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하면 마실 다니던 풀 길이 생각난다. 어린 시절에 걷던 길은 반듯하거나 정리가 되지 않아 잡초가 무성하였다. 사람들이 밟고 지나가는 곳에 길이 생기고 길가엔 풀꽃이 계절마다 피고 졌다. 가을이면 바람에 떨어지는 나뭇잎들이 길을 물 들이고, 폭설이 내려 사라진 길은 앞서간 참새가 발자국을 새겼다. 외갓집 가는 길은 멀고도 즐거웠다. 고갯마루를 넘어가는 동안 한눈팔 일이 많았다. 푸른 숲이나 들꽃이나 풀벌레 등 사소한 것들에 눈길이 가곤 했다. 또다시 걸어가는 오솔길에 먼저 반기는 것은 푸른 솔숲이었으니, 거닐던 길에는 추억이 묻어있다.

 둘레라는 뜻은 테두리나 바깥 언저리라는 의미다. 지금은 어디나 둘레길이 정돈되어 있다. 산과 들뿐 아니라 바다나 호수나 늪이 있는 곳에는 그 둘레가 정돈되어 걷기 편리하게 조성되었다. 산 아래는 등산을 못 하는 사람들을 위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계단이 있거나 나무판으로 조성되었다. 우리가 나서기만 하면 어디서나 강이나 바닷길 따라서 늪이나 숲속 길 따라 걸을 수 있다. 지역마다 그 지역의 특성이나 문화와 접목해 여행지로서 흠 없으며 볼거리도 다분하다.

 

 

 체력 활동은 여가 생활의 필수라고 생각한다. 체력 다지기는 백세 시대이며 시니어 시대에 있어서 중요한 과제이다. 다시 찾은 제2의 청춘을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 우선 건강을 유지해야 한다. 실건실제(失建失諸)란 말이 있듯이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기 때문이다. 발목이 약하거나 골다공증으로 인해 다리 힘이 약해져 넘어지거나 삐거나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운동하세요’라고 누구나 쉽사리 말하나 마땅히 할 운동이 없다고 한다. 타고난 체력이 있거나 꾸준히 체력관리를 해 온 분들이야 산행이나 트레킹, 헬스장이나 각종 동적인 스포츠를 선택하겠으나 규칙적으로 시간을 낼 수 없거나 정적인 운동을 하고픈 분들이 예외로 많다. 일상 속에서 조금만 시간을 낸다면 걷는 거처럼 쉬운 운동은 없다. 걷기는 관절에 무리를 주지 않으며 특별한 장비나 경제적 투자 없이 하는 유산소 운동이다.

 기적의 걷기라는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걷기에 대해 효과적인 방법을 소개되었다. 평소 우리가 걷는 걸음보다 10cm만 넓혀 걸으면 체지방을 감소시키고, 하체의 근육을 강화해서 신체의 균형감각을 유지해준다고 한다.

 성인병으로 오는 고혈압, 당뇨병, 고지혈증에 좋다고 한다. 그냥 걷는 것보다 기존 보폭보다 +10cm 정도가 운동 효과 증가시키는 적정 보폭이다. 적정 보폭으로 걷는다면 근육 활성화가 원활하게 된다. 자세가 꼿꼿해지면서 보폭이 빨라지며 걸음걸이도 교정이 된다고 한다. 아흔한 살로 최고령 핵의학 선구자이신 박용휘 박사는 걷기란 최고로 여기는 건강 비결이라며 적극적으로 권장한다. 점심 후나 시간이 날 때마다 그리고 출퇴근을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걷기를 생활화한다고 한다. 운동으로 걷기는 평소보다 조금 빠르게 규칙적으로 걷는 것은 뇌에도 좋다. 즉 뇌 가소성 유지 시스템 활성화에 효과적인 것이 걷기 운동과 관련이 있으며, 시공간 감각이나 시각 감각, 인지 감각 등 노화되지 않게 유지해준다고 한다.

 

 ‘신록을 대하고 앉으면 신록은 먼저 나의 눈을 씻고 나의 머리를 씻고 나의 가슴을 씻고 다음에 나의 마음의 모든 구석구석을 하나하나 씻어낸다.

 그리고 나의 마음의 모든 티끌 ㅡ나의 모든 욕망과 굴욕과 고통과 곤란ㅡ이 하나하나 사라지는 다음 순간, 별과 바람과 하늘과 풀이 그의 기쁨과 노래를 가지고 나의 빈 머리에, 가슴에, 마음에 고이고이 들어앉는다.’

- 이양하의 ‘신록 예찬’ 중에서

 

 

 유월은 여러 장미의 시절이요. 우렁찬 신록의 계절이다. 우거진 푸름 속으로 걷거나 들꽃길이나 강을 낀 둘레길 걷다 보면 온갖 시름이 달아난다. 가다가 쉬어가는 의자와 아늑한 커피숍이나 찻집이 있는 곳이 많아서 동적 운동과 정적 문화를 동시에 누릴 수 있으니 걷기는 일거양득이다. 우리가 사는 지근거리에도 산이 있고, 산 옆으로 각종 나무가 청록으로 무성하며 새소리 또한 청아하다. 한강 둘레길 걷노라면 강바람이 살살 불어오고 망초 꽃대가 하얗게 반긴다. 청록의 느티나무가 하늘을 받쳐 든 해 질 무렵의 공원에는 마을 사람들이 둘레를 따라 오순도순 걷는다. 둘레길은 그래서 정겹다. 이렇듯 먼 곳이 아니어도 좋겠다. 드문드문 있는 이웃집 찾아 마실 다니던 오솔길 닮은 동네 한 바퀴라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