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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쯤 춘천에 살 때, 집 앞 큰길을 사이에 두고 문구점 두 곳이 있었다. 두 문구점 남자 주인은 무뚝뚝하고 불친절하기로 소문이 났었다. 당시 나는 초등학생 학부모라 문구점에 갈 일이 많았는데, 두 문구점 주인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잘 지냈다. 다른 엄마들은 왜 나한테는 친절한지 물었다. 나의 대답은 한마디였다. “사장님이라고 부르거든.” 하지만 내 말을 들은 뒤에도 그녀들은 여전히 아저씨!”“저기요!”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왜 문방구 주인을 사장님으로 부르는 데 인색할까? 궁금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에겐 아직도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차별의식이 있는 듯하다. 직업은 계급이 아니라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정신노동을 육체노동보다 더 가치 있는 노동으로 여긴다. 2018년 국가인권위원회의 초등 교과서 모니터링 연구 발표만 봐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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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2학년 통합교과 교과서에는 소방관과 경찰관, 급식조리원, 미용사 등은 ‘~아저씨’ ‘~아주머니등으로 불렀지만, 의사의 경우 의사 선생님으로 표현했다. 인권위원회는 해당 직업을 지칭하는 일상적인 표현을 반영한 것이라고 해도 이를 교과서에 서술하는 경우 학생들이 어떤 직업은 존경받고 어떤 직업은 아닌 것으로 편견이나 고정관념을 가질 수 있다고 밝혔다.

 

직업을 비롯해 성별, 나이, 인종, 성 정체성, 장애 등에 대해 사소한 편견이나 선입관이 만들어내는 생활 속의 차별을 먼지 차별이라고 한다. ‘먼지 차별(Microaggression)’아주 작은 (Micro)’공격 (Aggression)’의 합성어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먼지처럼 우리는 나의 언어나 행동이 차별이 담겼다고 생각하지 못할 때가 많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내 말에 상대방이 기분 나빴거나 상처를 받았다면 차별이 될 수 있다.

 

얼마 전 졸나이 들면 즐거운 일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의 마지막 원고 수정을 할 때였다. 교정 전문가가 내가 원래 쓴 말문이 막혔다는 문장을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로 교정해 놓았다. 처음에는 적절한 비유로 바꿨구나 했다가 곧 적절치 않음을 깨달았다. ‘벙어리는 언어장애인을 낮잡아 부르는 비하 용어이기 때문이다. 출판사에 연락해 다시 원래 문장으로 돌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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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어처럼 쓰이는 귀머거리 삼 년 벙어리 삼 년도 그렇다. 신체기능의 불편함을 지적(知的) 부족함으로 대치한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 혹은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씌운다. ‘벙어리장갑역시 떨어져 있어야 할 손가락이 붙어 있는 모양이 언어장애인은 성대와 혀가 붙어 있다.’라는 잘못된 속설에서 유래 되었다 한다. ‘벙어리 냉가슴’, ‘눈뜬장님’, ‘장님 코끼리 만지기’ ‘눈먼 돈등 장애인의 불편한 신체에 비유는 이제 쓰지 말아야 할 표현이다.

 

성별에 따른 먼지 차별역시 익숙한 일상의 언어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남자가 이 정도 무게도 못 들어?” “여자치고는 운전을 잘하네?” “남자가 대범하지 못하게” “여자라 섬세하시네요!” 개인의 신체 능력과 성격의 차이를 꼭 성별에 대입해서 말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먼지 차별은 욕설처럼 강하게 표가 나지 않아 차별당한 사람이 문제를 지적하면 오히려 예민하다, 까다롭다는 말을 듣기도 한다. 말하는 이의 사소한 언어 습관 때문에 듣는 이가 모욕을 느낀다면 고쳐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마트에 갔다가 장갑 형태의 샤워 타올을 손모아 때장갑이라고 표기한 것을 보고 반가웠다. 인권위원회는 벙어리장갑이 아닌 손모아장갑으로 바꿔 부르기를 권하고 있다. 먼지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해롭고, 치우지 않으면 쌓인다. 내 안에 쌓인 먼지 차별을 털어내 보자. 우리가 차별의 언어부터 버릴 때, 우리 사회의 낡고 굳어진 인식도 조금씩 바꿔 갈 수 있을 것이다.

 

50+에세이작가단 전윤정(2unne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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