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공익을 만나다]②“과거의 영광 내려놓고 새로운 세계에 적응해야 합니다”

 

‘시니어, 공익을 만나다’ 시리즈 첫 번째 편, 공익 활동가로 변신한 시니어들

잘나가는 사업가에서 에너지빈곤층 돕는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이 된 김상윤 씨 인터뷰

 

은퇴 후 삶이 아득하다. 100세 시대에 퇴직을 해야 하는 5060세대가 그렇다. 준비 없이 막상 닥치니 불안하고, 일을 더 하고 싶지만 일자리는 턱없이 부족하다. 1955년에서 1963년 사이 태어난 전후 베이비붐을 이뤘던 ‘50+세대’의 현주소다. 많은 전문가들은 100세 시대에 걸맞게 은퇴 공식과 고용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더나은미래는 시니어 일자리 문제를 들여다보는 기획 시리즈 ‘시니어, 공익을 만나다’을 준비했다. 첫 번째 편은 ‘공익 활동가로 변신한 시니어들’이다. 은퇴 후 사회적 가치 창출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는 시니어 3명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김상윤(63) 에너지돌봄 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미 젊었을 때부터 직업을 서너 번 바꿨을 정도로 ‘혁신’을 즐긴다. 요즘 에너지돌봄 사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지만 한창 일하던 30대 시절로 돌아간 느낌이라며 즐거워하는 김 이사장. “변화에 대한 용기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를, 지난달 26일 50+재단 서부캠퍼스에서 만났다.

 

◇“내 꿈 실현해 주는 곳이라면 어디든 갑니다”

 

‘인큐베이터 후두(플래스틱 덮개)’를 만드는 중소기업 CEO였던 김씨는 2006년 회사를 매각한 후 기술이사로 2년동안 재직하다 2008년 은퇴했다. 업계에서 알아주는 전문가였기에 은퇴 후에도 찾는 곳이 많았다. 한국아크릴협회에서 2년동안 전무이사도 했다. 그런데 허무했다. ‘내 인생이 이렇게 저무는 것인가.’ 주도적으로 뭔가를 하지 못하고 조언이나 해주는 뒷방 늙은이가 된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지난달 26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50+재단 서부캠퍼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김상윤 이사장. 50+재단은 시니어 창업 및 취업에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과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박민영

“내가 주도하는 일을 해보고 싶었어요. 닥치는 대로 배웠죠. 기술사, 컴퓨터 기술… 은퇴 후 딴 자격증만 6개나 돼요.”

김 이사장은 자격증을 들고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에너지빈곤층을 도울 사람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 20여년 동안 제조업에서 일한 경력과 관련 자격증도 보유한 그는, ‘에너지 설계사’에 딱 맞는 인물이었다. 2014년부터 10개월간 서울시에서 ‘에너지 설계사’로 일하며, 에너지빈곤층의 집을 방문해 LED 전등 교체, 창문 단열, 실태 조사 등을 했다.

에너지 설계사 일은 그가 제2의 인생을 찾게 한 열쇠가 됐다. 그는 “에너지 설계사로 활동하면서 이 서비스의 사회적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됐다”면서 “같이 일했던 에너지 설계사들과 함께 에너지돌봄 사회적협동조합(이하 에너지돌봄)을 조직했다”고 설명했다.

2015년 창업한 ‘에너지돌봄’은 에너지빈곤층을 위한 창문단열, 고효율조명등 교체, 고효율저비용의 에너지 절약형 제품 개발 등 서울시 에너지 복지 지원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는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에너지 빈곤층이 정말 많아요. 서울에만 12만명입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단독으로 케어하기 힘들 정도죠. 이럴 때 민간이 함께 한다면 큰 힘이 되지 않겠어요? 뜻이 맞는 에너지 설계사 11명을 모아 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왜 사회적협동조합이냐고요? 에너지빈곤층 지원은 공공성이 강한 사업이잖아요. 영리 목적이 어느 정도 있는 벤처나 사회적기업보다는 비영리 성격이 강한 사회적협동조합이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지난해 여름, 에너지 취약계층 가정에 방문해 수리를 하고 있는 김상윤 이사장. ⓒ김상윤

협동조합 설립을 마음 먹은 뒤 그는 닥치는 대로 관련 서적과 논문을 뒤졌다. 주말에도 거르지 않고 국회도서관에 출근했다. 어찌 보면 대표이사 시절보다 더한 열정이었다.

