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역사, 종로역사로 오늘도 흐른다 

-서울의 센터 종로의 역사 다시 들여다보기

 


 

서울 정도(定都)622년. 바로 종로의 역사다.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 서울을 ‘삼각산, 인왕산, 남산으로 둘러싸여 동서로 용이 서리고 남으로는 한강이 옷깃처럼 둘러 대관령과 발해를 품었다’고 극찬한 이래 서울 그중에서도 종로는 조선왕조 500년간 市街라는 雲從街로 정식 명명 되었다. 종로라는 이름을 지닌 유서 깊은 민족의 중심으로 우뚝 서서 오늘도 그 이름만으로도 한민족의 심리적 중심체역할을 다하고 있다.

 

당시 경기도 광주에서 종을 주조해 종(鐘)을 단 것으로 이조 태조 7년 1398년부터 종로이름은 역사를 이루고 있다. 그러면 우선 종로의 역사를 들여다보자

 

우선 파고다공원은 지난 1897년 우리나라 최초의 공원이라고 경성부사(京城府史)에 기록돼있고 인근 圓覺寺는 고려 때 고찰로서 연산군10년에 없어졌다. 파고다공원은 우리 민족의 소중한 정신적 재산인 3.1운동의 발상지이다. 

 

지금의 종로상가는 ‘육의전’(무명, 모시, 삼베, 비단, 어물, 종이)이라는 이름의 뿌리로서 지난 1920년대 당대 협객 김두환이 버티고 있는 우미관 극장과 카페, 악기전, 금은방 등 신식 시설들이 오늘날 종로 얼굴로서 상권 초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일제하 서울의 소비중심이 남촌, 북촌으로 구분되어 카페, 빠, 성림, 다이나, 프린스 등 다방이 있었고 ‘종삼’은 6.25 전쟁 후 사창가였는데 지난 1968년 철거되고 낙원동, 본익동, 인의동, 와룡동으로 사람들이 기피해 후에 상권이 명동으로 이동되었다.

 

국보로는 원각사지10층석탑이 탑골공원 내 높이 12M에 지난 1962년 국보제2호로 지정됐고, 보신각에는 보물2호인 보신각종이 있다. 지금은 북촌, 운현궁, 정도전, 무학대사, 파고다, 원각사, 종묘, 가회동 한옥마을을 중심으로 종로에는 한국의 역사가 흐른다.

 

매일 3,000여명의 노인들이 모여드는 종로일대는 그야말로 노인들의 해방구다. 이유는 무엇일까? 거의 매일 출근하듯 10여 년간 종로를 찾는다는 오길삼 할아버지(76세. 이문동)는 “이제 종로는 제2고향이고 오히려 지금 자기 인생의 가장 중요한 삶”이라고 말한다. 이곳에 와야 서울노인복지센터와 원각사에서 주는 무료급식을 할 수 있고 친구를 만나고 마음의 위안이 된단다.

 

또한 서울시는 보건복지부와 함께 적어도 오는 2015년까지 서울 탑골공원 근처를 일본의 년 1,000만 명이 찾는 스가모 어르신 거리로 벤치마킹하고 거기다 우리의 역사적 문화를 인사동, 낙원동, 파고다, 북촌, 가회동으로 잇는 관광벨트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힌바 있다.


그 말을 들으니 확실히 종로 일대가 시대의 정신을 받아들여 변화는 필요한 것 같다. 마치 수도 서울에서 섬처럼 고립되고 노인들의 고답적이고 비전향적인 무의식을 현대를 사는 신세대 노인으로 변화 또한 필요하고 전통을 섞은 명품 서울로 거듭날 그날을 기대해본다.

 

 

<취재  이선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