁점」 240p. 하우출판사.

 

 

그래프의 x축은 결혼 지속 연수이고 y축은 중요도이다. 이 그래프에서 관계와 역할이 교차하는 시기는 두 번 나타난다. 결혼 초기 첫 자녀의 출생에서 역할이 관계 중요성을 넘어서는 교차 시기를 경험했다면 자녀 독립 이후는 다시금 역할보다 관계가 부상하는 2차 교차기를 경험하는 시소타기를 하게 되는 것이다. 단지 이 관계가 신혼기와 차이가 있다면 역할 자체가 비중이 거의 없던 신혼기와 달리 50+ 동무로서의 부부는 역할이 있는 관계란 뜻에서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50+ 부부관계를 좋은 동무, 친한 동무로 잘 지내는 방법은 무엇일까? 가장 결정적인 두 요인을 정리하자면 바로 ‘소통’과 ‘평등’이다. 부부가 동무라고 할 때 소통이 잘되는 동무가 바로 말동무인 것이다. 즉 50+이후 부부관계의 핵심은 서로에게 말동무가 되어주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과 말동무를 하고 싶어라 할까? 말을 잘 하는 사람이 아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에게 강의는 들으려고 할지언정 말동무가 기대하질 않는다. 말동무의 핵심은 말을 잘하는 것이 아니라 말을 잘 듣는 것이다. 또한, 상대가 말을 잘 들을 수 있도록 말을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말’에서 남녀 간의 성별 차이가 발생한다. 서울시 은퇴 평균이 53세이니 대부분의 50+는 은퇴를 경험했거나 그즈음의 연령층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이 경험한 조직에서의 언어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의사결정을 위한 언어’였다. 효율적인 의사소통을 위해 도구로써 의사소통하고 두괄식 표현을 사용하며 정확한 판단을 위한 정보를 요구한다. 조직 생활을 잘 하기 위해서 훈련받고 사용해왔던 단어와 달리 은퇴 이후 새로운 관계 설정을 위해서는 공감의 언어와 관계의 언어를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전환의 요구를 더 많이 받는 쪽은 남성이라고 볼 수 있다.

 

‘조직의 언어’가 아니라 ‘공감의 언어’를 습득하고 소통의 즐거움을 나눌 수 있어야 한다. 결정을 위한 도구로서의 언어가 아니라 소통하기 위한 과정의 언어를 나누어야 하는 것이다. 이 나눔의 언어를 위한 기본적인 방법은 상대에게 공감하는 것과 더불어 내가 공감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문제 해결을 위한 질문이 아니라 그저 상황과 감정을 이해받기 위한 설명을 하는 경우에조차 답을 주거나 혹은 ‘나더러 어쩌라고?’ 하는 반응은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만든다. 공감이란 상대의 정서를 이해하는 것이지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면 된다. 또한, 중요한 것은 공감하고 있음을 반드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좋은 공감의 방식은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대화에 집중하는 것, 상대의 말 중간중간 감정의 추임새를 넣어주는 것(그렇구나.. 아.. 등의 긍정적 반응)이다. 때로 상대의 어깨를 두드리는 등의 스킨십도 매우 유용하다. 그러니까 말은 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한 중요한 것은 이때 표현하는 언어의 주인이 반드시 ‘나’여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실종된 언어는 상대를 화나게 할 뿐이다. 당신으로 표현되는 책임추궁보다는 나로 표현되는 주인 있는 언어 사용이 필수적이다.

 

두 번째 50+부부의 성공 요인은 평등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 평등이 절대적인 평등이 아니라 주관적인 평등이다 보니 많은 경우 비교 대상을 기준으로 해서 평등과 불평등을 느낀다는 점이다. 부양자로서의 남성과 양육자로서의 여성으로 이분화된 성 역할에 익숙했던 부부일수록 이 두 역할의 비중이 감소한 50+ 부부관계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은퇴를 기점으로 부양자 역할이 변화하고 자녀독립을 기점으로 양육자 역할이 달라진 남녀는 부부 후기의 평등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른 것이다. 과거의 자신이나 혹은 아버지 세대나 선배세대의 남성과 비교하는 남편에게는 자신의 가사노동분담이 매우 지각하여 평등하다고 느끼는 반면, 남편과 아내라는 관계에서 두 사람의 가사노동을 비교하는 여성에게는 여전히 한쪽으로 편중된 불평등을 느끼는 것이다. 이 경우는 객관적인 지표로 서로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때 유용한 자료는 바로 통계청의 생활시간조사 분석이다. 2014년 생활시간조사결과에 따른 가사노동시간은 50대의 경우 남성 하루 33분 여성 152.9분이고 60대의 경우 44.3분과 174.5분으로 매우 남녀간의 불균형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남성의 노동시간이 많다는 점을 고려하여 노동시간과 가사노동시간을 더해 비교해 봐도 남성보다 여성이 50대는 하루 85.6분, 60대는 하루 84.4분의 노동을 더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50+부부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남성의 가사노동 참여가 필수조건인 셈이다.

