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들의 거짓말 

“아니야, 나 용돈 필요 없어.” 

“괜찮아, 나 아픈데 없어.”

“난 배부르니 너나 많이 먹어라.”

이 말이 부모가 자식한테 가장 많이 하는 세 가지 거짓말이라고 한다. TV 한 토크쇼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이 중에서도 으뜸을 차지한 거짓말은 “나 괜찮아, 아픈데 없어.”였다. 병원 가자는 아이들의 말에 ‘내 몸은 내가 알아. 안가도 돼.’ 하며 자식이 걱정하고 고생할까봐 하는 하얀 거짓말.  나 또한 이 거짓말을 입에 담곤 했기에 “맞아, 맞아” 하며 마음으로 맞장구를 쳤다. 그런데 자식에게 아프다는 사실을 알리면 자식들은 걱정을 하다가도 시간이 지나거나 오래되면 대체로 관심이 시들해진다. 그리고 우리 50+세대들의 몸이 되어보지 않은 젊은 자식들은 ‘나이가 들면 누구나 다 아프게 되는 거지 뭐.’ 라며 우리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연시하기도 한다. 그러니 말해보았자 소용없어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거나, ‘아프지 않다’는 거짓말을 하게 된다. 

 

 

나이 들면 누구나 몸이 변하고 약해진다. 젊은 시절에는 흰 머리카락 하나만 눈에 띄어도 흠칫 놀라며 냉큼 뽑아버렸는데, 이제는 온 머리를 하얗게 덮어도 그러려니 한다. 아니 흰머리라도 좋으니 빠지지 않고 머리 위에서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으면 좋겠다.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세월이 흐를수록 삐거덕 대는 뼈의 소리를 점점 더 많이 듣게 될 것이다. 그 소리는 겉으로 들리기도 하지만 내 몸속에서 나만 들을 수 있는 소리가 대부분이다. 목의 뼈, 손과 발의 마디마디, 무릎과 허리에서 나는 소리가 살을 통해 전해 온다. 

낡아져 티가 나는 것은 몸뿐만이 아니다. 무언가를 하려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내가 왜 들어왔지?’하고 그 무언가를 잊어버리는가 하면, 머릿속으로는 떠오르고 아는 것인데 입으로 그 단어가 얼른 나오지 않는다. 말이 헛나오고 버벅거린다. 

해가 갈수록 몸은 밖으로 나가 활동하는 것이 힘들거나 귀찮아진다. 이때는 마음이 몸을 일으켜 세워 산책이나 시장나들이 등 움직이도록 채근하면 축 처진 몸에 활기가 생긴다고 한다. 반대로 마음이 우울할 때는 운동 등으로 마음을 위해 먼저 몸이 움직여주면 가라앉았던 마음에 활력이 생긴다고 하니 귀에 담아둘 일이다.

 

 

몸과 마음아, 그동안 애 많이 썼어

그동안 바쁘게 먹고 사느라 돌보지 못해 고장이 나버린 몸이 이곳저곳에서 신음 소리를 낸다. 내 눈이, 내 장이 보낸 신호를 무시한 체 일에 매였던 결과로 눈병과 변비가 생겼다. 건조해진 내 눈 위에 따스한 손을 얹고 말을 건넨다. 눈아, 수고했어. 이제는 살살 사용하고 뻑뻑해지면 눈감아 쉬어 줄게. 차가운 배 위를 손으로 쓰다듬으며 무뎌진 장들에게 말한다. 변의를 보냈는데 내가 무시해서 많이 힘들었지? 장들아, 고생했어. 이제는 네 신호에 예민하게 귀 기울이고 잘 들을게. 돈을 얻기 위해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있었고, 미운 사람들과도 함께 지내야 했었다. 이에 정신과 마음이 스트레스를 받고 많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이제까지 오랜 시간을 버텨내며 나를 존재하게 한 내 몸과 마음을 위해 노래를 들려준다.

 

내 뼈야, 내 살아. 미안하고 고맙다. 

무엇을 위해, 그리 정신팔며 살았는지

네가 보내는 간절한 호소를 무시한 시간들이

너를 아프고 병들게 했다.

힘들어져서야 돌아보며 너를 어른다.

작은 속삭임에도 귀 기울여 보살필게.

내 마음아, 내 영혼아.

세상눈치보며 마음졸여 사느라 얼마나 힘들었니. 

참느라 멍들었고 세상 걱정에 상처투성이 되었구나.

그러나 그 아픔으로 더 익어지고 단단해졌으니 

안쓰럽고 대견하다.

이제는 네 마음을 읽으며 안아줄게.

내 몸과 마음아, 

우리 헤어질 때까지 서로 다독이며 천천히 함께 가자.

 

몸이 쇠해가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슬퍼하지 않기로 했다. 옛 기록에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영광은 들의 꽃 같아서 그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나 말씀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쓰여 있다. 풀과 꽃처럼 몸과 마음이 낡아간다는 것은, 속도를 점점 낮추고 나의 존재 이유와 목적을 알아가며 나답게 살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이제는 말라 떨어지는 풀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그런 나이가 되었고, 아름답게 익은 열매를 맺고 싶다. 화사한 봄꽃도 예쁘지만 곱게 물든 단풍도 화려하다고 하지 않는가. 

오늘도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 어김없이 목과 팔, 다리에서 우두둑 뼈가 내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가 입 밖으로 새어 나온다. 아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