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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항상 앞서간다’는 말이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진다. 대한민국에서 사회적 변화를 가장 빠르게 인지하고, 그것에 대응하는 행동도 항상 빠르다. 이슈에 대한 정치적 민감도가 첨예하여, 그것이 대시민 정책으로 현실화될 가능성도 매우 높은 도시이다. 당연히 지방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풍부한 인적‧물적 자원의 뒷받침도 한몫한다. 지난해 12월에 발표된 <서울런4050>은 기존 중장년 정책에 40대 지원까지 새로 포함시키며, 시민의 전 생애 주기에 맞춰 동행하는 서울시정의 명성을 높이고 있다. 부산에 거주하고 있는 50+세대의 한 사람으로서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서울런4050> 정책은 생애재설계 및 인생이모작 지원에 더해 40대의 직업역량강화교육, 디지털전환교육 지원을 강조함으로써 시민들이 생애 주기상 더 빠른 단계에서 노후준비를 시작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또한 4050세대들의 직업훈련, 대학학점 연계 자격 인증과정, 기업연계 일자리 지원, 창업 및 창직 지원 강화, 소상공인 디지털 정착 지원 등 일자리 확보를 위한 소위 ‘출구전략’을 강화하고자 하는 포부가 보인다. 인생전환지원센터 및 중장년 활력행복타운 등의 계획을 세움으로서 기존의 중장년 공간 확장도 추진하고 있다.

이번 서울시의 4050정책을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각은 다양할 수 있다. 정치적 시각의 차이로 해석될 수 도 있고, 중앙정부 정책 추진의 여파로 해석될 수도 있고, 그동안 추진된 서울시 50+사업의 한계를 보완하는 차원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한 해석을 넘어서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바야흐로 이제 40대부터 60대 사이의 중장년층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우리 사회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주된 일자리에서 퇴직하여 방황하고 있는 전환기 중장년들에게 ‘갈 곳’과 ‘할 일’을 마련해주는 정책이 매우 시급한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서울은 타 지자체와 달리 이러한 인식에 선도적이고 실제적으로 대응해 왔으며, 앞으로도 먼저 중장년 정책을 안정된 궤도 위에 올려놓을 것이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서울런4050>은 이러한 정책 로드맵의 새로운 버전을 시민들에게 선보인 것이라 생각된다.

주지하듯이 우리 사회는 전 생애 주기에 걸쳐 촘촘한 복지를 지향해 왔지만, 40대와 50대는 아무도 정책 대상으로 보지 않는 사각지대였다. 소득 구조에서, 사회관계 및 지위에서, 심지어 생물학적 차원에서도 아직 밀리기 싫어하는 그들은 당연히 프라임에이지(prime age)였다. 그런데 이들을 왜 도와주어야 하고, 이들에게 왜 공공재원을 투여해야 하는가? 핵심적으로는 인간의 수명 연장과 고령화를 대응하는 정책적 요청이 그 이유일 것이다. 건강 수명이 증가하면서 노인이고 싶지 않은 노인들이 너무 많고, 국가는 노인복지 예산으로 인하여 질식당하고 싶지 않는 욕구가 점점 팽배해질 것이다. 인생의 허리에 있다가 곧 법정 노령인구로 들어갈 4050세대의 삶의 방식(life style) 변화가 주목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이들이 계속 생산적이면 얼마나 좋을까? 이들이 건강하게 오래 살면서 국가의 노인복지예산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 얼마나 좋을까?