김씨는 “내 꿈을 실현하는 데 도움만 된다면 못할 것이 없었다”면서 “사회적협동조합, 창업과 관련된 교육이 있다고 하면 어디든지 가서 수업을 들었고, 관련 전문가, 재단을 찾아다니며 가르쳐 달라고 적극 요청했다”고 말했다.

지금도 배움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김 이사장. 얼마 전엔 서울시정학교 수업도 듣기 시작했다. ☞서울시정학교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시의 ‘씨티 웤스 아카데미(City Works Academy)’를 벤치마킹한 것으로, 시 간부 등이 아카데미 참가자들에게 시 정책 및 서비스에 대해 강의하고, 아카데미 참가자들은 졸업 후 시정현장에 참여해 자신들의 식견을 활용한 정책가로서 활동하게 되는 사업.

에너지돌봄이 지역복지센터, 지자체, 서울시 등의 공모 사업에 다수 입찰하는 등 성과를 꽤 내고 있지만 갈 길이 멀기에 부지런히 배우겠다는 의지에서다. 

“지금은 규모가 커져 조합원이 31명으로 늘어났고 이제 2년차가 넘어 에너지 복지 업계에선 어느 정도 안정적인 사회적협동조합이라고 인식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조합원 100명을 목표로 하기에 더 많이 공부하고 익혀야죠. 배움에는 끝이 없는 것 같아요.”

 

◇50르네상스로 가는 길…‘과거의 경험은 살리되 영광은 잊어라’

 

그에게 ‘이직’은 낯설고 힘든 일이 아니다. 청년 시절부터 변화에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는 청년 시절 삼성물산의 핸드백 제조 및 수출 관리자로 근무하다 돌연 회사를 그만뒀다. 당시 ‘해가 지고 있는’ 핸드백 제조 사업이 아닌, 전도 유망한 분야에 도전해보고 싶었기 때문. 그래서 택한 곳이 아크릴 어항을 만드는 중소기업이었다. 국내 고급어항시장이 급격히 성장할 때라 매출은 쭉쭉 올라갔다. 몇 년간 일을 해보니 또 다른 세계가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바로 이른둥이 케어에 사용되는 인큐베이터 후두 제조사업이다. 당시 국내에서는 인큐베이터 후두를 생산하는 곳이 없었다. 상당히 높은 기술력이 요하기 때문. 김 이사장의 도전 정신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36살에 창업을 했어요. 남들은 ‘잘 다니던 회사 그만두고 뭐 하는 거냐’ 손가락질 했는데 사업한지 얼마 안돼서 대박이 났지. 국내 유일 인큐베이터 후두 제조회사였어요. 제약회사인 종근당의 주요 협력업체가 되어 대형 병원 여러 곳에 납품을 했습니다.”

그런데 2006년 회사를 매각하고 대표이사 자리에서 내려온다. 파격적인 결정에 직원들은 크게 놀랐다.

“매출은 높았어요. 업계 평판도 아주 좋았고. 문제는 연구비, 개발비 등의 높은 생산비였어요. 나중엔 공장을 유지하는 정도의 마진이 나더라고요. 보다 혁신적인 인큐베이터 후두를 개발하고 싶었지만 자금이 부족했어요. 나는 도전하고 개발하길 좋아하는 사람인데 그게 안되니 답답하더라고.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팔고 회사를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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