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사박물관에 가서 새로운 힘을 얻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면 사는 것이 쉬워지리라 생각했다.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50+가 되어도 어려운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통 줄어들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다. 똑같은 문제이면 쉽게 해결할 것 같은데 실제는 비슷하지만 생소한 문제라는 것이다. 언제 어떻게 해결할지 막막하다. 온통 주위에 안개만 자욱하고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무진기행이다. 연속되는 문제에 대처하다 보면 기력이 소진되어 의욕이 저하되고 자신감이 밑바닥으로 떨어지곤 한다. 그때마다 새롭게 충전할 필요가 있다. 방전된 상태로 있으면 의욕이 상실되거나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고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일어난다. 몇 년 전 친구 2명이 차례로 자살했다. 한 친구는 퇴직하고 나서 생긴 생활고, 다른 친구는 사업 실패가 원인이 되어 친구와 상의도 하지 않고 혼자 고민하다 세상을 떠났다. 문제를 이길 새로운 힘을 얻는 일이 중요하다. 개인에 따라 나름의 방법이 있다. 시장에 가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거나 음악 감상을 하거나 등산을 하거나 훌쩍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해 본다. 추억을 활용하는 것이다. 과거 사건은 추억으로 머릿속에 아름답게 남아 있다. 추억의 매직이다. 좋은 면만 기억하려는 인간 두뇌의 속성이 아닐까. 당시는 도저히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보였던 일이 해결된 추억을 생각한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당시로 돌아가 보면 좋겠지만 과학이 발달한 현재도 시간 이동은 불가능하니 추억을 상기하는 방법을 쓰게 된다. 현재는 과거와 무관하지 않다.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없고 과거의 경험과 교훈을 활용하여 현재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과거 성공 경험을 통해 현재 당면한 난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과 새로운 힘을 얻는다. 위축된 생각을 벗어나 객관적 사고를 회복하면서 문제는 반드시 해결된다는 확신을 하게 된다. 수많은 도전에 대응하면서 체화된 능력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서울 생활에 대한 추억을 더듬어 보기 위해 서울 생활사 박물관을 찾았다. 총 5층 건물로 1층 서울 풍경, 2층 서울의 꿈, 3층 서울살이, 4층 기획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다. 흑백과 컬러 사진으로 그때의 모습을 담백하게 스케치하는 양식으로 보여준다. 해방 이후부터 현재까지의 서울 변화 모습을 파노라마처럼 볼 수 있다.

 

 

 

 

 전차가 다니고 정비되지 않은 거리와 현대화하지 않은 옛 건물들이 보인다. 아스팔트가 깔린 거리를 자동차가 드문드문 지나가는 모습도 나타난다. 샘표식품, 베스타제, 보온병, 왕자파스, 모나미 그림물감, 동아수련장, 구형 선풍기와 라디오, 전화, 전통 부엌을 보니 그때의 생활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물질적으로 풍요하지는 않았지만 활기차고 재미있었다. 어려울 때 서로 돕고 사람 사이에 인정이 많았던 시절이다. 너도나도 농촌에서 서울로 이동하여 서울 인구가 천만 명으로 증가했다. 집은 수요보다 공급이 적어 집 마련이 모든 시민에게 절실한 꿈이었다.  한 학급이 80~100명이던 콩나물시루 같은 교실에 2부제 수업이 기억난다. 높은 교육열 때문에 입시경쟁이 치열했다. 중학교 입시에 정답이 애매한 문제가 출제되어 무즙파동, 창칼파동라는 명칭으로 사회문제화되기도 했다. 결국 중학교 무시험으로 변경되어 은행알 추첨을 통해 배정받았다. 은행알 추첨기를 보니 그때의 감회가 새롭다. 겨울철에 교실 난로에 도시락을 데워서 먹은 기억도 잊을 수 없다. 찹쌀떡, 카스텔라, 수건과 같은 결혼 답례품도 눈에 선하다. 형제상회, 형제이발관, 화양극장 같은 간판도 정겹게 다가온다. 시대 변화에 따라 아쉽게도 인력거꾼, 문선공, 극장 간판 화가, 전차 운전기사, 물장수, 뱃사공, 채빙원 같은 직업이 사라졌다. 눈부시게 발전하여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만하다.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협조를 했다.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가 강했다. 희망을 품고 몸 사리지 않고 목표를 향해 매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보인다.

 

 

 

 

 생활사 박물관을 방문하여 사회적 추억을 확인하는 성과를 얻었다. 추억은 개인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있다. 개인은 사회를 떠나 살 수 없어 개인적 추억은 사회적 추억과 어느 정도 관련이 되기 마련이다. 사회적인 추억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6070년대 힘든 여건에서 우리나라를 이 수준까지 발전시킨 50+의 능력을 대단하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올해 초 예상하지 못한 일이 발생했다. 장기간 계속되는 코로나19사태로 다들 힘들어하고 있다. 어떻게 해결될지 언제 해결될지 막막하다. 그러나 숱한 어려움을 해결한 사회적 추억을 상기하면 어떤 어려움도 웃으면서 극복할 수 있다. 과거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역사의 교훈을 찾고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운 각오를 하기 위해 서울생활사박물관에 가볼 필요가 있다. 자신감을 회복하고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다. 위축되거나 자책할 필요가 없다. 지금까지 잘 견디어 온 우리 모두에게 격려와 찬사를 보내도 될 것 같다. 5살 손녀가 한 말을 빌려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괜괜찮아. 너무너무 괜괜찮아. 너무너무 괜찮아. 넘너무 괜찮아.’

 

 서울생활사박물관은 19년 7월 26일부터 9월 24일까지 시험운영을 끝내고 9월 26일부터 정상 운영을 시작했다. 현재는 코로나19사태로 휴관 중이다.

찾아가는 길 : 지하철 6, 7호선 태릉입구역 5번 또는 6번 출구를 이용하면 도보로 3분이 걸린다. 옛 북부지방법원 자리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