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부캠퍼스에서는 비대면 학습 환경의 변화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캠퍼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50+세대에게

음악, 영화, 미술 분야 명사들의 수준 높은 인문학 강연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접하기 어려웠던 문화예술을 통해 사색과 힐링의 시간을 제공하고자

3편의 문화예술특강을 마련하였습니다.

 

[음악] 전염병과 클래식 음악의 역사 : 조은아 교수
[영화] 영화로 들여다보는 호모루덴스 : 유지나 영화평론가
[미술] 사색과 치유의 공간, 미술관 여행 : 안현배 작가

 

유튜브라이브를 통해 많은 분들에게 공감과 힐링의 시간을 선사하며

인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기쁨을 주었던 특강 이야기를 후기를 통해 전달합니다.

 

+++

 

 

주변부의 초조함은 모방을 벗어나 ‘자기’가 될 수 있을까
-

안현배 작가, 사색과 치유의 공간, 미술관여행

 

 

 

 

유렵의 주변부 러시아와 미국의 미술은 왜 서구 모방의 초조함에 쫓겼을까. 본래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었음에도 자신들을 재단하는 중심부의 시선에 억눌려 열등감에 시달렸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몸부림으로 서구 문화 수입에 몰두하게 된다. 모방은 자신의 실체에 대한 의문을 가져오고 이런 자각은 자신의 본 모습을 찾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진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의 머리에 해당하는 도시로 고립된 러시아가 발전된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는 창구 및 연결 고리 역할을 했다. 특히 서구 문화를 흠모하고 모방하려는 의욕과 초조함이 묻어있었던 곳으로 겨울궁전과 에르미타주 박물관이 있다. 상대적으로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심장으로 모방의 초조함이 묻어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비해 러시아만의 특징을 키우고 지켜내려던 의지가 드러난다. 

 

에르미타주 박물관은 예카테리나 2세가 서구 미술품을 적극적으로 구입하여 전시하거나 프랑스의 백과전서파 디드로 등 서유럽 학술과 문화 예술을 적극 수용하려고 했다.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등의 작품이 많이 전시되어 있음에도 소장 규모에 비해 그 수준은 그리 높지 않았으나 루벤스, 반다이크. 렘브란트 등의 바로크 컬렉션은 서유럽 고급문화 취향을 모방하려는 노력으로 꽤 수준 높은 작품 수집으로 이어졌다. 

 

 

 

 

이동파(移動派, 러시아어: Передвижники, 혹은 이동전람파)는 19세기 말 러시아 제국에서 탄생한 유파로, 러시아의 모든 민중들에게 예술작품을 감상할 기회를 주기 위해 여러 도시로 옮겨 다니며 전시회를 연다는 취지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미술계의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을 펼친 유파라고 평가되며 반체제적 성격을 띠고 미술계의 민주화를 이끌었고 아카데미즘의 권위주의에 대항했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이반 크람스코이, 일리야 레핀, 바실리 수리코프 등으로 러시아 인들의 생활에 뿌리를 내리고 일상의 고단함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일리아 레핀(1844-1930)은 이동파 화가로 러시아 리얼리즘의 대표자. ‘이반 뇌제, 자신의 아들을 죽이다.’, ‘볼가 강의 뱃사람들’(몸에 끈을 묶고 배를 땅으로 끄는 사람들 묘사), ‘쿠르스크 현의 십자가 행렬’(장교의 회초리, 목발을 짚은 가난한 청년의 모습 대비 묘사), ‘터키 술탄에게 편지를 쓰는 자포로쥐에 카자크들’(문맹이었지만 자유로운 삶을 구가했던 삶의 묘사) ‘밭을 가는 톨스토이’ 등 러시아인의 삶과 정서를 깊게 바라보는 시각이 그림에 담겨 있고 그의 작품 제작 과정은 러시아 자신의 모습을 찾기 위한 분투의 과정이었다.

