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옷을 벗는 목욕탕에서 옷을 입은 채 남의 신체를 힐긋거린다면 상대방에게 수치심을 줄 것이다. 반면에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부끄럼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옷을 훌훌 벗는다면 그것도 민망한 일일 것이다.

우리의 언행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감출 것이 없다며 내 속에 있는 말을 다 들어낸 후에 찜찜해 하는 때가 있고, 남의 속 얘기만 다 듣고 나는 아무것도 터놓지 않으면 상대가 괜한 얘기를 했다며 후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너무 많이 벗으면 춥고 다 껴입고 있으면 덥다. 옷이라면 덥거나 추울 때 쉽게 입고 벗을 수 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쉽지 않다. 생각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다 꺼내 풀어놓는 사람은 자신의 속은 후련할지 모르나 거기에서 나온 찌꺼기가 다른 사람에게 옮겨져 관계는 더 나빠질 수 있다. 반면, 꼭 해야 할 말도 하지 않은 채 꽁꽁 싸매고 감추기만 하는 것도 관계를 진전시키지 못하고 인간관계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흐를 수 있다. 그저 속으로만 간직하고 건네지 못한 진심 때문에 후회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요즘에는 코로나19로 인해 직접 만나는 자리가 부담스러워 SNS를 통해 소통을 많이 한다. 입으로 나와 흘러가 버린 말보다 기록으로 오래 살아남아 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더 신경을 써야 한다.

 생각은 자유롭게 떠오르고 속으로는 무슨 생각이든 다 할 수 있다. 이에 어떤 사람은 말하지 않는 게 상책이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 정도는 간다며 생각으로만 간직하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속에 품고만 있으면 속이 터진다며 있는 생각을 몽땅 드러내기도 한다. 살다 보면 두 가지 경우가 모두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평소에 이런 행동을 많이 하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인간관계에 금이 가기 쉽다. 적당히 입을 열고 닫는 것, 중요하지만 참 어렵다.

 

 오래전 직장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에게 위한답시고 해준 말 때문에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부서장들이 모여 부서원들을 배치하는 회의에서 늘 뒷전으로 밀리는 직원이 있었다. 일은 성실하게 열심히 하는 데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까지 선택받지 못해 남게 된 그 사람을 나는 우리 부서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 어느 날 둘이 앉아 좋은 분위기에서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를 갖게 되었다. 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나라면 이런 충고를 듣는 게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이의 문제점을 짚어주었다. 그런데 상대는 어떻게 그런 말을 내게 할 수 있느냐며 오히려 화를 내어 화들짝 놀랐다. 결국 그 일 이후로 그 사람과 만나면 겉으로는 웃고 지내지만, 마음 밭에 모래가 깔린 듯 껄끄러운 관계가 되어 더 이상 가까이하지 않게 되었다.

 

 

 사람은 누구나 조언이나 충고 듣는 걸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상대방이 원하지도 않는데 함부로 충고하면 상처가 되고 관계가 깨질 수 있다. 더구나 나이가 들수록 충고해주고 싶은 마음이 불쑥 생기기 쉬우니 더 조심해야 한다.

 상대방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하고 의견을 구할 때가 아니면 섣불리 충고하지 말아야겠다. 상대가 원하지도 않는 충고를 할 때는 그 사람의 됨됨이와 나와의 관계 정도를 잘 살펴야 한다. 충고를 받아들일 만한 그릇이 되는지, 내 말이 수용될 정도로 서로 돈독한 관계인지를 봐야 한다. 그리고 짧고 가볍게 지나가는 말 정도로 해야지 길게 반복해서 진지하게 하는 것은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진즉에 이 정도만이라도 알았더라면 많은 사람들과 더 좋은 관계를 유지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동안 진지하게 했던 충고 때문에 어색해진 관계들이 지금, 이 순간 아쉽게만 느껴진다.

 

 다른 사람에게 어느 정도로 나를 내보여야 할지를 생각해보는 것도 필요하다. 자신을 너무 많이 그리고 깊게 보이는 것은 좋은 관계일 때는 괜찮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문제가 될 수 있다. 반면에 너무 가리고 보이지 않게 하는 것도 거리를 좁히지 못하게 할 수 있다.

 믿어서 내 속을 보였더니 속이고 이용하여 뒤통수를 맞은 때도 있었다. 좋은 일을 말하면 진심으로 축하하는 사람과 시기 질투로 너 잘났어 하는 사람이 있다. 안 좋은 일을 드러내면 함께 진정으로 아파하는 사람과 반면에 고소해 하는 사람이 있다. 적절한 행동을 했음에도 누군가는 뒷담화로 해코지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나에 대해 덧붙여 말하는 사람이 있다.

 

 아롱다롱한 사람들의 반응에 너무 신경 쓰지 말자. 그건 그 사람 성품의 그릇 크기이고 내가 아무 일도 안 했으면 이런저런 말을 들을 일도 없었을 테니 그냥 넘겨버릴 줄도 알아야 하겠다. 어느 정도 벗어 보였음에도 상대가 여전히 가리고 감추면 그 정도 관계의 사람으로 생각하고 그에 맞게 행동하면 될 것 같다. 나의 색깔과 성향대로 하되 적당히 벗고 가리는 일에 조금 더 신경을 쓰며 조절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뒤집어서 다 보일 필요도 없고, 꽁꽁 싸매서 모두 가릴 필요도 없다. 여름에는 벗어야 하고, 겨울에는 입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니 우리 적당히 벗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