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정신없이 뛰놀다가 해야 할 일을 까먹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이런 경험을 ‘몰입’이라 부릅니다. 몰입은 현재의 순간에 흡수되어 깊이 빠져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몰입상태에 있으면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의식하지 못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오직 현재에 집중하기 때문에 재미있는 일에 쉽게 몰입합니다. 어른이 된 후에도 간혹 몰입을 경험하곤 하지요. 어떤 일에 집중하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창밖이 어두워져 있거나, 전철이나 버스 안에서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가 목적지를 지나쳐 버릴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여가를 즐길 때 쉽게 몰입이 일어날 것이라 여기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심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어른들은 일을 할 때 몰입을 더 많이 경험합니다.

 

몰입의 특징

몰입에 대해 오랜 기간 연구해온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의 특징을 여덟 가지로 정리한 바 있습니다. 몰입하게 되면 이루어야 할 목표가 뚜렷해지고, 단호하게 행동할 기회가 많을 뿐 아니라 그 상황이 자신의 능력과 맞아 떨어집니다. 또 행위와 의식이 하나가 되고,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며, 일과 주변 상황을 통제하는 느낌이 듭니다. 나아가 자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점차 성장하는 느낌과 함께 더 큰 존재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몰입의 순간에는 실제보다 시간이 빠르게 흐르며, 현재 경험하고 있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됩니다.

 

 

몰입상태에 들면, 일이 전혀 힘들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즐거워집니다. 창의성이 빛을 발하고, 자신의 재능이 최대한 발휘되며, 하고 있는 일에 자부심을 느끼지요. 그러나 이런 기쁨을 경험하려면, 일과 자신의 능력이 적절히 맞아떨어져야 합니다. 주어진 일이 너무 쉬우면 지루해지고, 너무 어려우면 좌절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또 타인의 통제나 평가, 감시가 상시적으로 이루어지는 환경에서는 몰입을 경험할 수 없습니다. 또 무언가에 쫓겨 몸과 마음이 지쳐 있으면 몰입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일에 몰입할 수 있을까요? 경영학자 케네스 토마스는 열정과 재미를 느끼며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네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첫째 자신이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느낄 때, 둘째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다고 느낄 때, 셋째 그 일을 할 만한 기술과 지식을 갖추고 있다고 느낄 때, 넷째 성장하고 있다고 느낄 때입니다. 이 네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발적 몰입에 빠지게 됩니다.

 

몰입은 행복이다

일상의 행복이란 결국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서 몰입을 이끌어내는 능력에 달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하든, 오직 거기에 푹 빠져 있을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맛볼 수 있는 것이지요. 몰입을 경험하려면 가장 먼저 자신과 상황을 통제할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그런 권한을 갖기 어렵지요.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야 하고, 평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1964년 미국인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에 의하면, 행복의 열쇠는 자신의 일에서 얼마만큼의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자율권을 얼마가 가지고 있느냐 하는 것이 행복을 좌우한다는 것입니다. 자율(autonomy)이란 타인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않고 자신의 원칙에 따라 할 수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퇴직은 또 다른 기회이기도 합니다. 비록 소득이 줄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 잘하는 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지요. 사람들이 선망하는 직업은 많습니다. 대개 급여를 많이 받거나 지위가 보장되는 직업들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가진 사람들을 존경합니다. 가령 사람들은 박봉을 받으며 고생하는 소방관을 부러워하지는 않지만 존경합니다.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수익을 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돈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몰입의 삶을 살려면 하고 싶은 일, 의미 있는 일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내가 하려는 일의 어떤 측면이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가? 나의 일에서 선(善)과 관련된 것은 무엇인가? 보람 있는 가치를 찾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이런 질문에 답을 얻으려면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를 탐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나는 누구인가?’를 물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