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초상

 

 

영화 <아버지의 초상>은 다르덴 감독의 프랑스 영화다.

주인공 티에리(뱅상 랭동)는 이 영화를 통해 제68회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프랑스 원제는 <시장의 법칙>,영어 제목은 <인간의 척도>.

 

영화는 주인공 티에리를 클로즈업하며 집요하게 따라 다닌다.

이로 인해 구조조정으로 부당하게 실직한 주인공의 절제된 감정이 참 잘 드러나기도 했다.

 

티에리는 가족의 생계와 발달장애 아들 교육비를 위해 지속적으로 구직활동을 해야 했다. 이런 모습은 요즘 한국의 상황과 많이 닮아있다.

티에리는 번번한 면접실패에도 가족들에게 자신의 고단함을 표현하지 않는다.

2년간의 끈질긴 노력으로 재취업이 된다.

집도 팔아버린 처지에서 대형마트의 보안요원은 티에리에게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티에리는 CCTV 모니터링으로 좀도둑을 색출하는 일을 한다.

그 일을 하는 과정에서 인권이 유린되는 많은 일이 발생된다.

이런 가운데 동료 앙셀만의 자살로 티에리의 내면적 갈등은 극도로 커진다.

 

그럼에도 티에리는 절제된 표현과 무덤덤한 태도, 지나친 냉정함으로 일관한다.

직장생활을 지속해야만 하는 그의 처지를 안다면 이해가 된다.

그러나 내면의 갈등은 엄청나게 그를 억누르고 있다는 것을 클로즈업 된 그의 얼굴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자신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 않은 사람들에게 느껴진 도덕적 딜레마는 그를 결단케 한다. 인간답게 살고 싶은 한줄기 마음이 결국 유니폼을 벗어 던지게 한 것이다.

 

카메라 앵글이 티에리의 이마와 눈가의 주름, 굳게 다문 입술을 비추는 동안 그의 고뇌가 말없이 우리의 가슴 속으로 들어오는 듯했다.

 

아버지는 히말라야의 노새

 

아버지의 무게를 가늠케 하는 소설들이 있다.

김정현 작가의 <아버지>는 암 걸린 아버지가 죽음 앞에서조차 남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헌신하는 삶을 표현했다.

조창인의 <가시고기>,<등대>도 아버지를 이야기 한다.

2013년의 박범신 작가의 <소금>에는 염전 밭에서 일하다 죽게 된 아버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열심히 일하다 몸의 소금기가 빠져버려 죽게 된다.

<소금>'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며 기존의 아버지상을 거부한 주인공을 그렸다.

 

박범신 작가는 자본주의란 빨대와 깔대기의 커다란 네트워크다라 표현했다.

'가족'이란 빨대를 위해 아버지는 항상 무엇인가 해야 하고, 앞으로 나아가야하고 어떤 일에 무한히 책임져야한다.

또 작가는 아버지는 히말라야의 노새라고 표현했다.

 

내가 어릴 적 나의 아버지는 교사를 하다 사업가로 전직하여 실패를 거듭했다.

덕분에 엄마가 고생을 짊어지며 사업을 하게 되었고, 막내인 나는 엄마의 얼굴대신 그때 당시 '식모'라 불렸던 가정부의 손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자신을 탓하는 혼자 말을 많이 했지만, 우리 자식들은 그 마음을 몰라주었다.

우리는 아버지의 몫을 엄마에게 전가했다는 오해를 쌓아갔다.

 

그러나 돌아가신 후에야 알았다.

아버지께서 자식을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고, 조금이라도 더 남겨주려 노력했는지. 정작 당신을 위한 삶은 없었던 것이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았을 것을......

 

 

 

탈무드에 "명예는 많은 재산보다 소중하고, 존경받는 것은 금은보다 값지다"라는 말이 있다.

 

한국의 아버지는 아직도 자녀의 학자금과 결혼 자금을 걱정하고 자식의 주거를 걱정한다. 빨대 꽂은 자식들의 미래에 잠 못 이루기도 한다.

그럼에도 존경받지 못하고 등은 더욱 굽어져 간다.

 

지금도 베이비붐의 노새들은 여전히 쉬지 못하고 제2의 삶을 살아내야 한다.

자신의 “100세 리스크를 감내해야 하지만 자식 리스크도 감당해내야 하는 것이다.

 

50+상담센터에서는 생애설계 7대 영역을 주로 상담한다.

7대 영역이란 일, 재무, 여가, 건강, 사회적 관계, 가족관계와 사회공헌 등을 말한다.

 

그 중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가장 많다.

사회공헌을 위한 일자리도 있지만 생계형 일자리도 많이 찾는다.

현실은 녹록치 않은데 원하는 월급의 일자리는 거의 없다.

끊임없이 자신을 내려놓아야 한다.

존경받는 지난 세월과 다른 자신의 모습 때문에 더욱 좌절을 경험한다.

 

표현에 서툴고 등이 굽도록 노새와 같이 일만하고, 가정의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우리의 아버지들.

 

이제는 공감과 격려, 위로가 필요한 아버지와 남편의 등을 바라보자.

지쳐있는 아버지와 남편의 등을 살포시 쓰다듬고 안아보자.

아버지의 지친 숨소리도 들어보자.

아버지 내면의 소리 없는 울음도 느껴보자.

 

<당신 참 애썼다>

나는 이제 안다.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뎌야 하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들에 지쳐,

당신에게 눈물 차오르는

밤이 있음을.

 

나는 또 감히 안다.

당신이 무엇을 꿈꾸었고,

무엇을 잃어 왔는지를.

당신의 흔들리는 그림자에

내 그림자가 겹쳐졌기에

절로 헤아려졌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갔지만

끝내 가버리던 버스처럼 늘 한 발짝 차이로

우리를 비껴가던 희망들.

 

그래도 다시 그 희망을 좇으며

우리 그렇게 살았다.

 

당신 참 예뻤다.

 

사느라, 살아 내느라,

여기까지 오느라 애썼다.

 

부디 당신의 가장 행복한 시절이

아직 오지 않았기를 두 손 모아 빈다.

 

정희재/어쩌면 내가 가장 듣고 싶었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