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사람으로서 당신은 자신의 프로필을 어떻게 소개하고 있는가? 명함이 한 장인가? 여러 장인가? 그냥 취미가 아니라 충분하건 그렇지 않건 돈으로 환산이 되는, 직업이라고 부를 만한 당신의 활동을 모두 설명하려면 슬래시(/)가 필요한가?

‘슬래시 커리어’slash career라는 말은 『한 사람/ 다중 커리어』One Person/Multiple Careers의 저자 알보어M. Alboher가 새로운 일의 성공모델로 한 사람의 멀티플 커리어를 제시하면서 대중화한 말이다. 즉 복수의 직업을 통해 여러 소득흐름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길어진 수명 덕분에, 또 기술의 발전 덕분에 슬래시가 많은 커리어를 구축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호모헌드레드 시대를 앞장서 살아가는 것으로 보이는 50+리더들을 보아도 한 가지 일만을 하는 경우가 드문 거 같다.

 

 

슬래시 여러 개가 필요한 한 사람의 이력

자칭 타칭 인생코치이자 ‘놀먹대(놀고먹기대학)’ 학장인 남기선 님은 여행작가/이자 세계일주 노하우를 알려주는 은퇴여행 컨설턴트/이며 사진작가/이자 사진 강사/이며/ 여가 강사/이다. 앞의 일들과 컬러가 달라 보이지만 그는 부동산 컨설턴트/로도 활동한다. 남학장의 전직이 금융권 대기업 직장인이었다는 걸 알게 되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은퇴 2,200일째라는 그는 어떻게 이러한 다양한 슬래시 커리어를 유지하고 있을까?

엄마이자 주부로 살아오다 엄마 퇴직선언을 할 즈음, 그 동안의 열정과 내공이 티핑포인트처럼 터져 많은 사람들에게 자성(磁性)을 발휘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현재 글쓰기 강사/이자 1인출판사 대표/이며 여행작가/이고 U3A 정신을 펼치는 ‘지혜로운학교’의 운영위원/이자 무엇보다 행복해지고 싶은 엄마들의 멘토로서 활동 중인 김정은 ‘엄마학교협동조합’ 대표/이다.

 

슬래시 여러 개가 필요한 한 사람의 이력은 그가 걸어온 발자취를 알려주고 그 사람의 가치관을 엿보게 한다. 한 사람의 슬래시 커리어에서 창의성, 즐거움, 다양한 관심사만을 읽는다면 단세포적 시각일 것이다. 여러 개의 슬래시로 연결된 (어느 하나 포기하기 어려운) 이력을 쌓아올 동안의 탐색, 고민, 환희, 한숨, 좌절 등이 녹아 있지 않겠는가.

 

직업전환을 하고 프리랜서 활동을 하며 나 또한 그런 과정을 겪었고 겪고 있다. 나는 20대 중반 이후 출판편집자/ 윤문작가로 활동하다가 40대 초반 새로운 경력 모색기에는 –시민리포터로서 다른 선형경력을 이어왔고 50+세대에 입문한 현재, 슬래시로 이어지는 여러 일들을 하고 있다. 나는 코치/이자 진로교육 강사/이며/ MBTI, 버크만, 스트롱 등 심리검사 강사/이고 컨설턴트/이며 협회보 웹진 편집장/이기도 하다. 하는 일들이 나름 다 재미있고 성취감을 주지만 분주한 동선만큼의 투자 대비 아웃풋이 안 나온다는 생각에 선택과 집중을 고민 중이기도 하다.

 

슬래시 커리어는 신자유주의, 고용유연제, 불안정 등 어두운 사회의 이면을 암시하며 거기에서 살아남으려는 몸부림-노오력-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메뚜기도 한 철이라는 말을 두려워하는 연예인들의 사이드잡 찾기처럼 비오는 날에는 우산을, 맑은 날에는 소금을 팔고자 하는 리스크 헷지의 의미를 갖는다.

 

15년을 함께 한 반려견이 떠난 후 허전하지만 새로운 인연을 맞는 문제의 신중함 때문에 고민 중인 나는 요즘 50+캠퍼스의 ‘펫시터 도전하기’ 과정에 관심을 두고 있다. 시간제 펫시터로 일할 수 있다면 가엾은 개가 혼자 집 보게 될까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수입다각화를 노리면서도 정서적으로도 힐링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다.

(착한 리트리버와 눈맞춤하고 있는 장면이 잠시 스치기도 하지만 개똥을 치우느라 다른 일까지 전전긍긍하는 장면이 스쳐가기도 한다. 뭐든 돈으로 교환되는 일을 하면서 전혀 스트레스 없이 즐겁기만 할 수는 없을 거다.)

그러니까 여러 슬래시 사이의 일들이 결코 편안하게 자동적으로 흘러가는 게 아닌 건 너무나 당연하다. 슬래시 커리어 운용술은 자전거 페달 밟듯 부지런해야만 작동되는 기술이다.

 

슬래시 이펙트를 잘 활용하려면?

그런데 슬래시가 가득 찬 이력은 때로 비전문가로 보이기 십상이다. 메뉴가 벽면 가득한 식당이 설렁탕 하나만을 24시간 끓여내는 식당에 비해 비전문적으로 보이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남보다 부지런하게 인풋을 투자해놓고도 비전문적인 것으로 오해받지 않고 여러 경력들 사이의 시너지를 잘 활용하려면, 다시 말해 ‘슬래시 이펙트’를 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일과 삶의 균형을 고려하라. 추가되는 슬래시 커리어가 소위 ‘워라벨’에 도움이 되는지 점검하라.

둘째) 독특하고 다양한 직업이력에 맞는 이력서와 명함, 또는 웹상의 퍼스널브랜딩 기지를 마련하라.

셋째) 여러 일들끼리 시너지가 있는지 점검하라. 낭비요소가 있다면 선택과 집중을 고려하라.

넷째) 50+세대라면 슬래시 커리어가 앙코르커리어의 3P(사회공헌Purpose, 개인적 성취Passion, 소득Paycheck)와 접점이 되는지 생각해보라.

 

너무 복잡한가? 단순하게 요약해보자.

일단 내 가슴이 뛰는 일을 한다. 그러다 그 일이 새 일로 확장되면 그 일을 해본다. 때로는 신선함을 맛볼 수 있는 아주 다른 일도 해본다. 그 일이 나와 우리 사회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금상첨화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는 차차 생각해본다.

마지막으로 무슨 일들을 하든 사랑하는 가족, 친구들과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만큼 당신의 열정을 균형 있게 유지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