 

<그림 2> 성별과 연령에 따른 취업자의 생활시간 구성

 

물론 이러한 가사노동분담만이 평등의 지표는 아니다. 역할에서의 분담만 필요한 것은 아니고 앞선 의사소통, 부부갈등 등에서 상호존중이라는 원칙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시간을 지표로 확인하는 것은 수십 년을 함께 해온 부부의 경우 일상적인 생활에서 습관이든 아니면 방법을 몰라서건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을 영위하는 한 결코 이들은 평등한 동무가 될 수 없고 이것이 실제 노년에 서로에 대한 부양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50+에 필요한 것은 지위와 역할의 무거운 갑옷을 벗고 가족이든 친구든 친밀한 관계를 맺어가야 하는데 일상적인 가사를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을 유지하는 한 실제로 평등한 관계를 맺는 것은 어려워진다. 또한, 일상의 삶을 나눈다는 것은 가족을 넘어 이웃, 친구와 친밀한 관계를 맺는 가장 중요한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생존에 필수적인 밥을 나누는 행위는 그 타인과 친해지고 타인의 존재를 배려하는 가장 기본적인 행동방식이고 표현이다. 따라서 남녀를 불문하고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일상의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그리고 이 영역에서 더욱 취약한 것이 현재의 한국 남성인 셈이다. 따라서 남성의 더 많은 변화와 노력이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을 배가할 수 있는 기폭제가 있다면 바로 배우자의 응원일 것이다.

 

특히 50대에 경험하는 은퇴는 늘 ‘알고는 있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충격적이며 늘 상상했던 것보다 너무 빠르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다면 이 은퇴를 개인의 은퇴로 둘 수 있을까? 가족이 정서적, 경제적 유대를 지닌 공동체라면 이 은퇴는 당사자 한 사람만의 일일 수는 없다. 배우자의 직업 유무와 상관없이 한 사람의 은퇴는 가족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특히 부부관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를 남편의 은퇴 혹은 아내의 은퇴로 개인이 해결해야 할 적응과제로 두기보다는 가까운 이의 응원과 지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건인 셈이다. 그간 가족을 위한 수고를 인정하고 응원하며 남은 후반전을 새롭고 멋지게 시작할 수 있도록 잠시 안식년의 시간을 주는 것도 방법이다. 다행히 서울시민이라면 곳곳에 있는 50+캠퍼스와 50+센터를 이용해보는 것을 권한다. 이곳에서 잠시 자신을 되돌아보고 친구를 얻고 후반전 보람을 찾는 새로운 일에 대한 모색과 도전을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다. 현재는 남성보다 여성이 상근으로 근무하다 퇴직하는 비율이 낮아서 대부분 남편의 은퇴를 가정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여성의 은퇴 역시 대세가 될 것이다. 이때 서로의 은퇴를 응원해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직장에서의 은퇴를 경험하는 사람이라면 바로 재취업을 고민하기 전에 먼저 가정으로 재취업을 고민해보도록 하자. 또한, 배우자가 전업주부였다면 직장에서의 은퇴와 함께 배우자의 은퇴 역시 함께 허락하자. 일단 하나의 주 역할에서 부부 모두 은퇴한 이후 두 사람이 함께 다시 파트타임으로 재취업하는 것이다. 이때 가정으로 다시 재취업한다면 두 사람의 조건이 같을 수 없을 것이다. 능숙한 숙련공과 초보 인턴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때 인턴은 일정 기간 인턴십 기간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 일종의 주부 인턴십이다. 인턴십의 의미는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그리고 경험의 시간을 허락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사수의 지도가 필수적이다. 익숙하지 않음을 비난하지 말고 격려하고 지원하는 과정이 필수적인 셈이다. 격려는 최종결과를 놓고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과정을 보며 지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현재 부족해 보이더라도 도전에 대한 용기를 인정하고 지지하는 것은 한 번의 퇴장을 경험한 50+에게는 무엇보다 필요한 지원이 된다. 배우자가 없어 이미 혼자 사는 방법을 터득하고 있는 사람보다 많은 것을 배우자에게 의지한 사람이라면 더욱더 이 주부 인턴십은 필수적일 것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지낸 배우자는 나의 지난 시간을 이해하고 있고 서로가 격려될 수 있는 말동무이어야 한다. 그 사람과 서로에게 힘이 되는 삶의 동무가 될 수 있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나머지 시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질 것이다. 이제부터 펼쳐질 후반전을 위해 관계를 리뉴얼해보자.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