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드 뮬러(Maud Muller)」

세상에서 가장 슬픈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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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 뮬러(Maud Muller)”는 미국 시인 휘티어(John Greenleaf Whittier, 1807~1892)1856년에 쓴 110행에 달하는 긴 시로 “100대 영어 애송시로도 유명하다. 한 편의 인생 드라마와 같은 이 시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모드 뮬러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여인과 지방 판사의 이루지 못한 사랑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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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드 뮬러(Maud Muller)

 

어느 날, 건초를 수확하는 아름다운 모드 뮬러는 지역 마을에 온 판사와 우연히 마주친다. 이후 판사는 그녀와 결혼하여 지역 농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하며, 그녀는 부유한 판사의 아내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인판 소나기처럼 어느 쪽도 속내를 끄집어내지 못한 채 속으로만 마음을 태운다. 판사는 그를 사랑하는 부자의 여성과 결혼하고 마드 뮬러는 교육받지 않은 젊은 농부와 결혼하는 역선택을 하면서 남은 생애 동안, 각각 그 옛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깊은 후회에 회고한다. 세월은 부채처럼 쌓이고, 젊음은 모래처럼 빠져나간 두 늙음의 공허 속에서도 정작 이 시를 세계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구절은 105행쯤에 쏟아낸 촌철살인 같은 아포리즘이다.

 

God pity them both! and pity us all,  (신이시여, 두 여인을, 우리 모두를 불쌍히 여기소서)

Who vainly the dreams of youth recall.  (젊은 날의 꿈을 헛되이 회상하는)

For of all sad words of tongue or pen,  (모든 슬픈 말이나 글 중에서)

The saddest are these: "It might have been!"  (가장 슬픈 건, “, 그때 해 볼걸!)

 

적극적 사고방식긍정적인 사고로 신념의 마력을 설파한 노먼 빈센트 필(Norman Vincent Peale) 박사는 여러 상담과 목격담을 통해 패배하거나 실패한 사람들이 은근히 독약처럼 품고 있는 단어, 어떤 언어든지 가장 슬픈 단어는 만약에(If only)”라고 한다.



탐험가이자 인류학자, 다큐멘터리 제작자였던 존 고다드(John Goddard)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어렸을 적부터 적어 오던 "꿈의 목록(Dream List)"이었다. 그는 127개의 꿈 목록을 써 내려갔고, 그중 111개의 꿈을 성취했으며, 그 후로도 500여 개의 꿈을 더 이루어 낸 꿈돌이로, 그의 꿈 이야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라이프, 리더스 다이제스트등 여러 잡지에 소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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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고다드(John Goddard)

 

그가 꿈 목록을 작성하게 된 까닭은 실로 우연한 일 때문이었다고 한다. 10대 때 할머니와 고모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계속 반복되는 내용이 "내가 10년만 젊었다면...", "다시 젊어진다면..." 등 가정법, 과거의 문장들을 사용한 신세 한탄들이었다. 어린 나이에 그는 자신도 어른들처럼 후회만 남기고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 즉시 식탁에 앉아 127개의 꿈의 목록을 써 내려갔다.

 

후회는 가상 세계에 미련의 산물이라고 한다. 하지만 시도나 도전에 따라 미련의 산물은 미소의 선물로 바뀔 수 있다. 그런 후회는 "행동 후회""비 행동 후회" 로 나눈다. 꿈자리에 도전해 실패한 후에 "그때 하지 말걸..." 이라 후회한다면 "행동 후회"지만 용기 내어 도전도 못 하고 나중에야 "그때 시도할걸..." 이라 후회한다면 이는 "비 행동 후회".

 

그래서 미국 코넬대 심리학자 톰 길로비치(Tom Gilovich)"비 행동 후회"의 경우 더 많이 후회하고, 후회감 또한 "행동 후회"보다 훨씬 크다고 한다. 삶을 되돌아보면서 가장 후회하는 것을 말해보게 하자 응답자 중 약 75%가 어떤 일을 하지 못한 "비 행동 후회"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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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비율

 

신념의 거장들이 내린 공통적인 처방은 "그때 했어야 했는데" 식의 "If" 대신 "Next!"를 강권한다. 나는 최근, 공공단체의 기관장에 네 번 도전하고 네 번 다 문턱 바로 앞에서 쓴맛을 봤다. 은퇴 이후 전적까지 더하면 가히 참담한 비극이다. 사전에 교감이 없으면 들러리 서기 십상이니 도전하지 말라고 누누이 들었지만 그럼에도 언감생심(焉敢生心)의 심정으로 바위에 계란 치듯 도전했다. 임명되지 못했다고 해서 실패한 것은 아니다. 임원추천위원회 면접장에서 어떤 면접위원의 넋두리를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저런 사람이 와서 일을 해야 하는데...”

 

인생이란 순간 순간은 비극일지 모르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희극이다.

(Life is a tragedy when seen in close-up, but a comedy in long-shot.)

 

꼰대+라떼에다 닭 수리처럼 길들여진 50+ 삶의 경로에서 한때의 과거에 먹이를 주지 않는다면 말이다. 어제의 태양으로 오늘의 옷을 말리지 말고, 오늘의 달빛으로 어젯밤 그림자를 비추지 말라. 머문 곳에서 파문(波紋)을 일으키면 그곳이 진리의 자리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나의 전성기는 Next!

 

 

50+시민기자단 황용필 기자 (yphwang@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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