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안읍성에서 조선 시대 서민문화를 느끼다

-

 

1박 2일로 순천여행을 떠나 낙안읍성에 갔다. 안동 하회마을이 양반문화를 대표한다면, 낙안읍성은 서민문화를 대표한다. 흔히 3대 읍성으로 해미읍성, 고창읍성, 낙안읍성을 손꼽는다. 낙안읍성만 성안에 주민이 실제로 생활한다. 조선 시대 전기부터 600여 년의 역사를 오롯이 보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계획 지방도시다. 성곽, 중요 민속자료 등 다양한 문화재뿐만 아니라 가야금 병창, 판소리 등 유·무형 자원이 잘 보존되어 있다. 이곳을 떠나지 않고 지켜온 사람들이 있어 가능했다. 성 안팎에서 98세대, 228명의 주민이 아궁이에 불을 때고 농사를 짓는 옛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낙안이라는 지명은 '낙토민안(樂土民安)'과 관락민안(官樂民安)이라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낙토민안'은 땅이 기름져 먹을 것이 넉넉하고 굶는 이가 없으니 온 백성이 편안하다는 뜻이고, '관락민안'은 백성이 넉넉하여 송사가 적어서 벼슬아치가 즐겁고 백성들은 편안하다는 의미다. 1397년 낙안 태생 김빈길 장군이 토성을 쌓고, 1626년 낙안 군수로 부임한 임경업 장군이 석성으로 재건축했다. 사적 제302호로 지정되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 목록으로 등재되었다. 동헌 뒤에 금전산, 오봉산, 백이산, 제석산이 낙안읍성을 둘러싸고 있다. 멀리서는 동헌과 산들이 보이지만 가까이 가면 산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세종로에서 바라보는 경복궁의 축소판 같다.

 

낙안읍성 지도

 

읍성을 도는 길은 동문 → 임경업장군비각 → 객사 → 놀이마당 → 동헌 → 내아 → 낙민루 → 낙민관 자료전시관 → 서문 → 대장금 세트장 → 큰 샘 → 남문 → 옥사 → 연지 → 동문이고, 성곽길 코스는 동문 → 서문 → 전망 좋은 곳 → 남문 → 동문이지만 마음 내키는 대로 거닐었다. 초가집에 낮은 담장, 고샅길이 정겹다. 마치 고향에 온 것같이 마음이 편안하고 머리가 맑아진다. 시간이 멈춘 것 같다.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가 쓴 『오래된 미래』가 생각났다. 미래는 지속할 수 있고 인간이 행복을 느끼는 상태가 되기를 기대한다.

 

대장금 세트장

 

전통혼례 

 

유서 체험과 전통혼례 체험을 했다. 결혼한 지 36년에 지나 전통 혼례 체험을 하니 새롭다. 남은 기간 아내에게 잘해야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유서를 쓰고 관에 들어가는 체험을 했다. 이제 죽는다고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 죽음을 대비하여 살자. 불편한 대인관계를 만들지 말고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않기로 했다. 대장금 세트장, 동헌, 객사, 옥사, 낙민루, 빨래터(큰 샘터)도 돌아보았다. 여유 있게 와서 더 많이 느끼고 힐링하기로 했다.

 

유서체험장

 

관청의 정문인 낙민루

동헌

빨래터

 

낙안 8경 안내판이 눈에 띄었다. 낙안 8경은 1. 금강모종(금전선 금강암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 2. 백이청풍(백이산에서 불어오는 맑고 시원한 바람), 3. 오봉명월(오봉산에 뜨는 밝은 달), 4. 보람조하(채석산 허리에 피어오르는 아침안개). 5. 옥산총죽(임금께 진상하는 옥산 신우대로 만든 화살대), 6. 원포귀범(멀리 선수 앞바다에서 만선 깃발을 달고 돌아오는 돛단배), 7. 용추수석(용소의 맑은 물과 깨끗한 돌멩이), 8. 안동화류(안동 마을의 꽃과 버들)이다. 시간이 허락되지 않아 아쉽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낙안 팔경 안내판

 

로마 여행 갔을 때 불편을 감수하고 전통을 보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부러웠는데 낙안에 예스러운 조선시대 마을이 원형 그대로 보전돼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자랑스럽다. 거역할 수 없는 변화의 물결이 이곳은 피해 갔다는 사실이 다행이다. ​전통문화를 지키기 위해 불편함을 견디며 사생활 침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보상이 필요할 것 같다. 무조건 불편을 감수하라고 하기보다 전통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시대변화와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아 주어야 한다. 보존을 위해 입장 인원을 제한하는 사전예약제를 실시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이다. 문화가 힘이 되는 시대이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고 하듯이 문화의 기반이 굳건할 때 경쟁력을 가진다. 낙안읍성에 가면 가야금, 대장간, 서각, 자연 염색, 대금, 국악, 서당, 명예별감, 길쌈, 놋그릇 닦기, 두부 만들기, 전통혼례와 같은 다양한 체험을 맛볼 수 있다. 해마다 음력 1월 15일 전후 정월대보름민속한마당잔치, 5월에는 전국국악대전, 가야금병창경연대회, 10월에는 낙안읍성민속문화축제, 향토음식페스티벌, 전국사진촬영대회가 열린다. 이엉얹기, 대장간 체험, 두부 만들기, 창 배우기 등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을 갖고 싶다. 홀가분하게 다 정리할 수 있을 때 가능하리라. 낙안 읍성에 와서 살거나 그것이 힘들면 한달살이라도 할 것을 버킷리스트에 추가했다.

 

50+시민기자단 최원국 기자(hev56@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