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수궁 돌담길 도보여행 – 하선화 해설사
시청역 3번출구로 나와 세실극장 앞에 모여 하선화 해설사님을 만났다.
덕수궁 돌담길은 영국 대사관이 위치한 관계로 한 번에 한바퀴
다 돌 수 있는 게 아니란다.
영국대사관과 협상하여 100미터는 연결했으나 70미터는 영국땅으로
안쪽으로 연결문을 내서 한 바퀴 돌게 될 예정이라고 한다.
영국은 일본과 영일동맹을 맺어 영국은 인도를 먹을 테니 일본은 조선을
차지하라는 조약을 맺었다고 하니 참으로 기가 막힌 노릇이다.
세실 극장 옆으로 가니 대한성공회 서울 주교자 성당이 있었다.
성공회 교회는 영국에서 ‘천일의 앤’ 이후 이혼을 반대하자
세운 개혁성당으로 신부님이 결혼을 한단다.
오늘은 결혼식을 하는지 축하객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이 성당은 또한 유월민주항쟁때 영국대사관이 바로 옆에 있어
피신할 수 있었기 때문에 '유월민주항쟁진원지'이기도 하다.
1대 신부님이 한옥을 매입하여 성당을 마련하고 2대 주교때
영국 왕실 건축가를 초대해 건물을 지었는데 원래 설계도대로
항공으로 성당을 내려다 보면 십자가 모양의 건물이 보인다.
기둥은 로마네스크 양식이며 기둥이 12개인데 12명의 사도를
상징한다고 한다.
이 성당에는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되었다고 한다.
원래 최초는 정동제일교회에 있었는데 폭격으로 없어졌다고 한다.
일제는 남대문을 중심으로 서울역을 경성역으로, 동대문운동장 자리에
경성운동장, 덕수궁은 중앙공원으로 사용하며 우리의 문화를
격하시켰다.
<성공회 성당의 뒷 모습>
이제 시청 서소문청사 13층 전망대로 출발하였다.
우리나라 역사를 왜곡시키는데 일조한 직책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때 일왕의 칙령으로 우리나라 역사 보물을 다
모아다 불태웠으며 희구본은 비밀 장소에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왜곡의 주범이 있었다.
이완용 박영효등에 의해 수사관보로 이병조를 두었는데
이 수사관보는 지금으로 말하면 계약직이었다. 그러나 장기 근무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수사관보 이병조가 역사왜곡을 넘
잘했다. 그런데 우리가 해방되어 친일파였던 그를 청산하지 못하고
역사학계의 거두 문교부 장관을 하게 만들었고 국사 편찬 위원회에
두었으니 말이 안 나오는 대목이다.
해설사는 또한 지금의 일본총리 ‘아베’의 가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마지막 조선 총독이 ‘아베’였는데 바로 ‘아베’ 현 총리의 친할아버지
란다. 그가 돌아가며 남긴 말 속에 다시 조선에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겼다니 우리는 정말 두 눈 똑바로 뜨고 정신을 차려야 한다.
‘아베’총리의 외조부 ‘기신 노브스케’도 전범이었는데 무죄로 살아남아
일본 총리가 되었단다.
시청 서소문청사 13층 전망대에 올라가 덕수궁궐의 아름다운
단풍 진 모습을 담아보고 벽에 전시되어 있는 그 당시의
이탈리아 영사관, 프랑스 영사관 등을 사진에 담았다.
<운교>
전망대에서 내려와 덕수궁 돌담길을 조금 걷다가 돌담길 한 모퉁이를
가리키며 이곳이 지금은 벽으로 막혀있지만 예전에는 왕이 비밀스럽게
왔다갔다 한 야행 길 ‘운교’가 있었다고 사진을 보여주며 설명하였다.
이어 ‘서울시립미술관’을 향해 가다가 입구에서 중간 즈음 위치에
육영공원터, 독일대사관터가 있었던 곳도 설명하였다.
‘육영공원’은 나라에서 운영하였는데 신임관료나 명문가 자재를 돈도 안받고
용돈도 주고 담배값까지 주면서 금수저 자재를 가르치던 교육기관이었다.
가마타고 등교를 하는데 하인이 책방을 들어주기까지 하는데도 공부를
안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육영공원’을 ‘독일영사관’과 바꾸었는데
이 육영기관에 이완용이 다녔단다.
그 학교에 다닌 사람 중 영국외교관 참사관을 지낸 이한응은 을사조약시
자결을 한 분도 있다고 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자리는 원래 ‘경성재판소’ 였는데 나중에는 ‘대법원’으로
사용되다가 1995년에는 ‘가정법원’으로 사용되고 지금은 ‘서울시립미술관’
이 되었다.
