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서 만난 할머니,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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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플러스그림책연구회’, ‘그림책 마음 연구소’, ‘그림책 이야기’, 그림책 읽는 화요일’ 등은 서울시50플러스재단 산하 기관에서 활동하는 커뮤니티 이름이다. 기관 홈페이지에서 50플러스세대를 위한 그림책 관련 강의를 찾아봤다. <나는 기다립니다> 그림책 읽어주기 공개 강의가 2015년 도심권인생이모작지원센터에서 있었다. 아마 초창기 강의가 아닌가 짐작된다.

 

현재도 ‘그림책 테라피’, ‘그림책으로 마음읽기’등의 이름으로 꾸준히 관련 프로그램이 이어져 오고 있다. 작년부터 서울시50플러스 남부캠퍼스에서 아예 그림책을 직접 만드는 프로그램이 생겼다. 그만큼 그림책이 50플러스세대한테도 유익한 매개체가 아닌가 싶다.

 

 

 

동화책 <왜 할머니는 나만 보고 있을까요> 

 

 

 

“할머니가 내 겉옷을 매만져 주었어요.”

“할머니와 나는 시내 구경을 하러 갈 거예요.”

그림책 <할머니는 왜 나만 보고 있을까요 (글, 그림: 밀랴 프라흐만)>의 첫 장면이다. 손녀가 할머니 손을잡고 시내 박물관, 제과점, 옷가게를 구경하고 집에 왔다. 할머니는 손녀한테 오늘 뭘 보았냐고 물었다. 손녀는 본대로 다 말하고서 자신도 할머니한테 같은 질문을 한다. 할머니는 “이삐 너만 보았지.”한다. 이삐만 보고 싶어서 그랬다고 한다. 마지막 장면에는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 허리를 굽히며 손녀와 눈을 맞추려 애쓴다. 할머니의 볼은 발그레 상기되어 있다.

 

 

 

동화책 <할머니 집 가는 길>

 

 

 

“여보세요.”

“할머니?”

“응, 나야.”

“네.”

다섯 살 되는 남자아이가 전화기를 귀에 대고 있다. 그림책 <할머니 집 가는 길 (글: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그림: 하야시 아키코)>의 첫 장면이다. 아이는 전화를 끊고 할머니 집으로 간다. 길에 보이는 것들과 장난을 치며 온갖 것에 호기심을 보이며 무서운 것인지 아닌지 계속 의심을 하며 조심스럽게 걷는다. 드디어 정원에 꽃이 활짝 핀 집 대문 사이로 얼굴을 들이민다. 창밖으로 내다보던 할머니는 한달음에 달려와 손주를 감싸 안는다. 아이는 얼굴을 할머니 가슴에 묻는다. 할머니는 손수 만든 케이크를 손주한테 내놓는다. 손주는 자기가 주워 온 열매를 할머니한테 건넨다.

 

 

 

동화책 <우리 할아버지>

 

 

 

 

“지난 토요일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그림책 <우리 할아버지 (글: 릴리스 노만, 그림: 노엘라 영)>의 첫 장면으로 초등학생인 손주가 할아버지 영정사진 액자를 들고 한 말이다. 이 책은 손주가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내용인데, 마지막 장면에서는 쇠못으로 만든 동물들을 보며 할아버지를 멋진 분으로 떠올린다. 이야기 중에는 할아버지가 장난으로 부른 별명, 서로 맞지 않았던 식성 등으로 할아버지가 미웠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 할아버지로부터 받은 쇠못 동물 장난감으로 할아버지를 그리워할 수밖에 없는 존재로 기억해낸다.

 

 

 

 

동화책 <우리 할아버지>

 

 

 

 

“그래, 우리 꼬마 아가씨 잘 지냈니?”

의자에 앉아있는 할아버지한테 양손을 내밀며 다가서는 손녀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림책 <우리 할아버지 (글, 그림: 존 버닝햄)> 첫 장면이다. 손녀는 할아버지와 화분에 모종을 심고, 병원놀이, 소꿉놀이를 한다. 할아버지는 자기가 어려서 했던 놀이도 알려주지만, 겨울이 되고 할아버지는 더 손녀와 같이 놀 수 없게 되었다. 마지막 장면에는 손녀가 의자에 앉아 텅 빈 할아버지 의자를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할아버지와 놀던 마을을 떠올리며 끝이 난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주목한 것은 <우리 할머니가 이상해요 (글: 울프 닐손, 그림: 에바 에릭손)>과 <기억의 풍선 (글: 제시 올리베로스, 그림: 다나 울프카테)> 두 권의 책이다. 제목에서 짐작할지 모르게지만 두 권의 책은 생의 마지막에서 누구나 만날 수 있는 노인의 모습니다.

