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는 우리에게 묻는다. 자신에게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냐고, 멈춰 서서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스스로 짚어본 일이 있었느냐고, 서로 너무 밀착되어 아귀다툼하며 살아온 것은 아니냐고, 이제 좀 떨어져 서로를 지긋이 바라보며 살아가야 되지 않느냐고, 이 서늘한 질문의 걸림돌을 어찌 치우며 넘어갈 것인가, 예술은 이리도 고된 질문을 풀어낼 실마리를 건네줄 수 있을까, 음악, 영화, 미술은 숨 막히는 상황에 한 줄기 신선한 바람을 실어다 줄 수 있을까

 

중부캠퍼스에서는 비대면 학습 환경의 변화와 사회적 거리두기로 캠퍼스를 이용하기 어려운 50+세대에게

음악, 영화, 미술 분야 명사들의 수준 높은 인문학 강연으로

코로나19로 인해 접하기 어려웠던 문화예술을 통해 사색과 힐링의 시간을 제공하고자

3편의 문화예술특강을 마련하였습니다.

 

[음악] 전염병과 클래식 음악의 역사 : 조은아 교수
[영화] 영화로 들여다보는 호모루덴스 : 유지나 영화평론가
[미술] 사색과 치유의 공간, 미술관 여행 : 안현배 작가

 

유튜브라이브를 통해 많은 분들에게 공감과 힐링의 시간을 선사하며

인문학을 향유할 수 있는 기쁨을 주었던 특강 이야기를 후기를 통해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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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현실은 늘 따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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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나 교수, 영화로 들여다보는 호모루덴스(Homo Ludens)

 

 

LIVE 기획특강, 코로나19, 랜선으로 떠나는 문화예술 기행2, 영화로 들여다보는 호모루덴스, 2020.11.19(목) 15시 부터 16시 30분, 유지나 영화평론가

 

 

‘영화 같다’ ‘시나리오를 쓴다’ 모두 비현실적 상황을 묘사한다. 하지만 영화 같은 재현의 방식을 통하지 않고는 현실을 제대로 깨닫기 힘들다. “(현실의)건물 안에서는 건물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를 통해 나와 세상을 들여다보며 ‘놀이하는 인간’으로 태어난다. 

 

호모사피엔스, 호모파베르(Homo faber)를 넘어 ‘놀이하는 인간’ 호모루덴스. “삶의 본질을 자유로운 놀이”로 여기는 호모루덴스에게 “놀이는 삶보다 진하다.” 그에게 “삶의 행복과 의미 또한 놀이로부터” 시작한다. 호모루덴스는 “놀이/예술 하는 인간”이다. 어린아이의 놀이 삼매경 대신 ‘성공 놀음’에 빠진 어른들은 자신을 잊고 살아간다. 사는 게 재미있을 리 없다. 
코로나는 납작하게 엎드려 사는 우리에게 무거운 질문을 품게 한다. “이 난리굿이 언제나 끝나지?”, “코로나에 걸려 그냥 가는 것은 아닐까?”, “내 일자리는 안전한가?”, “재미난 모임은 이제 끝난 것인가?” 많은 이들이 코로나블루(Corona blue)홍역을 앓고 있는 중이다. 코로나가 가져온 untact 문화는 단절의 두려움 함께 끈질긴 인간 굴레에서 벗어나는 홀가분함도 선사한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일상화되면서 오히려 사람 사이에 숨 쉴 틈이 생긴 것은 아닌가. 

 

인간은 어떤 동기로 살아가는 것일까? 다니엘 핑크는 가장 밑바닥의 ‘생존 욕구’를 넘어 ‘보상 동기(당근과 채찍)’가 일단 사람을 움직이게 한단다. 지속적인 마음 끌림은 밖의 보상이 아니라 자기 안의 욕구에 따른 ‘자체 보상’에 의해 이루어지고 오히려 보상이 없을 때 재밌는 놀이를 하며 즐거움을 얻는단다. “놀이와 창의성”욕구가 사람을 오래 끌고 간다.

 

 

영화포스터를 보며 평론을 하고 있는 유튜브영상 캡쳐 이미지

 

 

‘호모루덴스’되기는 ‘홈 파인 공간’에 범생이로 사는 일이 아니라 삶에 살짝 빗금을 긋고 삐딱선을 타며 자기 길을 가는 일이다. 루덴스의 삶을 산 이들이 하는 말들이다. “해야 되는 걸 하는 게 일, 안 해도 되는 걸 하는 게 놀이”(마크 트웨인), “나는 놀이를 발명했다. 나 자신을 즐겁게 하려고....”(백남준) “Life isn`t about waiting for the storm to pass.....It`s about learning to dance in the rain.” (삶은 다가오는 폭풍우가 지나가길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빗속에서 춤추기를 배우는 일이다.)

