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묘사직(宗廟社稷)을 생각하시옵소서.” 역사 드라마에서 가끔 들을 수 있는 표현이다. 종묘는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조선 왕실 사당이고, 사직단은 나라의 번영과 곡식의 풍성함을 기원하는 제사 장소다. 따라서 종묘사직은 나라를 뜻한다. 종묘와 사직단은 서울시 종로구 훈정동과 사직동에 있다. 종묘와 사직단이 서울 한복판에 자리한 것은 좌묘우사(左廟右社)의 동양 정치 철학과 연관 있다. 주례의 고궁기에는 '임금이 궁궐을 중심으로 남쪽을 향했을 때 왼쪽에 종묘, 오른쪽에 사직을 세운다'고 했다. 이에 따라 조선을 건국한 태조는 한양에 도읍하면서 경복궁 동쪽에 종묘, 서쪽에 사직을 건설했다.

신들의 정원인 종묘에서는 제향이 진행된다. 조선시대에는 정전의 경우 1년에 다섯 차례 모셨다. 정월, 4월, 7월, 10월 및 납일에 좋은 날을 택했다. 영녕전은 봄과 가을에 모셨다. 또 나라에 특별한 일이 있을 때 고유제를 올렸다. 요즘에는 정전과 영녕전 모두 1년에 두 차례 제향을 모신다. 5월 첫째 주 일요일에는 세계문화유산 행사로 열리고, 11월 첫째 주 토요일에는 순수 제향 의미로 모신다.

 


작주. 초헌이 지켜보는 가운데 신위께 올릴 술을 작에 따르는 의식이다. <출처: 문화재청>

 

경건하게 진행되는 종묘 제향의 헌관과 집사는 모두 남자다. 신위에게 술과 선물을 올리는 헌관은 왕이나 왕세자, 종친, 정승이다. 임금이 참여하는 친향례에서는 왕이 첫잔을 올리는 초헌을 하고, 왕세자가 두 번째 잔을 올리는 아헌을 한다. 세 번째 잔을 올리는 종헌은 정승이 하는 게 상례다.

임금이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종친이나 왕세자 또는 정승에게 초헌을 하게 한다. 정기적인 종묘대제는 물론이고 일시적인 고유제도 마찬가지다. 종묘는 여성의 발길을 허용하지 않았다. 다만 묘현례가 왕실 여성이 참여하는 유일한 종묘의 의례다. 묘현례는 가례를 마친 세자빈이 조상인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에게 예를 갖추는 의식이다.
 
이 같은 전통은 1395년 종묘가 세워진 이후 600년 넘게 지속됐다. 그런데 여성의 금기 성역에도 변화가 일었다. 종묘 영건 618년 만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이 헌관을 했다. 그것도 초헌을 했다. 2020년 기준으로 하면 종묘 역사 625년 동안 단 한 명의 여성이 초헌을 했다.

 


헌작. 초헌이 술을 신위에게 올리는 의식이다. 대축이 초헌으로부터 작을 받아 젯상에 올리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2013년 5월 1일, 태조와 신의왕후, 신덕왕후를 모신 종묘의 정전 제1실에서 고유제가 진행됐다. 형식은 헌관 한 명만 술을 올리는 단헌이었다. 여느 제향은 초헌 아헌 종헌이 술과 선물을 올리는 삼헌이다. 단헌의 주인공은 당시 문화재청장인 변영섭이다. 그녀는 이날 열린 숭례문 고유제에서 헌관을 맡았다. 그녀는 불에 탄 숭례문이 5년 3개월 만에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온 과정을 조선 태조에게 아뢰었다.

금녀의 벽이 깨지는 데는 진통이 있었다. 당시 언론에서는 “여성이 헌관을 맡은 선례가 없다는 점 때문에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내부에서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라면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큰 이의 없이 여성 헌관을 수용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종묘대제를 봉행하는 전주이씨대동종약원 관계자들은 부담이 컸다. 수백 년 이어온 전통을 깨는 데 대한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문화재청이 고유제에서 여성 초헌관을 고려함을 들은 전주이씨대동종약원측은 여러 차례 회의를 했다. 이사회의를 하고, 전례이사는 왕실 의례를 봉행하는 전례위원들과 거듭 고민을 나눴다. 이사들과 전례위원들은 여성 초헌관 제안에 대해 적잖이 당황해했다. 며칠간의 분위기는 ‘절대 수용 불가’였다. 그런데 조금씩 다른 의견이 나왔다. 남녀평등 시대에 거부할 명분이 약하다는 의견에 다수가 공감했다.

6백여 년 이어져온 전통과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갈림길에서 고민이 깊어졌다. 제안을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이사들은 “하필이면 왜, 지금인가. 우리에게 시련을 주는가”라며 답답해했다. 보다 진솔한 속내는 전통 고수였다. 하지만 남녀평등 역행 처사로 오해받을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민하던 이사 중 한 명이 필자인 이상주 전주이씨대동종약원 문화위원에게도 의견을 물었다. 필자는 얼마 전에 전례위원에서 문화위원으로 자리를 옮긴 상태였다. 필자는 답했다.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진정성이 강해도 세상이 오해하면 도루묵 아닙니까. 전통은 전통대로, 변화는 변화대로 의미가 있습니다. 수용하는 게 좋겠습니다.”

 


가료. 제향 후 축과 폐를 태우는 의식이다. 대축이 초헌에게 의식의 허락을 청하고 있다. <출처: 문화재청>


사실, 현실적으로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강한 반대 의견을 내기도 어려웠다. 종묘가 조선왕실의 사당이지만 소유자는 정부이기 때문이다. 종묘는 일제강점기까지 왕실 재산이었으나 광복과 함께 국유화 되었다. 지금의 소유자는 문화재청이다. 그래서 조선 왕실의 후손도 종묘에 들어가려면 입장권을 사야 한다. 다만 왕들의 후손으로 구성되고, 각종 왕실 의례를 보유한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종묘대제나 사직대제 환구대제 왕릉제향 등을 주관하고 있다. 예산을 집행하는 주최는 문화재청이다. 둘 사이의 관계는 문화재청이 갑,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을에 가깝다. 물론 절대적인 갑을관계는 아니기에 문화재청도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반대하면 강행은 부담스럽다.  

 


독축. 대축이 축문을 읽을 때는 제관은 물론이고 재위자도 부복을 하는 게 예의다. <출처:문화재청>

 

양측은 마침내 묘안을 찾았다. 명분과 실리를 모두 살리는 윈윈의 결과를 도출했다. 명분은 정기적인 종묘대제가 아닌 일회성 고유제라는 점이다. 전주이씨대동종약원이 역대 왕과 왕비에게 모시는 제향이 아닌 문화재청 주관의 문화 행사라는 점이 배경이다. 또 남녀평등의 시대적 요청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도 있었다. 특히 ‘여성 변영섭이 아닌 문화재청장 변영섭’으로 보는 시각은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단칼에 푸는 솔로몬의 지혜였다. 헌관 변영섭을 생물학적 여성과 남성으로 구분하지 않고 단지 문화재청장으로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 결과 변영섭 문화재청장은2013년 5월 1일 오후 2시 종묘 정전에서 종묘 600년사에 한 획을 긋는 '숭례문 복구 고유제'에서 사상 초유의 여성 헌관으로 임무를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