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대를 그렇게 세우면 안 된다는 얘기 못 들었습니까?"
"아차!"
조영대 선생님께서 다가와 삼각대 방향을 바로잡아 주셨다.
"아까처럼 세우면 자기 발로 자기 삼각대를 차서 넘어뜨리게 돼요. 삼각대야 문제없지만 카메라가 망가지면…."
백번 지당한 말씀이었다. 방금 전에 선생님의 설명을 분명히 들었는데 한귀로 흘려버린 것이었다.
아니, 사실은 내가 흘린 게 아니었다.
낮에 나올 때만 해도, 상암 하늘공원을 누비며 사진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따스한 봄날이었다.
겉옷을 벗어도 더워서 티셔츠 소매를 걷어야 했다.
해가 기울며 한강에 낙조를 드리울 때쯤 상황이 급변했다.
해넘이와 야경 사진을 찍으러 한강이 보이는 언덕에 서자마자 얼굴이 싸늘해졌다.
바람이 두 뺨을 할퀴고 목덜미를 파고들었다.
몸이 얼어붙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구도 잡고, 노출 조절하고, 초점 맞추고, ISO 값 변경해 보지만 정답은 오리무중이었다.
머릿속은 어느새 뒤죽박죽이 되어 있었다.
거기에 선생님 말씀까지 챙겨야 하는데….
범인은 바람이었다.
바람이 내 정신과 함께 선생님 말씀을 통째로 흩날려 버린 것이었다.
"아니?"
옆을 보니 장갑을 꺼내서 끼는 분이 있었다.
정말 따스함이 부러웠지만 그보다 놀라움이 더 컸다.
덥기까지 한 봄날에도 장갑을 가지고 나오는 준비성이 우러러보였다.
한강 전망대에 서면, 그것도 해가 떨어지는 저녁이면 강바람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을 아는 분 같았다.
'역시 유비무환!'
한낮에 나와서 저녁 먹는 것도 미룬 채, 차가운 바람 속에서 카메라를 놓고 낑낑대게 하는 선생님의 가르침도 역시 그것 때문이리라.
꿈꾸는 듯한 노을을, 강물에 비치는 불그레한 반영을 사진으로 제대로 담자면 연습해 보지 않고선 불가능한 것이다.
카메라 다이얼을 어떻게, 어느 정도 돌려야 하는지는 물론이고 저녁 추위에 떨지 않으려면 어찌해야 하는지도 미리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를 일이었다.
해는 넘어갔는데 바람은 여전히 그치지 않았다.
선생님의 야경 촬영을 지도하는 가르침도 아직 멈출 기미가 없었다.
"자, 이제부터는 서울 야경 불빛을 찍어 볼 겁니다. 장노출 촬영을 하는 겁니다. 삼각대를 쓰니까 손떨림 기능은 끄고, 측광은 평가측광으로 하고…."
눈앞에서 화려하게 명멸하는 불빛이 진짜 그대로 사진에 담길까.
전조등을 켠 자동차들이 꼬리를 무는 저 강변도로가 달력에 나온 것처럼 불빛이 가득찬 거리로 나올까.
셔터를 누르는 손가락이 떨리는 것은 찬바람에 손이 곱은 때문만이 아니었다.
화려한 야경을 제대로 담을 자신이 서지 않았다. 셔터를 누르려다 말고 슬쩍 옆을 쳐다보았다.
모두 카메라에 눈을 대고 작품을 낚느라 무아지경에 빠져 있었다.
반짝이는 도시의 불빛보다 더 빛나는 정열의 하늘공원 야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