 

 

 

 

동화책 <우리 할머니가 이상해요>

 

 

 

여섯 살 손주는 늘 책을 읽어주던 할머니가 읽은 페이지를 안 읽었다며 다시 읽어주다가 갑자기 집안을 뒤지는 등 이상한 행동을 보게 된다.

손주는 하나둘 늘어가는 할머니의 이상한 행동에 당황하면서도 할머니를 따라 은행에도 가고, 할머니가 자신의 돈을 지키기 위해 찾아온 돈을 아무데나 숨기는 것을 따라다니며 지켜본다. 결국 할머니 자신은 자기가 돈을 숨긴 곳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런데 손주는 다 기억하며 할머니의 돈을 지키려고 애쓴다. 도둑을 물리치기 위한 단 하나 밖에 남아있지 않은 화살을 확인하면서 말이다.

 

 

 

동화책 <기억의 풍선>

 

 

 

 

“난 이 풍선이 제일 좋아.”

<기억의 풍선>에 나오는 첫 문장이다. 할아버지의 기억 주머니의 상징인 풍선 색깔은 여러 가지이고 개수도 많다. 손주는 아빠, 엄마보다도 많다며 할아버지 기억풍선에 담긴 이야기를 궁금해 한다. 하나하나 기억 풍선 이야기를 듣다가 자신과 함께 한 기억인 은색 풍선에 담긴 추억을 꺼내며 할아버지와 맞장구를 친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놓아버린 풍선을 발견하는데 정작 할아버지는 없어진 풍선을 눈치채지 못한다. 손주는 할아버지가 놓아버린 풍선을 따라가지만 끝내 놓쳐버리고 만다.

 

손주의 엄마는 ‘사람이 나이가 들면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난단다.’ 하며 알려준다. 자기와 할아버지의 공유 기억이 담긴 은색 풍선마저 멀리멀리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다 손주는 크게 소리친다.

“왜 그 풍선을 날아가게 놔뒀어요? 그건 할아버지와 저의 풍선이잖아요!”

그러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마침내 할아버지는 모든 풍선을 다 놓아 사라지고 없어졌을 때 손주가 불러도 돌아보지도 않는다. 그때 엄마 아빠는 여러 개의 새 풍선을 만들어 아들에게 쥐어준다. 그 풍선은 할아버지가 나누어준 추억이니 네가 가지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손주가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 새 풍선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그림책 속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한없이 인자한 존재, 무조건 주는 존재이기도 하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에는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아주 연약한 존재가 된다. 책을 읽으며 어려서 할머니가 싸 준 도시락, 멸치 고추장 볶음 반찬, 털실 조끼를 떠올리며 어린 시절로 잠시 되돌아갔다.

 

하지만 기억을 놔 버린 두 권의 책을 읽으면서 두 가지 감정이 들었다. 가까운 사람들과 공유 기억이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고 위안이다. 하지만 다시 공유 기억을 만들지 못하는 현실은 슬픔이다. 할머니 할아버지 눈에 어리기만 하던 손주가 역할을 바꿔 보살피는 장면에서는 지금 가족과의 공유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요즘 코로나19로 비대면 시간이 일상으로 되어 가고 있어서 더욱 그런 느낌이다.

 

 

 

필자는 최근에 버킷리스트 중 하나인 그림 그리기를 배우면서 그림책을 다시 보고 있다.

붓 터치의 강약과 색깔의 밝음과 어두움 등이 텍스트 못지않은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솔직히 처음 우리 아이를 키울 때 만났던 그림책에서 그림이 내포한 의미를 오롯이 읽어내지 못했던 것 같다.

 

50플러스세대가 되고 그림을 배우며 다시 그림책을 보게 되었다.

그동안은 누구를 위해 그림책을 읽어주었지만, 이제는 오로지 나를 위해 읽을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