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핑계 댈 기준만 많아 졌다.

 

살다보니 나름 나만의 기준이 생겼다. 은퇴준비로 10년 전 한참 준비할 때, 시험에 2번 이상 떨어지면 "더 이상 시도하지 않는다."라는 기준을 만들었다. 열정을 쏟았지만 결국 안되는 것은 그 분야에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 그 열정을 다른 분야에 쏟으라는 암시인 것 같았다. 5년 전부터는 공부하려고 굳게 마음먹고 책을 펴면 1시간 이상 집중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난 후 ‘또 하나의 핑계거리’가 생겼다. 우선 읽는 내용에서 관련된 경험을 생각하게 되니 공부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엉뚱한 생각과 끊임없는 잡념으로 집중이 안되었다. 또 한편으로는 집중하고 1시간 정도 정독하고 나면 눈이 빡빡하다는 것을 느꼈다. 잠시 멈추고 주위를 두리번거린 후 다시 집중하기란 참 어렵고 왠지 진도에 뒤처지는 느낌에 책을 덮어 버렸다. 그래서 앞으로 시험을 치르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에 시험에 대한 생각을 접은지 꽤 오래 됐다. 왜냐면 있는 자격증, 경험, 지식도 다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데, 또 뭐에 쓰려고 그렇게 애쓰는 것이 내심 허락되지 않았다. 이제는 책을 보고 공부한다는 것도 새삼스럽고 어딘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지난번 시험 감독을 했을 때 시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게 되었다. 응시자의 연령분포가 68년생부터 98년생으로 한 교실에서 30세 차이가 있는 걸 보고 '도전'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산술적으로 68년생은 98년생보다 적어도 30년은 사용할 수 없는 나이지만 도전하는 자세가 좋아 보였다. 순간 100세까지 살아야 한다면,

나도 한 번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무엇에 도전할까 생각하던 중, 지금 나가고 있는 중학교 수업에서 3D를 접했고, 3년 전 3D 교육을 받았던 기억이 났다. 때마침 3D 자격증 시험이 신설 되었다고 해서

몇 번을 망설이다 접수 마지막 날(11월 29일) 눈 질끈 감고 접수했다. 3D가 젊은이들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도 새로운 것이기 때문에 한번 도전해 볼만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하는 분야를 탐하는 것이 아니고, 적어도 40년을 더 살아야 하는데 막연히 그 언저리 언제쯤 꼭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었다. 어쩌면 정말 꿈도 야무지게 "노년을 즐겁게"라는 타이틀로 예술과 접목해서 시니어를 대상으로 한 3D프린팅 강의를 하면서 같이 놀고 있을 것 같다. 

 

      

 

시험 접수 때까지만 해도 3D 시험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고, 주변에 3D에 대해 물어 볼 사람도 없었다. 시험 날은 12월 22일.

 

마음이 급해서 요즘 흔히 하는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보았다. 다행히도 시험 준비 카페가 있었고, 서너 개의 수험서가 있었다. 이럴 때 책을 선정하는 나만의 기준도 생겼다. 두꺼우면 다 못 읽을 것 같아 제일 페이지 수 적은 책을 선정했다. 그리고는 관련 카페에 가입했는데, 이미 만 명이 넘은 카페로 시험을 향한 수험생들의 열기가 대단했다. 곧바로 책을 펴서 공부할 요량으로 시작했지만 왠지 핑계삼을 거리가 참 많았다. 머릿속에서는 항상 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게으른 행동에서 절실함이 없었다. 이것저것하다 보니 훌쩍 시간이 지났고 딱 1주일 전까지 구입한 책은 첫 장도 넘기지 못한 채 구석에 내동댕이쳐졌다. 공부하긴 해야 하는데 엄두가 나질 않았다. 그래도 이번에 이 책을 안 펴 보면 언제 읽을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두 번 읽기로 하고 첫 장을 폈다. 여러 개의 자격증 시험을 치르는 동안 적어도 두 번은 읽어야 한다는 또 하나의 기준이 있었기 때문이다. 첫 장을 펼쳤지만, 매우 생소하고 어렵다. 무슨 소린지? 저자가 무슨 말을 하려 하는지? 자꾸 의심도 갔지만 두 번 읽기로 한 목표를 위해 읽어 나갔다. 틈틈이 읽어 절반이 넘어가니 내용이 어느정도 이해가 됐다. 내용을 앞뒤 로 맞춰보니 대충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왠일인지 집에 가면 책만 펴 있지 통 진도가 안 나갔다. 이번에 또 새로운 기준이 생기는 것 같다.

 

가까스로 두 번 읽고 시험장에 갔다. 처음 치러지는 시험이라서 과연 응시자가 많았다. 대부분 젊은이들이었다. 이번엔 감독관에서 시험 응시자로 위치가 바뀌었다. 역시 긴장되었고 무슨 내용이 나올까 무척 궁금했다. 오전 9시, 시험장 입실해서 시험시작까지 기다리는 30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시험시간은 1시간, 4지선다형 60문제로 30분이면 충분하겠지 했다. 언뜻 시험지 첫 장을 넘겨보니 처음 보는 몇몇 문제들로 생소해서 더욱 긴장됐다. 그래도 집중해서 문제를 풀었고, 40번째 문제를 읽을 쯤 눈이 빡빡함을 느껴 집중과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는 걸 느꼈다. 눈 한번 비비고 계속 문제를 풀어 갔고, 뒷부분에 계산하는 문제가 있어 시간을 많이 뺏었다. 일반적으로 1회 시험은 누구도 예상을 못하는 문제가 더러 있다. 이번에도 책이나 예상문제에서 보지 못한 내용도 있었지만, 지난 세월 경험과 이치를 따져 문제를 풀어 나갔다. 소싯적에는 무조건 외워서 문제를 풀었을 때와는 접근법이 달랐다. 결국 1시간 거의 다채우고 나서야 가까스로 10분전에 마칠 수 있었다. 홀가분했다.

 

개인적으로 신설되어 처음 도입하는 1회 자격증 시험이 더 쉽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해가 거듭될수록 변별력을 위해 더 많은 지식을 요구하기 때문에 1회 시험이 수월한 것 같다. 아직 발표는 안했지만 무난한 것 같다면 너무 성급한걸까?  이것을 언제 어디에 사용할지는 몰라도 오늘 하루는 새롭게 도전했다는 의미있는 날이었다. 적어도 3D에 관해서는 젊은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다. 아직 실기 시험이 남아 있다. 앞으로 도전을 회피하기 위한 스스로 핑계 댈 만한 기준이 안만들어 졌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