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의 리더 독일에서 배운다 6강
6강은 빈(Wien) 분리파와 독일 표현주의를 주제로 진행했다.
빈 분리파의 공간적 배경은 오스트리아의 빈이며 구스타프 클림트를 중심으로 에곤 쉴레,
오토 바그너, 콜로만 모저가 주축이 되어 이끌었다. 이들은 제국의 멸망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빈 분리파는 예술사조라기 보다는 자유예술을 위한 운동파로 보수주의와 역사주의에 반기를
든 아르누보/표현주의에 가깝다.
빈 분리파의 전시공간에는 “그 시대에 그 예술을 그 예술에 그 자유를”(Der Zeitlhre Kunst,
Der Kunst lhre Freiheit)이란 빈 분리파의 크레도(사조)가 담겨있다.
아래 사진은 아르누보의 대표적 양식이며 신고전주의(바로크, 로코코)에 대항한 당시에는
모던화(단순화)된 양식을 잘 나타낸 사진
아돌프 로스가 미국에서 기능주의 건축양식을 도입해 지은 ‘로스하우스’와 빌라 ‘뮐러’ 이
건물들은 당시에는 획기적이었다고 평가받는다.
구스타프 클림트는 빈 분리파의 기수다. 그는 금세공가인 부친의 영향을 받아 금 세공으로
벽을 장식한 프레스코 형식으로 베토벤 프리즈를 완성하였다.
클림트의 대표작인 유디트는 비장하고 투사적이며, 키스는 팜므파탈을 표현했다.
분리파를 탈퇴한 클림트의 회화 위주의 대표 작품으로는 캄머성 공원 산책로가 있다.
오토 바그너가 건축한 빈 우체국과 칼 플라츠 역사
이어서 독일 표현주의 다리파와 청기사파에 대해 알아보았다.
‘다리’란 명칭은 미래를 향해 나아감을 의미한다고 한다. 독일 표현주의의 선구자 키르
히너는 강렬한 순색을 사용,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대표 예술가다.
청기사파의 선구자 바실리 칸딘스키는 추상을 처음으로 시작하였으며 청기사파는 색의
상징적 의미를 탐구하고 신비한 영적 믿음을 표현했다.
독일 바이마르에 설립된 바우하우스는 오늘날 산업디자인의 대명사이며 예술과 장인적
수공업의 혼성문화로 공예운동이자 아카데미이다. 당시로선 혁신적인 쇠파이프를 사용해
기계적 대량생산을 위한 산업디자인 운동으로 변화한다. 나치에 의해 폐교됨.
모더레이터 박란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