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들로 잔치판을 벌였죠. 누구든 오셔서 함께 나눠요!”

단가와 축사와 낭독극과 대화로 풀어낸 생로병사 <오이지 북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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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은 결코 늙거나 낡지 않는다 말들은 가슴에 남아 씨를 틔운다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이웃들이 쓴 책으로 여는 출간기념회는 처음이에요!” 하고 참여자가 말했다. 책을 낸 필자들도 마찬가지. 그들 역시 책을 내기는 처음이었다. 심지어 활자화된 책이 자신의 첫글인 사람도 있었다. ‘출간기념회로 알고 왔지만, 이 행사의 이름은 <오이지 북토크>. 동네 마장동의 협동조합 고기연구소도 이런 북콘서트는 처음이었다. 이 모든 초짜들을 위하여 기꺼이 공간을 빌려주고, 행사를 알려준 곳은 성동50플러스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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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자의 첫멘트와 끝멘트는 책에서 가져왔다.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사회자로 나선 이는 성동구도시재생 코디네이터 김영희 씨. 그는 책의 한 구절로 북토크를 시작했다.

우리는 다정함으로 대처하고 동시에 올바른 방법으로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삼백 번의 다정함, 스물아홉 번의 이해. 두 부부가 여전히 안녕하기를!” 오이지 책의 한 구절로 인사를 대처합니다. 우리의 삶도 안녕하기를, 우리의 이 행사가 안녕하기를. 반갑습니다.”

동네서 이웃으로 지내는 이현숙 구의원이 오시긴 했지만, 그의 인사는 원래 계획엔 없었다. 오이지에 글 <오이지>를 썼던 김영진(그는 저자 소개에 마장의, 마장을 위한, 마장 토박이로 적었었다) 씨의 아들 선우가 축사를 했다. 그는 쓰는 사람과 나우시카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북토크의 자리에는 꼭 들어맞는 인사말이었다.

아버지처럼, 8인의 필자분들 모두 쓰는 DNA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쓰시는 분들이기 때문에, 쓰지 않으면 안 되는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나우시카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이타카로 향하고 거기 섬에서 자신이 겪은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나우시카입니다. 여러분은 나우시카들이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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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사 오이지를 쓴 작가 김영진 님의 아들 선우 씨. 그는 말하는 사람 오디세우스와 듣는 자 나우시카를 이야기했다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협동조합 고기연구소의 BBC(북블로그클럽)책쓰기 프로젝트로 출간된 이 책의 출판사는 돌멩이국. 책 제목 오이지엔 오이지돌이 나온다. 어찌 보면 오이지는 돌멩이로 만든 국일지 모른다. 이런 우연을 두 번째 축사자가 짚어주었다.

오이지를 담글 때 오이를 눌러주는 역할이 끝나더라도, 이 오이지 돌은 반려돌로 남아 우리의 애기를 들어 주는 또 다른 쓸모를 가지게 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이 오이지 돌을 찾느라고, 모으느라고 애쓰신 어머니께,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그런 말씀을 꼭 드리고 싶었고요. 이 오이지 책도 늘 새 책은 아니잖아요. 그런데 헌책이 아니라 반려책이 되어서 많은 사람들의 손에 자주 들려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바래봅니다. 오이지돌을 반려돌로 보는 것처럼 다르게 보기로 세상을 보고 그 시각으로 글 쓰는 삶, 기록하는 삶, 성찰하는 삶을 우리 모두 살았으면 좋겠습니다.”-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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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돌멩이국은 책오이지의 오이지 돌과 인연이 있다 축사자 책이 반려돌처럼 반려책으로 남았으면 하고 기원했다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오이지BBC책쓰기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졌다. ‘모두 책을 쓰자는 것이 이들의 최종 목표’. 그러기 위해서는 전술이 필요한데, 그게 블로그였다. 누구든 쉽게 개설하고 쓸 수 있는 블로그는 쓰여진 자리요, 누구에게나 열린 출판의 세계였다. 클럽(동아리)을 이룬 이들이 서로 찾아가서 보아주고 격려해주면, 그 힘으로 다음 글이 꽃처럼 피었다. 그 사람들이 북토크에 참여했다.

 

조은자 작가는 오이지가 대표작이 된 연유를 설명했다.

