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찾은 영화관에서 만난 《엄마의 공책》 속에는 친근한 단어들이 곳곳에 배어나온다. 엄마, 가족, 반찬.. 듣기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지고 포근하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갈수록 한번쯤 생각해보기 시작한 단어들도 등장한다. 노년, 치매, 요양원.. 어쩐지 서늘한 외로움이 마음에 그늘처럼 드리워진다.
영화는 맛있고 영양 가득한 반찬을 파는 가게를 운영하는 엄마와 시간강사인 아들의 관계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엄마의 치매 때문에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는데 먼저 떠나보낸 아들 때문에 생긴 슬픔이 엄마의 아픔으로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결혼한 딸도, 똑 부러지는 며느리도, 어쩐지 철이 없어 보이는 아들도, 모두 치매라는 병 앞에서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들이 보인다. 엄마 본인조차도 치매라는 병에 대해 알고 있다가도 잊어버리고 정리하는가 싶다가도 또 잊어버리고 그렇게 길도 잃어버리고 자식도 잊어버리고 아픈 사연에 도벽도 생기고 없던 고집도 생기고.. 치매가 가족 누군가의 삶 속으로 등장했을 때에 겪을 법한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나갔다.
마지막은 엄마가 반찬가게를 하며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좋아하는 먹거리에 대해 풀어놓은 공책을 발견하고 늦게나마 엄마의 공책을 책으로 발간하고 그저 흘러가버린 듯했던 엄마의 삶이 여러 사람들에게 영향력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모습을 보며 잔잔한 감동이 마음을 울렸다. 부디 기억을 잃지 않고 아프지도 말고 나이 들지도 않고 살기를 바라고 싶지만 자식의 힘으로는 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저 부모님의 인생을 인정하고 기억하고 사랑하는 길 뿐이다.
이러한 마음으로 치매가족을 대한다면 그 어떤 의술보다 약보다도 좋은 사랑의 치료가 되지 않을까... 김남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