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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3월에는 마스크를 사기 위해 약국 앞에서 줄을 많이 섰다. 어떤 날은 한 시간을 넘게 기다리다 내 앞에서 판매가 끝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약국에 여분이 있다 소식이 나면 식사하다가도 뛰어가서 사 오기도 했다. 동네 지인들끼리 하는 단톡에는 누가 어디서 샀으니 그곳으로 가라고 알려 주었다. 하나 둘 마스크들을 모아 놓을 때마다 왠지 큰일이라도 하는 것처럼 뿌듯했다. 사실 우리 가족 나머지 세 명은 아무도 마스크를 사려고 하지 않았다. 으레 내가 사 온다는 생각이었는지. 하루 몇 개지만 마스크를 구하는 일이 얼마나 땀나는 일인지도 모른다. 안 해봤으니. 줄도 안 서 보고 구하러 뛰어다녀도 안 해봤으니까 뭐라고 할 수도 없었다. 고생했다는 리액션이라도 해주면 좋지만 그나마 리액션도 없어지고 점점 당연히 여기는 것 같았다. 치사하게 리액션이 뭐가 필요하겠냐만은, 힘들어 들어올 땐 가족들의 리액션이 없으면 기운이 더 빠지는것 같았다. 말하면 공치사 같아서 더 맘 상하니까. 더 이상 어떻게 사 왔는지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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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때론 우습게도 무용담처럼 얘기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결국은 내가 불안해서 요일제에 맞는 날엔 꼭 줄을 섰다. 나는 발바닥이 뜨거워진다는 게 뭔지 경험했다. 그때 사람들의 걷는 모습이 마치 경보하는 것 같았다. 동네 엄마들과 두 시간을 헤매서 달랑 2개라도 사게 된 날엔 그날 하루의 일을 해낸 것처럼 서로를 보고 웃던 기억이 난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온 동네 약국을 돌고 나면 헤어질 때쯤엔 지친 웃음이 나온다. "마스크 있어요?" 물으면 약사들은 하루 종일 같은 말을 대답하는 대신 고개만 가로저었다. "없어요"도 듣기 힘들다. 약국 문 앞에 붙여놓은 마스크가 매진됐다는 종이는 항상 붙어 있었다. 떼었다 붙였다 하기도 지칠 만큼 동네 약사님의 얼굴도 퀭했다. 퇴근 후 사야 하는 직장인들을 위해 늦게까지 약국 불이 켜져 있었고 모두가 이 낯선 상황에 점점 지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마스크 한 개를 며칠을 써야 했기 때문에 벗어 놓은 마스크들은 서랍장 손잡이에 조심해서 걸어 놓아야 했다.

 

주문했던 마스크가 5개월만에 도착했다. 박스 안에는 늦은 배송에 대한 사과와 상점 문을 닫고 그 당시 주문분 까지만 제작했다는 사연의 편지가 들어있었다. 그리고 죄송하다며 마스크 한 박스를 더 보내주었다. 라벨엔 중국 OEM이라고 쓰여 있지만 국내산으로 만든 마스크니까 안심하고 사용하라는 당부의 글도 덧붙였다. 주변의 반응은 나도 5개월 만에 마스크를 받아 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문득 물량이 부족해서 당시의 주문분까지는 늦어도 보내 주겠다던 마지막 문구가 떠올랐다. 늦었지만 약속을 지켜주신 마스크 업체에 감사했다. 마스크를 받아 나도 좋고 끝까지 마무리한 업체도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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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내가 마스크 대란에도 여유가 있었던 이유는 여차하면 만들어 쓰겠다는 생각으로 천과 필터를 주문해 놨기 때문이었다. KF94 마스크가 아쉬울 때라 천 마스크에 꽂혀서 바느질을 했다. 천 마스크를 만들어 지인들에게 나누어줬다. 예전에 퀼트로 만든 것들을 나눠주던 즐거움처럼 주는 즐거움이 있었다. 오가닉 천들로 정성껏 마스크를 만들었다. 퀼트처럼, 받는 사람을 생각하고 만들다 보면 느낌들이 다 다르다. 내가 뭔가에 꽂힐 때는 어디서 에너지가 나오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꽂히면 힘이 난다는 거다. 너무 단순한가. 지금은 마스크 구입이 수월해져 재료들을 서랍에 깊숙이 넣었고. 더 이상 만들지 않아도 되었다. 이제 시중에선 마스크 구하기가 쉬워졌다. 그런데 최근 4단계가 되면서 다시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다고 해서 걱정스럽다. 그때처럼 마스크 대란이 오진 않겠지 싶으면서도 우려가 된다. 당분간은 마스크 쓰기가 지속될 것 같다.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이 낯선 게 아니라 마스크를 쓴 사람이 눈에 띄는 세상이 기다려진다. 서랍 안에 있는 마스크 재료들이 묵혀 쓰지 못해도 너무 당연해서 감사한지 몰랐던 일상이 정말 그립다.

 

50+에세이작가단 리시안(ssmam9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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