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세계문화유산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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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은 탁월(outstanding)하면서도 보편적(universal)가치를 지니고 있는 문화재다. 이 세계적인 문화재는 유네스코에 등재된다. 우리나라는 모두 13종이 등재되어 있다. 그중에서 서울에 있는 것은 3종이다. 「종묘」,「창덕궁」 그리고, 「조선 왕릉」일부다. 세계문화유산의 특별함을 대중교통을 이용, 가까운 곳에서 찾아보고 느낄 수 있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종로구 소재 종묘                                   종묘 정전의 내부(사진-종묘)

 

 

        종로구 소재 창덕궁(희정당)                               강남구 소재 조선왕릉(선릉)

 

■ 최고의 사당 「종묘」

 

「종묘(宗廟)」는 조선 시대 왕과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를 지내는 사당이다. 종묘와 함께 「사직(社稷)」은 땅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흔히 종묘사직이라는 말은 여기서 유래한다. 종묘사직은 조선 시대 왕들이 가장 중요시했다. 일찌기 태조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한 뒤 정궁인 경복궁이 완공되기 전에 그는 「종묘」부터 지었다. 「좌묘우사(左廟右社)」라는 말은 임금이 정전에 앉았을 때, 왼편에 「종묘」를, 오른편에 「사직」을 둔다는 뜻이다. 실제 경복궁에서 관악산 방향을 바라볼 때 왼편에 종묘가 있고, 오른편에 사직단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종묘의 지당(池塘)으로 일반 궁궐은 지당 내 소나무가 있지만 종묘에는 <향나무>를 심었다

망묘루(望廟樓)-종묘 전각 중 유일한 팔작지붕 형태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 영정이 모셔져 있다)

 

 「종묘」는 <정전>과 <영녕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전>에는 태조의 신주 및 공덕이 있는 왕과 왕비 49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영녕전>에는 태조의 4대 추존왕인 목조, 익조, 도조, 환조를 비롯, 조선 왕과 왕비, 그리고 추존된 왕과 왕비 34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정전> 맞은편에는 공신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공신당>이 있다. 특이한 것은 <영녕전> 제일 오른 편에는 유일하게 종묘의 왕과 왕비가 아닌, 의민황태자(고종의 아들, 영친왕)와 황태자비의 신주도 모셔져 있다는 점이다.

 

 

    종묘의 <정전>                                                    종묘의 <영녕전>

 

 종묘제례는 원래 1년에 5번 지냈으나, 현재는 매년 양력 5월 첫째 일요일과 11월 첫째 토요일 거행된다. 종묘제례와 함께 선보이는 <종묘제례악>은 기악(樂), 노래(歌), 춤(舞)을 갖추어 연행하는 종합예술로 악기 연주에 맞춰 선왕의 공덕을 기리는 노래를 부르며, 열과 행으로 벌려 서서 일무(佾舞)를 춘다.(출처:종묘추향대제)

 종묘제례악은 <국가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고, <종묘제례>와 함께 유네스코 <인류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종묘를 가려면 지하철 1, 3, 5호선을 이용, 종로3가역에서 하차 하면 된다. 일반버스는 17종이 있으며 종로 4가에서 내리면 방문하기가 쉽다.

 

■ 고궁 중 유일한 세계문화유산, 「창덕궁」

 

 창덕궁은 조선 3대 왕인 태종 이방원의 명으로 지어졌다. 이후 조선은 경복궁과 함께 양궐 체제를 갖추게 된다. 하지만, 창덕궁이 완료된 이후 조선의 왕들은 대부분 창덕궁과 창경궁을 선호했다고 한다. 창덕궁은 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즉위한 인조가 경희궁(신문로 소재)을 정궁으로 사용할 때까지 실제 조선의 정궁으로 오랫동안 사용됐다.

 

 

     창덕궁 선정전(청기와가 이채롭다)                          창덕궁의 정전인 인정전 전경

 

 창덕궁은 다른 고궁들과 몇 가지 차이점을 지닌다. 먼저, 창덕궁 내에는 고궁 중에서 유일하게 청기와로 된 전각이 있다. 바로 <선정전>이다. <선정전>은 광해군이 인왕산 밑에 새로 지었던 궁궐인 <인경궁> 내 청기와 지붕 전각이었던 <광정전>을 이건한 것이다.

