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의 개요>>
일 시 : 2021. 10. 12(화), 14:00 ~ 16:00
강의 방법 : 온라인(웹엑스)
강 사 : 이순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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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 일가 장신구 333점 반환
지난 강의 누락 부분에 대한 추가 설명이다.
영친왕 일가 복식 장신구 333점이 반환된다.
위 유물은 1957년부터 동경국립박물관에서 위탁 보관하던 것을
김영숙(동양복식문화원장)선생이 발견하여, 우리의 문화재관리국(청)에
알려서 반환협상을 시작한다. 노태우 대통령때 반환 되었다.
그리고 덕혜옹주 유품 7점도 기증 받았다.
영친왕 복식중에서 익선관이 있다. 매미를 그려넣었다.
매미가 의미하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외규장각 의궤 귀환
의궤는 국가공식행사 보고서이다. 국가 행사란 혼례, 장례, 때 기물,
참여자 명단 등이다. 즉 행사 메뉴 얼이다. 이를 규장각에 보관했다.
참고로 궁전 명칭의 순위는, 전(제일 높은 곳), 당, 합, 각, 재. 루. 정 이다.
외자가 붙는 것은 궁전밖에 보관했다는 뜻이다.
조선시대 전기의 융성시기는 세종이었고, 후기의 전성시기는 정조
때이다. 정조는 당초 창덕궁 후원에 규장각을 두었다.
당시 화재 등 위험요인을 감안해서, 규장각을 궁 안에 두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판단에 따라, 정조때 강화도로 옮긴다. 이후, 1866년 병인양요(프랑스 침략)때,
340책을 약탈 당한다. 당시 프랑스는 나폴레옹 3세 때이다.
프랑스 함대는 로즈제독이 이끌었다.
의궤는 임금이 보는 어람용, 일반 집행관들이 보는 분상용이 있다.
외규장각 돌아오게 된 경위
외규장각의 귀환에 가장 큰 공을 들이신 분은 박병선 박사이다.
프랑스 유학 여자 1호이시고, 외규장각이 국내에 들어온 때인 2011년 별세하셨다.
그분은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사서로 근무 하시면서, 직지심체요절을 발견했다.
하지만, 외규장각은 보질 못했다. 수소문 끝에 파손도서 서고에 있다는 소문을 듣고
이의 발견을 위해 노력 하다가, 프랑스 측으로부터 권고사직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긴 노력 끝에, 결국 2011년 5년 갱신 영구임대로 국내에 들어온다.
2016년, 2021년도에 대여 갱신을 한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당시 굴욕적인 협상이라는 국내 비난과, 프랑스 국내법을 넘어선 잘 된 협상
이었다는 국내의 찬성 여론 등이 겹치게 된다.
당시 외교의 선봉에 섰던 유복렬 외교관의 회고이다.
경매등을 통해 들어온 유물
효명세자빈 죽책이, 2017년 6월에 경매에 나온것을 우리가 매입한다. .
1759년 결혼 관련 문서였다. 따져보니 1819년 기묘년에 조 씨를
왕세자빈 으로 봉한다는 죽책 이었다.
덕온공주 인장도 경매에서 매입했다. 덕온공주는 한글 솜씨가
남 달랐다고 한다.
선교사들이 수집해 간 것을 환수 한 유물도 많다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전도가 대표적이다.
강사님의 마지막 강조
김구선생의 문화 강조 론이다.
학습지원단 강배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