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수동에 다가구주택 설계를 의뢰받은 적이 있다. 관련 서류를 발급받아보니 사각형의 반듯한 필지였다. 지적도 상 도로폭도 기준 이상이고 지역, 지구내 규제 사항도 별 문제가 없었다. 남북으로 좁고 동서로 긴 필지라서 북측 대지에 대한 일조권이 민감한 것은 디자인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몇 차례 건축주와 디자인 협의를 진행하고 확정된 디자인으로 건축 허가용 도면을 완성했다. 건축허가 접수 전에 혹시나 하고 방문한 현장에서 그만 얼음이 되었다. 큰 길에서 그 현장으로 가는 길 중간에 높은 계단이 있어서 차량이 들어갈 수 없었다. 디자인 되어 있는 규모로는 건축허가가 불가능 했다. 물론 이런 진입로 상황을 미리 말 해 주지 않았던 건축주를 원망했지만 그것으로 건축사의 의무를 소홀히 한 핑계가 될 수 없다. 건축주에게 대지와 도로 조항 법규를 상세히 설명하고 그 프로젝트를 끝냈다. 받았던 설계비를 고스란히 돌려주면서도 현장을 미리 확인 하지 않은 불찰에 대해 건축주에게 백배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림1] 차량진입이 안되는 골목/ 정감있는 분위기지만 건축법의 제약이 많다.
이렇게 현장 답사를 소홀히 했다가 건축허가 전에 돌이킬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한 경험이 있어서 그 이후에는 설계착수 전에 무조건 현장 답사를 간다. 그러나 현장 답사를 꼼꼼히 하고도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 경우가 있다. 청파동에 연립주택을 설계할 때의 일이다. 설계 계약 전에 현장 답사를 하고 주변 상황을 잘 파악했다. 해당 필지에 특별한 문제가 없고 도로조건이나 인접필지와도 별 문제가 없어 보였다. 건축주와 디자인 협의를 마치고 설계도를 작성하고 건축허가를 받았다. 분양건물이라서 법적으로 허용하는 최대규모로 허가 받는 것이 제일 큰 목표였다. 법적인 건폐율이나 용적율을 적용하기에 앞서 건물 규모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일조권이나 도로 사선제한 등은 법적 한계선 까지 적용해서 그야말로 아슬아슬하게 설계도를 완성했다. 인허가를 다 끝내고 시공자를 선정했다. 착공 전에 경계측량 결과를 확인하는 순간 현장이 발칵 뒤집혔다. 경계측량한 필지가 인허가 받은 도면에 그려진 필지보다 작아서 허가 받은 규모대로 시공이 불가능 했던 것이다. 즉, 지적도보다 현장 경계 측량한 실제 필지크기가 작았던 것이다. 경계측량해서 제작한 지적도의 면적을 산정해 보면 토지대장 면적보다 적게 나오는 것이었다. 원인을 알아보니 측량기점 두 군데에서 측량한 측량점이 이 필지에서는 서로 조금 차이가 난다는 것이었다.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결과였다. 그러나 실제 규모가 작은 땅에 그 땅보다 큰 건물을 앉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현장 필지 규모에 맞게 줄여서 재설계하고 다시 인허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림2] 서울의 전경
건축설계를 의뢰받으면 먼저 그 토지와 관련된 여러 가지 서류를 발급받는다. 토지의 이력이나 권리, 법적인 제약사항들을 확인하기 위해서다. 건축주가 요구하는 용도와 규모대로 건축하는데 지장 없는지, 법적인 특별한 제약은 없는지 등을 확인한다. 인터넷이 활성화되기 전에는 어느 하나의 필지에 적용되는 이러한 법적인 문제를 확인하기 위해 일일이 해당 지자체 건축과, 도시과 등을 방문해야했다. 법적 해석이 애매한 경우엔 여러 부서를 찾아다니면서 확인해야했다. 부서마다 적용하는 법이 상이한 경우도 있다. 지자체마다 조례가 조금씩 다르기도 하므로 일반적인 법을 적용하면 곤란한 경우도 많다.
요즘은 인터넷으로 서류도 발급받고 각종 법률도 열람할 수 있다. 토지의 지번만 입력하면 면적, 공시지가, 도시계획 상의 지역 지구, 그 필지에 적용되는 도시계획상의 가능한 용도, 건폐율, 용적율등 건축계획에 필요한 상세한 정보를 거의 다 알 수 있다. 각 지자체별 조례도 열람이 가능하다. 더 편리한 것은 인터넷 지도 ‘로드뷰’로 현장 답사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로드뷰는 현장상황도 확인할 수 있고 그 주변도 둘러볼 수 있다. 위성사진으로 지형 지세도 볼 수 있다. 항공뷰가 제공 되는 지역은 하늘에서 이동하면서 현장을 내려다 볼 수 있어서 지상에서 볼 수 없는 현장 상황과 주변상황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현장이 지방이나 산지인 경우는 더 편리하다. 과거에 현장상황을 재재로 파악하지 않아서 설계 실수하고 난감했던 기억을 떠 올리면 세상이 참 편리해 졌다. 그러나 로드뷰로 현장 답사를 다 마쳤다고 할 수 없다. 도로가 좋지 않으면 로드뷰 영상이 없기도 하지만 때로는 로드뷰의 영상이 최근 자료가 아닌 경우도 있다. 또한 현장에는 지장물이 있는 경우도 있고 지형이 복잡한 경우도 많다. 보존해야 할 수목이 있는 경우도 있다. 해당필지 주변 상황을 둘러보면서 점검하는 것도 중요하다. 주변 필지의 민원을 예견하여 디자인을 소극적으로 할 필요는 없지만 주변 상황을 고려하여 배려하는 차원의 설계는 중요하다. 무엇보다 현장에 서면 그 땅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현장을 꼭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