 선정전은 국왕의 집무실이었지만, 조선 후기부터 혼전(魂殿)으로 사용됐다. 전각이 복도각으로 연결되어 있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창덕궁의 또 다른 특징은, 정전인 <인정전>의 내부 구조가 다른 고궁과 확연하게 다르다는 것 이다. 물론, 왕의 상징인 <일월오봉도> 등 기본적인 것은 갖추고 있지만, <인정전> 내부에는 다른 고궁에 없는 <전등>, <유리창>, <커튼>이 있다. 이는 창덕궁이 구한 말 대한제국의 황제인 순종이 살았던 곳으로, 시대가 변천하면서 서양문물이 도입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선정전 내부의 모습                      인정전(황색의 벽은 이곳이 황궁이었임을 상징한다)

 

 창덕궁은 또한 여느 고궁보다 아름다운 후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출입은 시간제로 정해져 있으며, 사전예약을 해야 한다. 현장 입장도 일부 가능하다. 반드시 해설사와 동반해서 입장해야만 하고, 창덕궁 입장 시(3,000원)와 별도로 후원 관람료를 내야 한다.(5,000원)

 창덕궁에서는 일반 양반들이 거주하는 한옥 형태의 <낙선재> 또한 관람할 수 있다. <낙선재>는 옆 건물인 <석복헌>과 <수강재>를 합쳐 전체적으로 <낙선재>로 불린다. 이곳은 조선 헌종의 휴식 공간이었다. 고종은 갑신정변 이후 창덕궁(관물헌)으로 잠시 옮겨와 낙선재를 접견 장소로 활용했다. 이후에는 영친왕과 이방자 여사가 살았고(낙선재), 영친왕이 죽은 후 이방자 여사와 덕혜 옹주(수강재)가 함께 살기도 했다.

 창덕궁에는 잊지 못할 역사의 현장도 있다. 대조전과 이어져 있는 <흥복헌>으로 이곳은 조선 시대 마지막 어전회의가 열렸던 곳이다. 일본에 나라를 뺏기는 문서에 찍을 옥새를 순종비인 순정효황후가 치마 속에 감추고 있었지만, 결국 친일파였던 그의 백부에게 빼앗겨 옥새를 내주고 말았다는 비극의 현장이다.

 

 

창덕궁 후원의 주합루(출처-창덕궁 홈페이지)               역사의 현장 흥복헌(왼편은 대조전)    

 

 

창덕궁 낙선재 모습, 오른편에 석복헌이 있다                     낙선재 후원인 상량정(上凉亭)        

 

 창덕궁을 가려면 지하철 1, 3, 5호선 종로3가역 6번 출구, 3호선 안국역 3번 출구에서 5-10분 정도 걸어가면 된다. 버스 이용 시 7025, 109,151,162,171,172,272,601번을 타면 된다.

 

■ 서울에 있는 8기의 「조선 왕릉」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조선 왕릉 40기 중 8기는 서울에 있다. 왕릉의 구조 또한 다양한데, 특히 왕과 왕후의 능침이 상하 형태로 되어 있는 이른바 <동원상하형>(왕이 위, 왕비가 아래)의 의릉이 눈에 띈다. 의릉은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과 그의 부인 선의왕후가 잠들어 있는 곳이다. 지하철 1, 6호선을 이용할 수 있다.

 

서울 소재 조선 왕릉 현황

 

태강릉은 성종의 2번째 계비인 문정왕후가 홀로 잠들어 있는 <태릉>과, 문정왕후의 아들 명종과 인순왕후의 쌍릉(봉분이 2개)인 <강릉>을 일컫는다. 헌인릉은 태종 이방원과 원경왕후의 쌍릉인 <헌릉>과 순조와 순원왕후가 함께 잠들어 있는 합장릉인 <인릉>을 말한다. 태강릉, 헌인릉 모두 지하철과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방문할 수 있다.

 서울에 있는 2개의 정릉은 성북구의 태조비 신덕왕후의 정릉(貞陵)과 중종이 잠들어 있는 강남구 정릉(靖陵)으로 모두 단릉이다. 지하철을 이용해서 갈 수 있는 곳이다. 선릉은 성종과 정현왕후가 모셔져 있는 왕릉으로, 이름에서처럼 지하철 선릉역을 이용하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서울에서 조선 왕릉을 찾아보는 것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다는 편리함과 함께 왕릉 주변에 조성되어 있는 숲길이 계절마다 다른 느낌을 주면서 산책길로 부족함이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그래서 심호흡이라도 한번 크게 할 수 있는 서울의 명소의 하나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성북구 소재 조선왕릉(의릉)<사진-한국관광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