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에서 추억을 찾다

 

 

밤새 비가 왔다. 오전 09시 30분경에 실버영화관을 찾아 집을 나서다.

종로권의 허리우드 크래식(구 허리우드 극장) 영화 한 편 2,000원! 하나카드를 만들면 영화 한편 당 20%를 할인도 해준다.

 

아주 먼 옛날 ‘사랑의 스잔나’(1976년 개봉)라는 영화를 보러온 적이 있었다. 30년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허리우드 클래식은 60, 70년대의 고전영화를 상영해 주는 그야말로 ‘클래식’한 영화관으로 어르신들이 유일하게 문화생활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영화를 좋아하는 어르신은 물론 추억을 찾는 이들의 천국이다.

 

종로3가역 4번 출구로 나오는데 한 어르신이 인쇄물을 주어 받아보니 실버영화관 안내였다. 호객행위? 영화를 보러가는 것 같은 어르신들을 따라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갔다. 입장료 2,000원, 55세 이상, 신분증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그냥 표를 준다.

 

월요일 아침 이른 시간인데도 많은 어른신과 중장년층이 로비에서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하고 친구인 듯한 사람들이 서로들 반기는 만남의 장소이기도 하다. 베사메무쵸 음악이 흐른다. 70대 중반쯤의 노부부들도 눈에 띈다.

 

내가 좋아하는 명배우들의 사진들이 전시되어있다. 그 옛날 배우들의 그림을 초상화 기법으로 그린 생각이 났다. 그레이스켈리, 오드리햅번, 소피아로렌, 죤웨인, 로마의 휴일에 록허드슨 등의 사진이 즐비하다. 추억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입구 왼쪽에 보이는 영사실에 나이 지긋한 영사기사님과 큰 필름 통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지금 웬만한 극장에서는 이런 필름 통을 쓰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10시 30분에 극장에 입장하다. 지정 좌석으로 제자리에 앉아야한다고 한다. A37번. 300석의 좌석중 반쯤 찬 극장 안에서 영화상영전에 중년의 극장관계자가 차분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한다.
 
“지금 환절기이고 독감주사를 놓고 있으니 꼭 접종을 하세요. 안 아프셔야 해요. 건강하셔야 자식들이 그마나 좋아해요. 이렇게 비오는 날에 미끄러져 골절상이라도 당하면 수술해야하고 그러면 자식들에게 피해가 되고…. 또 그렇게 다쳐서 누워있으면 우울증이 생깁니다. 처량해지고요. 그리고 이런 날 우산을 빌려드린 지가 6년째인데 한번 빌려 가면 갖고 오지를 않아요. 200여개의 우산을…. 다른 분들에게도 우산을 빌려드려야ㅍ하는데…. 우산을 돌려ㅍ주세요”하며 하소연을 한다.

 

10시 33분에 실내조명이 꺼지고 극장대표(김은주)가 화면을 통해서 인사말을 한다. 그리고는 광고, 노인관련 안과, 임플란트, 노후를 보장한다는 주택연금 등에 대해 상연됐다.

 

드디어, 영화 제목은 ‘왕중왕’ 예수의 이야기이다. 지난 1961년 상영 당시로서는 웅장한 스케일로 더할 수 없는 감동을 준 영화였지만 그 벅찬 감동은 간 데 없고 지루해서인지 간혹 졸기도 했다. 별 재미는 없었다. 웬일인가? 많은 세월과 최근 너무 멋있는 대형 스펙타클 영화 때문인지 그때 느꼈던 정서와 감정도 변하 것 같았다.

 

3/2쯤 찬 좌석, 상영 중에도 사람들이 들어오는데 나이 드신 봉사자들이 손전등을 들고서 좌석을 안내한다. 꼬박 3시간 상영. 1시 20경에 끝이 났다. 로비에는 아침과는 달리 사람들로 꽉 찼다. 표가 매진되었단다. 좌석은 300석이지만 극장은 늘 만석이고 계단과 통로에 따로 의자를 설치해야 할 정도로 사람이 붐빈다고 한다. 극장에서 만난 인연들이 서로 서로 인사를 하고 반긴다. 한 할머니가 준비해온 사과조각을 지인들에게 권한다.

 

극장과 연결되는 음식점, 자원봉사자가 식당까지 안내를 해준다. ‘추억더하기’. 식당 이름이다. 영화가 끝날 때쯤인 13시경, 오드리 햅번의 사진이 붙어있는 극장 옆 조그만 식당, 까만 학생복을 입은 노인종사자가 문을 열어주며 반갑게 맞아준다.

 

허리우드 클래식에서 운영하는 LP음악을 틀어주는 카페형 식당이다. 추억의 도시락+커피+음악 감상이 4,000원, 국수 3,000원…. 그 옛날 음악다방과 같은 분위기! 뮤직박스가 있고 DJ가 음악을 들려주는, 어르신들에게 영화 이상의 향수를 제공한다. 

 

  

다음에는 차 한 잔을 마시면서 DJ에게 음악신청을 하고 향수에 젖어본다. 그리고 또 다른 어른신들의 안락한 휴식처를 찾아서 알려야겠다는 마음으로 카페를 나섰다. 오던 비도 그치고 좀 싸늘한 기운이 도는 종로거리를 빠져나왔다.

 

<취재 이진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