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하늘 밑, 서소문 역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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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이 아닌 사람에게 서울은 너무나 순식간에 변화하는 낯선 곳이었습니다. 그 급속한 변화 때문에도 정을 붙이기가 쉽지 않아서 자꾸 부유하는 느낌을 받곤 했죠. 그런데 아주 조금씩 서울의 어딘가가 마음을 열게 합니다. 서울이 조금씩 고향 같아집니다. 김수환 추기경의 어린 시절을 그린 영화 ‘저 산 너머’에서 어린 수환의 어머니는 고향이 따로 있냐고, 마음 가는 데가 고향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서울살이 수십 년 만에 이 도시가 고향 같아지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곳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9년 새로이 문을 연 서소문 역사공원

 

서소문 역사공원도 그 가운데 한 곳입니다. 1801년 신유박해부터 1866년 병인박해까지 103명의 천주교인이 처형된 형장으로 ‘서문 밖 순교지’로 불리던 이곳이 2019년 6월 서소문 역사공원으로 새롭게 개방됐습니다. 여기서 처형된 사람은 천주교인만이 아니었죠. 조선시대에는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소문을 더 확산하기 위해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곳에서 국사범들을 처형하곤 했는데, 당시 저잣거리였던 서소문 밖도 이러한 이유에서 1416년(태종 16) 서울의 주요 형장(刑場)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광해군 때 ‘홍길동전’의 저자이자 학자였던 허균이 서자를 차별대우하는 사회제도에 반대하다 참형된 것을 비롯해 홍경래의 난과 임오군란, 갑신정변 주도자들이 이곳에서 참수되었죠. 또한 동학혁명 지도자 김개남과 동학의 2세 교조인 해월 최시형이 고난을 받은 곳으로 동학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장소입니다.

 

‘서문 밖 순교지’에서 처형된 이들을 기리는 순교자 현양탑이 1984년 세워졌다.

 

1973년 근린공원이 되었지만 서울역 철길 때문에 시민들의 접근이 어려웠던 이곳에 IMF 이후에는 노숙인들이 자리를 잡기도 했죠. 2011년 서울시와 중구청이 '서소문 밖 역사 유적지 관광자원화 사업'으로 공원 재조성에 착수했고, 8년 만에 순례지이자 시민들의 문화공간인 서소문역사공원과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 문을 열게 되었습니다.

공원은 지상과 지하 4층 건물로 조성되었는데 지상은 원래의 서소문 근린공원을 재조성했어요. 1984년 세워진 순교자 현양탑 앞으로 광장이 펼쳐지고 이제 조금씩 나무들이 제자리를 잡으며 자라고 있습니다.

 

상설전시실은 하얀 동굴에 들어선 듯한 분위기를 만든다.

 

역사박물관에는 140여 종의 교회사와 조선 후기 사상사 사료를 전시하는 상설전시실과 다양한 문화전시 공간이 되고 있는 기획전시실 등이 있어요. 박물관 지하1층에 자리한 강의실 ‘명례방’과 1만여 권의 서적을 소장한 도서관도 모두에게 열려있는 문화공간이죠. 그밖에도 콘서트 등의 문화예술 행사가 가능한 콘솔레이션홀과 지하3층부터 천장이 없이 뚫린 구조로 지상과 하늘이 소통하는 의미를 담은 하늘광장 등 독특한 공간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지하2층 기획전시실에서는 특별한 전시가 이어진다

‘위로’라는 의미 그대로인 ‘콘솔레이션홀’

 

상설전시실은 하얀 대리석 아치와 십자형 기둥의 반복으로 유럽 대성당의 궁륭 천장이 벽에 설치된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제1전시관은 ‘조선후기 사상의 흐름 속에서 발화한 시대정신’이라는 주제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얀 동굴 같은 전시실이 품고 있는 것은 살아가는 일이 너무도 힘들던 조선말 민초들의 억눌림이고 애끓는 고통 같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시대로부터 동학이 터져 나왔고, 사람들이 서학에 이끌렸겠죠. 동학의 ‘인내천’사상이나 서학의 ‘신 앞에 모두가 형제자매’라는 가르침은 차별과 억압과 착취로 인간의 존엄마저 훼손당하던 민초들에게 밥이 되고 길이 되었을 겁니다. 비록 종교가 다르지만 그때 그들의 가슴을 뜨겁게 하고 죽음을 무릅쓰게 한 것은 사람다운 삶을 향한 투쟁 아니었을까요? 그 기억을 새삼 들추게 하는 역사공원은 가톨릭교회의 성지라는 특수성을 훌쩍 뛰어넘어 ‘Catholic'의 의미 그대로 보편적인 의미를 얻습니다.

 

공원 한복판 벤치에 캐나다 작가 티모시 슈말츠가 제작한 ’노숙자 예수‘가 있다.

 

천주교 신자들은 그 역사 때문에도 의미가 있겠지만 서소문 역사공원은 종교와 관계없이도 이미 많은 사람이 찾고 있죠. 특히 출사지로도 인기가 있고요. 어쩌면 역사박물관 곳곳에 배어있는 고요와 침묵이 사람들을 이끄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순식간에 침묵으로 들어서게 하는 힘이 있거든요, 이 공간들은요.

 

공원을 나서면 언덕 위에 지어진 중림동 약현성당의 첨탑이 저 너머로 보입니다. 그리고 길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서울로7017도 한눈에 들어오죠. 마음에 순례가 필요한 날, 소음과 속도 속에서도 고요한 순간을 얻고 싶은 날, 오랫동안 잊혀져있던 서소문을 찾아가 보지 않으실래요? 종교를 넘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던 선인들의 자취 속에서 잠시 위로도 얻게 되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서울의 하늘 밑이 조금은 더 따뜻하고 조금은 더 행복해지는 시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글/사진:50+시민기자단 이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