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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즈음에'라는 노래를 좋아했었다. 채우지 못한 하루에 대한 쓸쓸한 가사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었다. 특히나 직장 생활 후 결혼과 아이 엄마의 삶을 받아들이며 쉼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초보 엄마의 마음에 이었다. 세월이 훌쩍 지났다.

 

아들들이 말하는 대화를 듣다가 무슨 말이냐고 묻기도 하고 공감하지 못하기도 한다. 자유로움 보다 눈치 보고 신경 쓸 일이 더 많아졌다. 나이 듦이 싫은 것이 아니라, 해야 할 일이 많기에 나이가 주는 압박이 느껴진다.

 

요즘 성격유형검사가 유행이다. 신기하게도 각자의 특징에 맞게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는 표현이 절묘하게 맞았다. 동갑내기 남편은 나와 성격이 반대다. 이성적으로 따지고 파헤치기 좋아하는 성격의 남편은 검사 결과에도 그런 사람이라고 나왔다. 서운할 만치 누구의 편도 잘 들지 않는 남편의 성격을 보면 맞는 것 같다. 남편은 남의 일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는다. 굉장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성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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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남편이 요사이 달라졌다. 말을 길게 하는 것도 싫어해서 핵심만 말하기를 좋아하던 사람이 내 주변에 관심을 보인다. 아들들과 하는 이야기를 궁금해 하고, 하나를 물어보면 열을 말한다. 드라마가 시작하면 다른 방에 있던 나를 불러 앉힌다. 못 본 장면은 열심히 설명도 해준다. 게다가 주인공에게 감정이입도 하며 세상 감성적으로 변했다. 어쩔 때는 우는 게 아닌가 슬쩍 확인하게 된다.

 

남편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다. 빈말 한 번 하지 않았고, 아이들이 아무리 잘 했어도 고작 하는 칭찬이 잘 했네가 다였던 남편이다. 일희일비 금지가 가훈 같았다. 그랬던 남편이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아들들과 어떻게 해서든 같이 식사하고 싶어 하는, 내가 없을 때는 음식 사진을 찍어 확인 시켜주고 칭찬을 기다리는 남편이 되었다. 우리 가족들에겐 드라마틱한 변화다. 아들들은 아빠의 변화가 싫지 않은 듯하다. 아니 유쾌하게 생각한다. 남편은 좋아하는 술에 관한 고집만 빼고는 굉장히 논리적이고 명쾌하다. 하지만 남편은 점점 나처럼, 나는 남편처럼, 감정선이 바뀌고 있다. 어쩌다 잡은 남편 손이 따뜻하다. 갱년기 발열로 따뜻함인지 아닌지 몰라도 남편의 변화되는 모습이 낯설지만 괜찮고 재미있다.

 

그렇게 우리 부부에게 갱년기가 왔다. 나는 커피를 마시다 가도 쉬도 때도 없이 더워졌다가 추워졌다가를 반복한다. 가끔 욱하는 마음도 생긴다. 드라마를 보다 가도 불의를 보면 갑자기 화가 난다. 우습게도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살아온 걸 생각해보면 의도치 않게 튀어나오는 분노가 내심 반가울 때가 있다. 하지만 여성 갱년기의 특징은 감정의 급변이다. 이내 모든 건 나의 잘못이라면서 자책한다. 더 지혜롭게 살아냈으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다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 감정의 변화, 달갑지 만은 않다. 아직 할 일이 많고 지켜내야 하는 것이 많아서 힘든 갱년기는 사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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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나는 갱년기가 동시에 왔기 때문에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 주면 될 것 같다. 언젠가 친한 동생에게 남편의 자는 모습을 보다 발을 보고 짠한 맘이 든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냐고 의아해 하던 동생이 얼마 전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더라고 했다. 남편 자는 모습에 그런 마음이 들더라고. 부부가 살다 보면 측은지심이 생길 때가 있다. 사실 측은지심이 생겨버리면 화가 나도 화를 내기가 어렵다. 아니 화가 잘 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문득 유명한 육아 멘토 오은영 박사의 대화 방법이 생각이 난다. 비단 아이들에게 만이 아니라 부부지간에도 필요한 말 같다. "그랬구나. 그런 맘이었구나. 속상했겠구나."

 

우리 부부, 갱년기를 무사히 넘기고 잘 살아내지 않을까. 20여 년을,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아픔을 겪었고, 같은 기쁨을 겪은 부부니까.

 

바람 같은 세월이었어도 나이테처럼 천천히 쌓였을 함께한 세월의 내공을 나는 믿는다. 남편 역시 내 마음 같지 않을까.

 

 

50+에세이작가단 리시안(ssmam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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