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끝자락에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의 “조견당”을 찾았다. 흙냄새 짙은 굵은 장대비가 내린 후, 영월의 하늘은 청명하였다. 가을이 가까이 오고 있음을 느꼈다. 이번 여정은 출발할 때부터 부담감이 있었다. 50+적합일자리 사업인 <신중년 한옥고택관리사>의 현장견학 방문 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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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30여 명의 인원이 동시에 이동하는 것으로 하였다가, 코로나 상황의 심각으로 5명을 1개 조로, 총 3일간의 그룹별 진행을 하는 것으로 하였다. 진행일정상의 어려움 및 방역 지침에 의하여, 참가자들에게 별도의 식사 시간과 음료수도 제공되지 않기에, 먹거리도 없는 드라이한 여행이었다.

또한 고택의 종손 및 종부에게 동일한 내용을 여섯 번씩 설명을 부탁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조견당의 10대 종손이자 (사)한옥체험업 협회장인 김주태 선생이 흔쾌히 승낙하셔서, 방문이 성사되었다. 자녀의 교육으로 서울에 계시는 안주인 종부님도 우리를 위하여 어렵게 시간을 내어주셨다. 한옥고택관리사의 미래를 위한 그분들의 자기희생에 그저 감사한 마음이다.

200년 세월의 조견당은 명품고택이자, 한옥스테이 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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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고택”은 전국의 70년 이상 된 고택중 문화체육관광부가 엄선한 84곳의 고택을 의미한다. “한옥스테이”는 한국관광공사가 한옥체험 숙박업소를 철저히 인증하여, 국내외 홍보와 인프라 지원을 하는 한옥이다. 조견당은 또한 관광품질 인증제를 통과한 고택이기도 하다.

현장견학은 오픈 스페이스 박물관인 고택의 안채 마루에서 시작되었다.

고택의 종손이 조견당의 유래를 설명한 후, 종부의 고택 구석구석 설명이 이어졌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조견당 종부의 계절밥상 이야기도 들었으면 했는데, 아쉬운 마음이다. 조견당이 소재한 곳은 주천강과 치악산의 마지막 줄기인 망산(304 m)이 손에 닿을 듯 지척에 있다. 철마다 나물들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주천강에서 청정한 다슬기를 얻기 쉬운 곳이다. 다음에는 조견당의 '보리고개 체험밥상'을 맛볼 수 있기를 기약하여 본다.

고택의 스토리텔링 교육은 잠시도 긴장감을 놓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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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옛날에 술이 솟아나는 샘이 있어 주천(酒泉) 이라 불렸다고 한다. 술은 쌀로 빚기에, 주천강이 흘러 강원도에서는 드물게 기름진 평야를 간직한 곳이다.

조견당(照見堂)은 반야심경의 첫 구절을 따서 만든 당호이다. 인근의 고찰 법흥사를 들렀다 가던 고승이 “비추어보는 집”이라는 당호를 알려주었다고 하는데, 속내는 “선입관 없이, 있는 그대로 보라”는 뜻이다. 조견당 가문(김해김씨 안경공파)은 조선 순조때 한양에서 당쟁의 난을 피해 영월 깊은 곳까지 오게 되었다. 주천강 강가의 뱃길을 이용하여, 소금과 옹기, 젓갈 교역을 통하여 큰 부를 일으켰다.

조견당의 안채를 버티고 선 대들목을 보면, 그 시간이 참으로 소중함을 느끼게 한다. 고택은 200년이지만, 대들보는 당시에 800년 된 나무를 사용하였기에, 1,000년의 세월을 견딘 것이다.

또한 조견당은 마을과 더불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직접 행한 가문이기도 하다.

조견당은 원래 40칸 규모의 집을 지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탐관오리의 횡포로 기근이 심하던 시절, 집을 짓는다는 소문에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의 굶주림을 외면할 수 없어 공사가 커졌고, 기간도 길어졌다. 결국 120여 칸 규모의 큰 집이 들어섰다. 더 이상 집을 지을 형편이 되지 않자, 안채의 텅빈 뒤주를 사람들에게 보여주면서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마침내 9년 만에 집이 완공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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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견당 남서쪽에는 주천강이 흐르고, 주변으로는 백사장에 선착장이 있었다. 과거에는 주천강가까지 조견당이 위치할 정도로 엄청난 규모였다. 아쉽게도 일제 강점기와 6. 25전쟁으로 안채만 제외하고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진행을 하는 운영진은 2박 3일의 낮과 밤을 사랑채에서 머물면서, 종손과 매일 밤 술잔을 기울였다. 고작 며칠을 묵어서 그 오롯한 가치를 모두 알 수는 없을 것이지만, 그 시간의 일부분은 녹아들 수 있으리라. 고택의 가치는 세월의 힘을 견디면서 베풀었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시련속의 푸름에서 세월을 버티는 힘이 나오는 것이다.

우리의 고택들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다. 70대 중반의 고택 소유자들이 오래된 집을 돌보는 것은 힘에 부친다. 그러기에 한옥고택관리사라는 전문가들이 필요하다. 또한 전국의 한옥고택 소유자 협의체인 (사)한옥체험업 협회도 적극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우리의 전통문화 가치를 보존하면서, 중장년의 일자리 창출을 통한 사회 기여를 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더욱더 맑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한옥고택관리사 사업은 내년에도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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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이동고(한옥고택관리사 협동조합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