 

예술의 힘은 어디로부터 나올까. “도덕론은 인간을 못 바꿔도 예술은 바꾼다.” , “예술은 존재의 공허감에 대한 해독제를 찾는 것”(미드나잇 인 파리) 이유 없이 태어나 그냥 살아가는 존재로서 놀이와 진지함의 경계를 왕복하며 불안해하기도 하지만 끝없는 경쟁, 성장의 논리로부터 탈주하여 예술, 놀이, 일이 하나 되도록 다리 놓으며 살아보기. “예술은 일종의 자기만족으로 인간이 향유해야 할 고상한 즐거움을 준다.”(아리스토텔레스)

 

코로나 시대는 영화 보기의 길도 바꾸어 놓았다. 극장의 들뜸과 열기를 벗어나 ‘혼자 보는 영화’의 흐름이 생긴다. 자발적 ‘외로움’이 필수가 되었다. 외로움은 ‘나와 어떻게 만날 것인가’의 문제다. 코로나는 ‘초연결 사회’에서 ‘단절의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를 시험하고 있다. “얼마나 깊이, 진지하게, 창조적으로 끊어질 수 있는지”묻고 있다. 끊어짐은 ‘고독’이다. “세상 무리의 도덕”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질 수 있느냐의 싸움이다. 

 

영화포스터를 보며 평론을 하고 채팅창을 확인 하고있는 유튜브영상 캡쳐 이미지

 

 

유 교수가 변화의 삶을 즐기는 루덴스 영화로 추천하는 작품들은 먼저 <언터처블 1%의 우정>이다. 접점을 찾지 못할 것 같은 금수저와 흙수저 두 남자의 계급을 뛰어넘는 깊은 우애와 우정. 장애와 비장애의 거리가 흐릿해지며 다가오는 관계와 소통의 트임. 
<러빙 빈센트>는 고흐의 마지막 편지를 전하라는 배달부 아버지의 부탁에 시큰둥했던 청년 아르망이 고흐의 주변인들을 만나며 고흐의 사람됨을 알게 되고 그의 죽음을 추적하는 행동의 변화를 가져온다. 우연의 계기로 새로운 세상 보는 눈이 트인 것이다. 

 

에디트 피아프의 생을 노래한 은 비천한 태생의 가수가 굴곡진 삶 가운데 죽을 때까지 음악을 추구했던 열정의 삶을 그린다. 병들고 지닌 몸을 지녔음에도 “아니요,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를 노래한다. 
<로큰롤 인생>은 노인들의 공동체가 어떤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새롭게 맺어진 노인들의 우애가 전선을 넓힌다. 후배 세대들과 자신들의 경험과 지혜를 나누며 함께 성장한다. 노인들은 밴드활동을 일상과 놀이로 재배치한다. 세상 가치를 붙들기보다 “자기들 속으로 파고들어 놀이하는 즐거운 인간”의 길로 삶을 선택한다. 

 

 

두 사람이 대화를 하며 채팅창을 확인 하고있는 유튜브영상 캡쳐 이미지

 

 

유지나 교수는 삶은 고통과 갈등 속에 이야기를 탄생시키는 과정이고 아주 다양한 힘들이 서로 작용하면서 삶의 내용을 구성한다고 본다. 세상에 꽃길만 있겠는가. 산화된 길, 낙엽 진 길도 있으며 결국 인간은 “먼지로 가는 존재”가 아닌가. 영화는 이러한 인간 한계를 깨닫고 타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서사를 품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사기 이미지

 

코로나가 던지는 인간 존재와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은

우리를 당황케 하지만 삶의 자리를 다시 되짚어보라는 메시지다.

코로나는 질병이기도 하지만 우리가 선 시점의 변환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하다.

익숙했던 우리의 삶의 방식에 대한 근원적인 되먹임을 요구한다.

‘거리두기’를 새로운 삶의 원리로 발명해야 하는 지금,

끈적이는 인간의 “욕망과의 거리두기”가 절실한 시점이다.

익숙했던 길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길은 끊어져 있고

아직 새 길은 놓이지 않은 사이 예술도 놓일 자리를 새로 잡는다.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연주회, 전시회, 혼영(혼자 보는 영화)은 예술의 존재 방식을 되묻고 있다.

예술은 지금까지 인간들이 연결되어왔던 세계를 앞으로 어떻게 새로 연결할 것인지

뒤로 물러나 방향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예술은 억압과 고통에서 벗어나기 보다는 그 의미와 상태를 통찰하는 눈을 얻어

다른 곳에 가 닿으려는 힘을 건넨다. 

 

 

 

서울시50플러스 중부캠퍼스 학습지원단

조윤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