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인의 자긍심과 당당한 용기로 39세의 짧은 생을 마감한 황진이를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황진이는 출생의 비밀을 직시하고, 관기로서의 삶, 시서화가무악(시, 서예, 그림, 노래, 춤, 악기)의
뛰어난 재능, 스스로의 인생을 경영한 용기 있는 삶을 살았다. 조선시대 태어났으나, 고려인의 삶을
살다갔다. 생전에 한양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한다.
이성계는 공민왕이 준 식량과 공민왕의 군대를 갖고 위화도 회군으로 고려를 정복하고 고려의 충신들까지 죽인다. 개성사람들은 그런 이성계의 말을 듣지 않았다.
송도근처 산 깊은 골짜기인 두문동에는 고려 충신들이 모여 살았다고 한다.
이성계는 두문동에 불을 지르라고 명한다. 72명만이 겨우 탈출. 강원도 정선으로 피신한다.
정선아리랑은 이 때 부터 구전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문불출이라는 말도 이때 생겼다고 한다.
또 다른 사람들은 개성상인이 된다.
개성상인은 세계에서 가장 처음 복식부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개성상인, 베니스 상인, 오사카 상인은 세계 3대 상인이었다.
경기북부지역인 송도 구월산에서 반정부 운동을 한 충신들도 있다.
송도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고려인의 것이었다.
개성이 고향인 황진이도 그러했다.
황진이의 가족은 황 진사, 황 진사 부인, 부인의 몸종(진 현금), 놈이, 금이, 상직할멈(예절 선생)이 있다.
황진이는 황 진사와 부인의 몸종인 진 현금 사이에서 태어났다. 진 현금은 황진이를 낙태시키기 위해
독한 약을 먹고, 눈이 멀었으며, 딸을 출산한 후, 쫓겨난다.
황진이는 황 진사 부인의 딸로 성장, 사서삼경과 한시까지 배운다.
14세 때, 홍 윤보라는 평민 청년이 황진이를 한번 보고 상사병에 걸려 죽음에 이르는 일이 있었다.
15세 때, 한양 윤 승지 아들과 청혼을 하게 되나, 일방적으로 파혼을 당한다.
시댁에서 황진이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것이다.
굴곡진 삶의 한가운데 놓이게 된 황진이는 천민의 몸으로 집을 나선다.
관기로서의 삶을 살았으나, 올곧고 당당한 황진이의 모습은 자기 스스로 인생을 경영한 사람이다.
명월관을 창업하여, 사업가로서도 성공을 이룬다.
연산군 말기에 출생하여, 중종말기에 사망한 황진이.
고려멸망보다 더 참혹한 세조 찬탈사건, 연산군의 패륜정치, 중종의 공신정치는 당시의 어지러운
시대상을 보여준다.
중조의 공신정치는 7명의 공신들끼리 나라의 땅을 나누어 갖고, 그의 딸들은 왕가와 정략적으로
결혼한다. 결혼한 딸들은 또 자기들 끼리 권력쟁탈을 위해 싸웠다고 한다.
고려인의 자긍심을 갖고, 언제 어디서나 당당했던 용기로 두려움을 극복한 황진이의 삶은 감동적이다.
강사님의 해설이 함께 한 귀한시간,
짧고 굵게 살다간 황진이의 스토리를 들었다.
수강생들은 자서전에서 ‘내 인생의 스토리’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 함께 고민해 본 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