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30일
[1부] 혼자 떠난 520킬로의 여정
한평생 숨 가쁘게 달려오다 결승점이 아닌 곳에서 멈춰 섰다. 분명 길은 끝나지 않았는데 더 달릴 곳이 없어서 길을 찾고 있을 때, 지인의 소개로 '산티아고 델 콤포스텔라'를 알게 되었다. 프랑스 생장(Saint-Jean)에서 시작해서 스페인 산티아고 대 성당(Santiago de Compostela)까지 800여킬로미를 10키로 배낭을 메고 걸어가는 길이었다.
막상 출발일이 다가오자 걱정이 되었다. 한 번도 혼자서 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고 게다가 한평생 길치로 살아온 내가 혼자서 어떻게 다닐까, 걱정이 앞서 잠을 설쳤다. 걱정스러운 마음만큼 불룩해진 배낭을 메고 비행기에 오르니 여 승무원이 엄지 척 하며 "멋지십니다"라고 말해줬다. 여행의 시작에서 받은 따뜻한 응원이었다.
프랑스에 도착해 바욘(Bayonne)에서 생장(Saint-Jean)까지 기차를 타고 갔다. 길치인 나는 기차역을 찾지 못해 헤매고 있었는데, 직장을 그만두고 왔다는 독일 젊은이가 기차역까지 안내해줬다.
기차표를 끊고 시간이 남아 차를 한잔 마셨다. 세계 각국에서 산티아고로 가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차를 마신다. 나이, 국적, 성별에 상관없이 서로 다른 언어로 손짓 몸짓으로 왜 산티아고 가는지 등등 이야기를 나누면서 길동무가 되었다. 길동무들과 함께 생장에 도착해 순례자 여권을 만들었다.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800킬로를 걸어서 가는 여행의 시작이다.
순례자 사무소에서 여권을 만들어 주던 자원봉사자 할아버지가 깨끗하고 식사가 맛있다는 알베르게를 소개해 주었다. 함께 간 친구들은 사무소 근처의 알베르게로 갔고 나는 거리가 좀 멀지만 추천받은 알베르게로 갔다.
다음날 생장을 출발한 나는 피레네산맥을 넘어 론세스바레스( Roncesvalles)에 도착해야 했다. 생장에서 론세스바레스까지는 25.6킬로다.
10킬로쯤 걸었을까, 걱정했던 것처럼 오른쪽 종아리가 아파왔고 피레네 산맥을 넘기도 전에 종아리에 쥐가 났다. 약을 바르고 주무르고를 반복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싶어 프랑스 가정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다음날, 배낭을 메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종아리는 훨씬 부드러워 졌고 컨디션도 좋아졌다. 두 팔을 휘저으며 열심히 걸었다.
헉헉거리며 올라가다 영국에서 온 5명의 가족을 만났다. 그들 중 사위와 딸 그리고 손자는 앞서 성큼성큼 걸어가다 할머니와 손녀를 기다리고를 반복하며 걸었다. 그러면서도 절대 할머니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손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그냥 할머니가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가는 걸 지켜보며 함께 걸었다.
할머니는 나무막대기 하나를 지팡이 삼아 세발로 차오르는 숨을 내뱉으며걸어간다. 뒤에서 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산티아고 가는 길에 보았던 그 어떤 풍경보다 가장 아름다웠던 풍경이었다. 등산스틱 재질로 카본을 선택할지 듀랄류민을 선택할지 고민했던 내가 머쓱해졌다. 손녀의 따뜻한 눈빛이 가볍고 탄탄한 할머니의 스틱이 되어 힘든 산을 넘어가고 있었다.
산티아고를 준비 중인 50+를 위한 Tip!
하나. 산티아고 여행정보로 가득한 카페를 이용하라!
* 까친연(까미노 친구들의 연합)
http://cafe.naver.com/camino2santiago
가장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 곳. 교통, 알베르게, 준비물 등 까미노에 필요한 모든 정보가 잘 정리되어 있어 유용하다. 월별 출발자들이 카톡방을 만들기도 하고 스페인에서 먼저 출발한 팀이 날씨와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기도 한다.
*카미노
http://cafe.naver.com/camino
오래된 카페이고 정보 검색보다는 정모나 번개모임에 참여하는 걸 추천한다.
실제 3800킬로의 루트를 다녀온 고수들과 함께 걸으며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곳에선 하루에 35킬로를 거뜬히 걷는 70대 청춘들을 만날 수 있다.
둘. 산티아고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몸이다!
까미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정보보다 나의 몸을 느끼는 것이다. 가끔 젊은 친구들과 함께 걷다 보면 내 속도보다 빨리 걷게 된다. 무릎과 허리통증을 참아가며 걷다가 귀국 후에 오랜 시간 고통을 겪는 경우도 있다. 까미노는 '나의 길'이다. 천천히 나를 살피며 걷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컨디션이 좋지 않으면 하루 더 묵고, 그래도 몸이 안 좋으면 버스를 타고 다음 목적지 까지 점프한다. 도보 완주는 다음 기회로 잠시 미루어도 된다.
셋. 말하지 않아도 통하지만 그래도 필요한 스페인어 세 마디!
1. Buen Camino! (부엔 카미노)
Buen은 좋은, Camino는 길이라는 뜻이다. 좋은 여행하세요. 라는 뜻으로 당신앞날에 좋은 일만 있기를 바랍니다 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스치듯 지나는 수많은 까미노친구들이 “부엔 카미노!” 하며 지나간다. 그에 대한 대답은 “부엔 카미노!”
2. Hola (올라)
안녕, 안녕하세요 라는 뜻으로 지나가다 눈만 마주쳐도 “올라”를 외쳐주자.
3. Gracias (그라시아스)
고맙습니다 라는 뜻! 혼자 여행하다 보니 걷다가 힘들어 앉아서 신발만 벗고 있어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프냐, 묻기도 하고 물도 건네주고 간다. 따뜻한 마음을 주고받는 길에서 꼭 알아야 할 한 마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