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의 선두주자 독일/오스트리아에서 배운다.
6강, 신성로마제국과 독일제국
‘한국 외교관이 만난 독일모델(2018년)’의 저자 장시정 강사
독일을 떠 바치고 있는 힘은 잘 작동하는 제도와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민의
식에 있다.
1~5강은 독일현대와 근대에 관한 이야기였다. 오늘, 6강 마지막 시간엔 신성로
마제국과 합스브르크가와 통일 독일의 주역 호헨촐렌른가를 살펴본다.
926년 신성로마제국은 독일 쪽에 세워졌으며 900년간 존속했고, 제1제국으로
불린다.
1806년 신성로마제국은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하고 1871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독일이 통일된다. 제2제국이다.
1918년 빌헤름 2세가 네델란드로 망명하고, 제2제국이 몰락한다.
1919년 바이마르공화국 성립. 제1차 세계대전 후인 1918년에 일어난 독일혁명
으로 성립, 1933년 나치스 정권 수립으로 소멸된 독일 공화국의 통칭이다.
1933년 히틀러 나치스 정권이 수립된다.히틀러는 유대인 말살정책으로 600만
명의 무고한 사람을 죽였다.
독일은 젊은 나라(미하엘 피터 교수)이기도 하고, 독립적 단일 민족국가로서의
출발이 늦었던 지각생 나라이기도 하지만, ‘참여적인 시민과 잘 작동하는 제도’
를 갖고있다. 현대 철학자인 율리히 벡은 ‘독일 역사를 돌아볼 때, 지금 현재 독
일이 최고다’라고 했다.
신성로마제국의 발상지 하르츠고지(크베들린부르크/ 고슬라/람멜스베르크광산).
하인리히 1세는 레오폴트 1세의 장남으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오스트리아 변경
백이 되었다. 그는 재위 기간 동안 변경의 확립 및 영토 확장에 노력했다. 자신의
왕조를 로마교황과 분리했고, 가장 독일적인 왕으로 불린다.
오토 대제는 독일 왕국의 국왕이자 이탈리아 국왕이며, 로마를 정복한 신성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이다. 증조부인 하인리히 1세가 개창한 류돌핑 가문에 속하지
만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면서 오토 왕조를 출범시켰다. 그는 로마교황에게서
왕관을 받고, 기독교 후광에 힘입어 자기 권력을 펼치려 했다.
신성로마제국은 현대적 의미의 국가는 아니었다. 300여개 성의 영주들이 자신의
권력을 각기 행사하고 있었고, 단일 신성로마제국의 군대나 헌법도 없었다.
소슬람 왕국은 신성로마제국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이다.
신성로마제국의 분권정치는 오늘날 독일의 연방국가 전통 “다양함 속의 통일”을
낳았다
중세는 게르만 민족의 무력과 신앙적 요소가 합쳐진 시대였으며, 근대는 종교(기
독교)를 배제한 인간중심의 시대였다.
하인리히 4세는 교황과 다툼으로 1080년 파문에 덧붙여 폐위까지 당한다.
황제와 교황의 다툼과 공생이 이어졌으나, 카노사의 굴욕 이후 교황권이 황제
권을 압도했다. 하인리히 4세는 고슬라 왕궁에서 태어났다. 고슬라는 현대 독
일 기업인 '지멘스'의 고향이기도 하다.
합스부르크가 혹은 오스트리아 가문은 유럽 왕실 가문들 중 가장 영향력 있던
가문 중 하나이다. 1438년부터 1740년까지 신성 로마 제국의 제위는 연달아
합스부르크가문에서 나왔다.
특히 오스트리아의 왕실을 거의 600년 동안 지배한 것으로 유명하다. 합스부
르크 왕가는 프랑스 왕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의 왕실과 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