그 음식은 50플러스 이상의 세대라면 함께 공감할만하죠. 공감대 형성이 됐고요. 요즘 친구들은 무쳐서 줘야만 먹지만. 우리는 거기 물도 넣고, 식초도 좀 넣고, 매운 고추도 넣고, 파도 송송 띄우고 먹잖아요. 우리 다 같이 오이지를 맛있게 먹읍시다.”

이혜숙 작가는 거의 생애 처음 순직하신 경찰관 아버지 이야기를 썼다. <보고싶은 얼굴>에 대한 이야기. 왜 그렇게 오랫동안 아버지를 꼭꼭 감추어만 두었을까? 너무 아픈 기억이어서. 남정인 작가도 가슴에 묻었던 딸 이야기를 이 책에 적어두었다.

“<이야기 주머니>라는 이야기 아시죠? 설화 같은 구전인데요. 이야기를 갖고만 있으면 그게 자신을 해치는 역할을 한 대요. 저도 10년이나 지나서 얘기하게 되었죠. 죽음은 굉장한 스승이더라고요. 초등학교 6학년 딸을 잃었으니 빨리 겪었지만, 그 죽음은 제게 세계관이 바뀐 계기였어요. 이야기들을 내놓고 나누는 게 필요하더라고요. 기억을 갖고 와서 해석하고 미래로 가는 거니까요. 삶의 재료가 되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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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이 자리에서 비로소 아버지가 누군지 알게 됐다, 아버지는 작가다.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박연아 작가는 친구들과 친지들에게 책을 선물해 주었다. 선물을 받은 먼 곳 사는 친구에게선 답장도 왔다. 나물을 보내오기도 했다. 지하철을 타고 가면서 책을 다 읽었다는 친구는 연아를 다시 봤다고 했다. 글은 이렇게 삶을 다시 잇고 만드는 힘이 있다. 연아 씨의 말.

조금만 시간을 내서 책을 보고 가까이하고, 시간을 내서 글을 쓰기 시작하시면 누구나 하실 수 있다는 말씀을 전하고 싶어요.”

조은자 작가는 고전 프랑켄슈타인뱀파이어이야기를 보탰다. 그 작품들은 열여섯 살, 스무 살의 초보 작가가, 같은 자리에서 써낸 책들이었다. 필요한 것은 그저 글 쓰는 시간. 재료와 구성의 힘은 글을 쓰려는 그 사람 안에 이미 들어있다는 것이 작가님들의 한결같은 조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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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토크에 나선 작가들 조은자님이 글쓰기가 누구나의 것이 될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왼편부터 이혜숙 남정인 박연아 조은자 조충영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관객들의 시간도 있었다. “하인리히의 법칙을 차용해서 적었던 삼백 번의 다정함, 스물아홉 번의 이해!’ 그런데 괄호 안에 들어갈 한 번의 ○○은 무엇이냐?’는 질문이 나왔다. 꼼꼼하게 이들은 듣고 있던 것이다. 관객 공옥희 님은 대신 답했다.

제가 유치원하고 어린이집에 가는 이야기 할머니입니다. 코로나 때는 못했고요. 10년 차인데. 아이들과 헤어질 때, 프리 허그를 해요. 4, 5세 영아들은 정말 예쁘게 끌어안아줘요. 그렇게 하고 뒤돌아서면 발걸음이 엄청 가볍습니다. 7세 반에서는 실수하면 할머니 공부 안 해왔죠!’ 해요. 그러면 너희들 눈 쳐다보느라, 까먹었어!’라고 해요. 그러면 아이들이 용서할게!’ 해요. 그런 날은 더 분발해야지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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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는 콘서트가 됐다. 청춘가와 밀양아리랑에도 많은 사연이 담겼다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태풍 카눈이 지난 자리에서 벌어진 이날의 북토크는 마장 풍물패를 이끄는 박용철 님의 밀양아리랑과 각설이타령 공연으로 마무리됐다. 태풍이 지난 자리는 폐허만이 남지는 않는다. 태풍은 바다를 뒤섞고, 땅에는 꽃과 나무들의 씨앗을 흩뿌려 놓는다. 이날의 수많은 말들은 사람들의 가슴에 내려가 뿌리내리고 또 싹도 낼 것이다.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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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들과 주최자인 고기연구소 사람들이 함께 섰다 성동50플러스에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

 

 

 

 

시민기자단 원동업 기자(iskarma@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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