서울은 우리 사회에서 처음으로 50+세대를 위한 재단과 서비스 거점기관들을 개소하여 이미 지자체의 독특한 서비스 모형을 보여 주었으며, 이번에는 40대까지를 아우르며 중장년 정책의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58년 개띠로 대표되는 ‘콩나물시루’ 출신 베이비부머들의 은퇴 문제를 넘어, 장기적으로 우리나라가 중장년에 대한 정책 개념을 어떻게 가져가야 하는지 새로운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고 본다. 전환기 중장년 지원 정책은 다른 취약계층을 위한 복지정책과는 달리, 과거나 지금이나 표적집단 효율성을 가지기 쉽지 않고 결실을 거두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영역이다. 그렇지만 이번 <서울런4050> 정책 제시는 서울뿐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의 중장년 정책이 체계 있는 모양새로 정착되어 그 정책 개념과 서비스 정체성이 ‘안정화’되는 데 크게 이바지했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 그러한 바람을 담아 몇 가지 희망사항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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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40~60대에게 지원되는 정책투자가 어떤 리턴(return)을 가져오는지, 국가의 노인 부양과 복지 부담을 얼마나 경감시킬 수 있는지, 장기적이고 실증적인 효과 검증 연구를 이제 시작해야 한다. 전환기 중장년 정책이 쓸데없는 세금낭비란 비판을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50+정책의 기대효과는 소위 제3기 연령대에 인생이모작을 잘 하도록 만들면, 제4기인 75~100세 동안에 이들이 건강하고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지향성이 큰 정책이 ‘효과적 노후준비 지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검증연구를 해야 한다.

둘째, 중장년의 인생이모작은 개인의 행복을 넘어서 ‘사회적 이모작’으로서의 의미를 가져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중장년 당사자들의 각성이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인생 선배로서 후세대 및 사회구성원들에게 공헌하는 역할과 비전을 자신의 이모작 추구에 담고 있어야 한다. 자녀와 가족에게 몸 바쳐 희생적인 삶을 살아온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타인과 그 자녀들의 고통에 동감하고 동참하려는 사회적 의지를 키워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중장년 당사자의 삶의 방식 변화가 우리 사회 전체의 문화적 변화를 추동할 수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특히 안정된 노후생활을 가로막는 문화(큰 결혼식, 희생적 자녀부양 등)를 수정하려는 집단적 노력은 젊은 미래세대의 노후준비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서울의 4050정책에서 이러한 인식의 전환과 관련된 교육사업도 성공적으로 추진되기를 바란다.

셋째, 표적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표적 효율성은 정책이 표적하는 대상자들이 실제로 수혜를 받는 사람들에 해당되는가 하는 그 비율을 말한다. 중장년 인구는 대체로 40-64세 사이로서 연령 스펙트럼이 넓게 지정되고, 직업배경 및 사회경제적 요구(needs)도 다양하여 정교하게 표적하기 쉽지 않다. 직업역량 및 디지털 교육, 일자리 지원으로 대표되는 이번 <서울런4050>에서는 어떤 대상이 우선적으로 표적되는지 하위집단 규정(성별, 직업배경, 이모작 방향 등)이 조금은 좁혀져야 할 것이다. 특히 경제 및 소득수준에 바탕을 두는 표적집단 구분도 필요한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 필자는 전환기 중장년 지원정책은 보편복지 개념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보지만, 지금까지 경험상 비(非)저소득층이 먼저 서비스의 문을 두드리고 그 혜택을 보는 경향이 있어 저소득 취약 중장년들이 소외된다는 비판이 종종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적으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이 공공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접근이 빠르고, 그들의 디지털 역량도 상대적으로 높다고 본다. <서울런4050> 추진 과정에서 서비스 및 프로그램의 참여자들의 인구사회적인 정보를 세밀히 집적시켜 차후 표적집단 효율 개선에 활용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서비스 기관 및 부서들을 물리적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킹 혹은 원스톱 서비스 추진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본다. 필자의 식견이 매우 부족하지만, 중장년 서비스 지원도 온라인 플랫폼 시대에 맞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모작 욕구를 가진 사람들과 이들에게 필요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해줄 수 있는 영리·비영리 기관들이 자연스럽게 몰려들어 조우할 수 있는 플랫폼 개발에 기술적 투자를 해야 할 것이다. 초봄의 꽃샘추위를 이기고 만개하는 꽃처럼, <서울런4050> 중장년 지원 정책이 꼭 성공하기를 희망해본다.

* 본 원고의 내용은 연구자의 개인적인 견해이며, 서울시50플러스재단의 공식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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