덕수궁 돌담길에서 데이트를 하면 연인들이 이별한다는 이야기는 어디서
유래했을까?
해설사님은 정동제일교회를 중심으로 방사형 도로 6개가 있는데
왼쪽으로는 남학교인 ‘배재학당’이 오른쪽으로는 여학교인 ‘이화학당’이
자리잡고 있어 한길로 오다가 자연스레 남자와 여자들이 갈라져 가는
모습 때문에 생긴 말이라는 유머도 전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을 나와 ‘정동제일교회’가 나온다. 초대 ‘아펜젤러’ 목사님이후
4대째부터 현순 목사, 손정도 목사, 이필주 목사님이신데 그중
이 필주목사님은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에 속하신 분이다.
여성독립운동가 중 ‘김난사’, 남편성을 따서 ‘하란사’로 알고 있는데
기혼자였던 ‘김난사’님은 학교에 가고 싶었으나 기혼자라 받아주지 않자
직접 학교를 찾아가
“우리 나라가 깜깜한데 우리 어머니들을 가르쳐야 우리 아이들이 산다.”
며 설득을 하여 학교를 다녔다고 한다.
그 이후 일본과 미국으로 유학을 갔고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는데
앞장섰으며 우리나라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을 후원하여 기증하기도 했다.
고종은 ‘파리강화회의’때 ‘김난사’를 특사로 보내려 했으나 낌새를
눈치 챈 일본에 의해 상해 만찬 때 독을 타서 못 가게 되었단다.
너무나 안타깝고 화가 나는 대목이다.
이어서 구세군 교회까지 도보여행을 왔다. 그 구세군교회 담벼락 바로
못 미쳐 영국대사관과 이어지는 100미터 길이 오픈되었는데 그곳에서
모두 함께 사진을 찍었다.
< 굳게 잠겨진 영국 대사관 후문 문이다. 여기서 도보여행이 끝난다.
이 문과 함께 돌담길이 끊어지기 때문이다. >
영국대사관 대문 앞에서도 사진을 찍고 바로 옆에 있는 덕수궁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곧 개방이 되어 안쪽으로도 도보여행을 곧 하게 된단다.
사진을 찍고 나니 바로 도로 앞 건너편에 ‘고종의 길’이 보였다.
고종이 일본군에 고립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고종의 길’을 나와
러시아 대사관으로 향하는데 그 짧은 길을 재현한 길이다.
러시아 대사관을 향해 갈 때의 그 긴박함과 참담함이 느껴지는 길이다.
그렇게 믿었던 러시아도 일본과 밀약을 해서 ‘로마노프 야마가타 협정’을
맺었다니 할 말이 없다.
일본은 우리나라를 삼키기 위해 또 미국과 미일협정을 맺어
미국은 필리핀을, 일본은 조선을 먹기로 했다고 한다.
사방 팔방 우리나라를
먹기 위해 사방으로 강대국과 협정을 맺었다니 속이 터지고 화가 북받쳐
온다.
영원한 적도 영원한 우방도 없다고 했던가. 우리나라가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 밖에 교훈이 없다.
해설사는 역사는 궁궐 안에도 있지만 궁궐 밖에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을사조약’이 아니라 ‘을사늑약’이라고 말했다.
조약은 서로 합의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면 늑약은 억지로 떼밀려 강제로
맺은 것이기 때문이다.
‘고종의 길’을 걸어 가다보면 마지막에 ‘정동근린공원’이 나오고
‘정동 근린 공원’ 언덕에는 그 당시 ‘러시아 대사관’의 일부가 남아있다.
<러시아 대사관의 일부>
<이화 백주년 기념관>
그곳에서는 ‘오얏꽃 핀 날, 오얏꽃 진 날의 슬픔’ 이라는 게시판이
전시되어 있었다. ‘정동근린공원’을 나오니 바로 옆에
“예원학교‘가 맞은편에 ”이화여고 와 이화백주년기념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화여고 정문>
오늘 ‘덕수궁 돌담길 도보여행’에 참석한 분들은 역사적 현장에서
안타까움과 슬픔도 느끼고 근, 현대사 속 덕수궁 돌담길을 추억하며
아름다운 단풍과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해설사님의 해설이 너무 쏙쏙 귀에 들어온다는 칭찬과 함께
이 수업이 너무 의미 있었다고 하며 각자의 길로 돌아갔다.
글, 사진 : 모더레이터 이재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