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생활이라고 해서 거창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니라 생각한다. 소소한 생활 속에서 우리는 알게 모르게 여가 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다. 화초를 가꾸는 사람들이다. 화초를 가꾸거나 채소를 키우는 사람들을 서사를 이어가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건 드러나지 않게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살아가기 때문이요. 생명체의 만남이라는 인연이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넓은 도로를 피해 주택과 주택 샛길로 들어서면,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가꾸는 푸른 것과 꽃들을 만나게 된다. 자투리땅을 이용해서 야생초나 잎채소를 가꾸는 걸 볼 수 있다. 정원이 있는 집에는 나무들이 담장을 넘는다. 테라스나 현관에 놓인 한 개의 화분을 이용해서  아이 키우듯 가꾸며 살아간다. 미장원 입구에는 샐비어가 붉게 피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씨앗을 뿌리고, 거름흙을 주고, 새싹이 나오기까지 들여다봤을 것이다. 물을 주며 꽃이 필 때까지 때론 근심 어린 마음으로 때론 꽃을 본다는 희망으로 들여다봤을 거다. 출근하여 햇살 아래 내다 놓고 퇴근하면서 안에 들여다 놓았을, 화분 주인의 소중한 여가를 본다. 

 

 

명퇴한 지인이 친환경 옥상 텃밭을 자랑했다. 아니 홍보했다. 풍성한 채소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여주는 얼굴엔 미소가 가득했다. 도시 속의 텃밭 가꾸기를 하는 분들이 늘어났다. 옥상에서 가꾸는 텃밭은 두 가지 형태가 있는데, 베드형 옥상 텃밭은 목재를 활용해 넓은 베드를 만들고 그 안에 텃밭을 일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작은 화분이나 용기를 활용하는 상자형 텃밭이다. 아무래도 복잡하지 않은 스티로폼 상자를 이용하거나 나무상자 또는 고무대야 등을 이용한 상자형 재배법을 선호한다고 한다. 

 

도시농업연구팀 연구관은 “비어있는 옥상 공간에 조그만 텃밭을  만들어 운영하면 도심 속 전원생활을 느낄 수 있고, 몸과 마음의 건강, 가꾸는 재미, 나누는 행복, 뿌듯한 자부심, 먹는 즐거움 등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라며 옥상텃밭의 좋은 점을 강조했다. 손쉽게 재배할 수 있는 작물로 엽근채류가 있다. 일상적인 밥상에 오르는 상추, 쑥갓, 부추, 대파, 당근 고추, 가지 방울토마토 고구마 도라지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지인은 기른 채소가 풍성해 이웃에 나눠준다고 했다. 

 

옥상이 없어도 화초를 가꾸는 소박한 집이 있다. 그 김밥을 마는 가게에 갔을 때는 가을 초입이었다. 입구에 목화 화분이 놓여 있었다. 흔하지 않은 목화가 도시에 있어 눈길을 끌었다. 가게 문 옆 창가엔 머루 줄기와 잎이 그리고 열매가 창을 덮었다. 머루알이 토실토실 여물어 가고 있었다. 그 집 앞에 멈췄을 때, 도시를 떠나 어느 한적한 초원에 있는 듯 착각을 일으켰다. 착각에 빠져 한참을 서성거렸다. 10평 남짓한 안에는 작은 화초들을 가꾸고 있었으며, 아이비 잎사귀들은 천장을 타고 뻗어나가며 평화로웠다. 김밥집 주인이 지극정성으로 가꾼 것이란 걸 단박에 알 수 있었다. 틈나는 시간마다 화초를 가꾸는 여가생활이 행복했으리라. 그래서 김밥 마는 일이 즐거웠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 머문 시간에 여가란 거창한 것이 아니요. 일상과 분리된 것이 아닌 일상 속에서 즐기는 소박한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오랫동안 감동이 사라지지 않아 그곳을 ‘서사가 머문 집’이라고 기록했다.

 

 

“구의 사거리 김밥을 마는 그녀는 나보다 열 살이나 아래다. 그녀가 살아가는 곳은 도심 속 정원이다. 작은 공간에 소담한 서사가 벽을  탄다. 덩굴 마디마다 열일곱 송이 단락이 이야기를 이어가고, 소형 물레방아는 잠시 묵상 중이다. 그녀는 추억을 소환하는 목화 앞에 선 타인을 헤아리는 여백도 있다. 목화는 나를 따라서 오고, 내게 멈춘 서사가 그녀 집으로 갔다. 머루 알 익어가는 그곳의 배경이 되려고 떠났다”  

                                        

화초를 가꾸며 살아가는 사람들은 서로 만나게 된 사연이 있다. 만남은 가꾸는 사람과 연결되어 가면서 서로 또 소통한다. 나의 베란다에도 화초들이 자라고 있는데, 사연 없는 화초는 하나도 없다. 이웃에서 준 어린 군자란이 이젠 제법 자라서, 해마다 공작새가 날개 펼치듯 화관무를 펼친다. 이십 년 전에 화계장터서 사 온 천리향 묘목이 자라서, 일 년에 두 번씩이나 향기를 피운다. 통영 앞바다는 즐비한 동백꽃이 피고 진다. 통영 여행길에 나무 아래 떨어진 씨앗들을 주머니에 넣어왔다. 다른 화초가 자라는 흙에 묻어두었는데, 동백 씨앗이 싹이 텄다. 그러나 낯선 듯 가늘고 잘 자라지 않아 늘 안쓰럽다. 넓은 땅으로 보내야지 하면서 뭣이 아쉬운지 보내지 못하고 있다. 올 겨울이 지나면 보내야겠다. 이렇게 그들은 내게 온 사연이 있다. 화초를 가꾸는 사람과 화초는 매우 가깝게 연결되어 있는 거다. 그러니 그들은 서로가 소중한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