 

미국의 18세기 프레드릭 처지, 존 싱글턴 코플리 역시 러시아의 서유럽 모방과 비슷하게 유럽의 화풍을 모방하는 그림을 그렸다. 그 후 뉴욕의 MOMA(Museum Of Modern Art) 개관은 미국 미술계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초기에는 서구 작품을 수집하여 전시하였으나 후기로 갈수록 미국 작가를 발굴하고 이야기를 담아 전시하며 미국 미술 발전을 선도하고 있다.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모네의 ‘수련’ 시리즈, 피카소의 ‘아비뇽의 아가씨들’ 등의 고전 작품 전시와 더불어 현대 미국 작가로는 에드워드 호퍼의 도시의 고독과 소외를 그린 작품들, Andrew Wyeth의 Christina`s World(1948),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등의 작품이 전시하고 있다.

 

 

 

 

마크 로스코 (1903-1970)는 러시아 출생 유대인으로 부모를 따라 미국에 이주한 색채추상 화가로서 서유럽의 전통, 역사와 현대 도시의 소외, 아픔, 슬픔을 함께 그림으로 창조한 중간자 역할을 하였다. 그는 후기로 갈수록 어떠한 형태와 이미지도 색과 면 이상의 표현을 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여러 색면을 교차시키는 멀티폼 형식에서 간결한 그림을 그렸다. 인간의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어떤 것을 그릴 것 인가보다 무엇을 느끼게 할 것 인가를 고민했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보는 이들에게 45cm의 거리에서 바라보기를 조언하며 자신의 작품이 ‘다른 세계로 나아가는 창’이기를 바랐다. 가까이 다가가 바라보는 그림 속 다른 세계를 느끼며 증명이나 논증이 아니라 그림을 통해 인간이 품을 수 있는 상상력과 가능성을 읽어내기를 권한다.

 

그의 작품으로 둘러싸인 ‘로스코 채플(휴스턴 소재)’은 색면을 통해 명상과 자기 직면을 하도록 허용한 공간으로 종교와 상관없이 이용 가능한 곳이 되었다. 그에게 그림 보기는 작품에 가까이 다가가 거리를 좁혀 자세히 들여다보며 자주 보던 구도에서 벗어나 다른 시각에서 작가의 작품과 세계를 더 느끼는 계기를 만들어낸다. 이를 통해 작가가 그리려했던 이야기를 읽어내고 나뿐만 아니라 남도 함께 느끼는 공감의 창 역할을 하게 된다. 

 

안현배 작가는 “네가 힘들 때 남도 힘들다”라는 말이 과연 위로가 될 수 있을까? 하고 물었다. 이런 빈말 보다는 미술 작품 이해 노력을 통해 삶의 다른 지점으로 눈을 돌려 플랜 B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통해 스스로 위로 가능성의 접점을 찾아나서는 것이다. 작품을 보고 느낀 소감을 스스로 적은 글이나 거기에 들인 시간들은 나중에 반드시 자신에게 보상을 베푼단다.

 

 

 

코로나가 던지는 인간 존재와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를 당황케 하지만 삶의 자리를 다시 되짚어보라는 메시지다.

코로나는 질병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선 시점의 변환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익숙했던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되먹임을 요구한다.

‘거리두기’를 새로운 삶의 원리로 발명해야 하는 지금,

끈적이는 인간의 “욕망과의 거리두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익숙했던 길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길은 끊어져 있고

아직 새 길은 놓이지 않은 사이 예술도 놓일 자리를 새로 잡는다.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연주회, 전시회, 혼영(혼자 보는 영화)은 예술의 존재 방식을 되묻고 있다.

예술은 지금까지 인간들이 연결되어왔던 세계를 앞으로 어떻게 새로 연결할 것인지

뒤로 물러나 방향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예술은 억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보다는 그 의미와 상태를 통찰하는 눈을 얻어

다른 곳에 가 닿으려는 힘을 건넨다.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학습지원단

조윤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