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의 리더 독일에서 배운다 7강
이번에는 독일의 과거사 극복과정에서 그 단초를 제공하고 통일의 길을 닦은 토마스 만,
빌리 브란트, 귄터 그라스 3인이 독일현대사에 끼친 행적과 그 의미를 알아보기로 했다.
토마스만은 괴테 다음으로 많이 연구되는 독일 작가로 성숙한 휴머니즘의 대표이자 가장
독일적인 작가이다.
그의 작품 전반기는 갈등과 고뇌, 현실로부터 도피로 [부덴부로크가의 사람들]로 자신의 가문
에 대한 이야기를 소설화 했다. 이 소설로 그는 후에 노벨 문학상을 수상 했다.
중반기는 [대공전하], [마(魔)의 산(山)]을 집필했고 마의 산은 스위스 산골 마을 다보스 요양원을
배경으로 했다.
후반기에는 [선택된 인간], [바이마르의 로테] 등으로 나르시스적 예술가의 면모를 탈피한 작품을
주로 선보였다.
바르샤바 유태인 희생자 묘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유태인들에게 사죄했던 모습과 동방정책으로
조국 통일의 초석이 된 빌리 브란트 총리는 전쟁 중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 망명생활을 하며 대
나치투쟁을 전개한 투사였다.
또 최초로 동서독 정상회담을 가졌고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해 통일의 초석을 다졌다.
귄터 그라스는 첫 장편소설 [양철북]을 발간해 나치를 고발했다. 또 독일 47그룹(독일의
문학 단체로서 제2차 대전 이후 반나치와 인도주의를 표방하며 신진 작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독일 문학의 방향을 이끔)의 대표문인으로 활동했다.
아래 사진은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사회복지시설 성령 병원
뤼베크 성모 마리아 교회는 독일 전체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교회 가운데 한 곳으로 중요한
역사적 건축물들을 간직한 교회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뤼베크 구시가는 성문과 교회를 비롯한 과거 한자도시 시절의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으로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모더레이터 박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