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적북적 <이병률 원 북 콘서트> 온라인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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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주도하고 장악해라."

"얼마만큼 행복하냐보다 무엇으로 행복하는가 더 중요"

코로나19에도 단단해진 혼자만의 시간

 

“출석 체크합니다.” “출석이요.” “출석. 출석.....” 강의가 시작되기 전, 벌써부터 많은 분들이 채팅창에 자신들의 입장을 알리고 있었다. 먼저 입장한 사람들의 글은 위로 올라가고 새로 입장한 사람들의 알림이 빠르게 나타난다. 메인 화면은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채팅창 글들이 꿈틀거리니 생기가 넘쳐난다. 여기는 서울시50플러스 남부캠퍼스 온라인 강의장. 오늘의 강사는 이병률 시인. 그동안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을 내놨던 그가 최근 「혼자가 혼자에게」를 써서 주목을 받고 있다.

 

남부캠퍼스는 많은 사람들이 책을 통해 마음을 나누고, 새로운 기회를 만날 수 있도록 ‘북(book)적북적 캠페인’을 펼쳐 왔고, 올해가 3회이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두기’를 해야 하므로 랜선에서 책을 들고, 북적거리고 있는 셈이다. 여름부터 온라인으로 진행된 ‘아무책챌린지’를 통해 추천받은 도서 중 50+ 세대를 비롯, 시민들이 참여한 온라인 투표에서 책 한 권이 선정되었고, 그 책의 저자가 특강을 하게 되었다.

 

 

책 제목인 ‘혼자가 혼자에게’는 시기적으로 묘하게 코로나19와 맞대고 있는 듯했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정신은 연결되어 있는 사슬 구조. 함께 하지 못한 공간을 넘어 시간을 공유하는 연대감이 작가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어우러져 팬덤을 형성하는 것 같다. 왠지 덕질(?)하는 느낌이 물씬 전해진다.

 

작가는 말한다. “혼자 있는 시간이 주는 힘이 있어요, 저는 누군가 같이 있을 때 할 일을 하지 못해요. 작가로서 성과를 내지 못하지요. 혼자 있을 때 주는 힘을 통해서 삶에 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싶어요.”라고 시작했다. 작가란 그렇다. 하지만, 작가가 아닌 사람들도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할까? 코로나19가 지구에 스며들었을 때 사람들은 단절의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블레즈 파스칼은 ‘인류의 모든 문제는 홀로 방안에 가만히 있지를 못하는 데서 기인한다’고 말한 것을 작가는 상기시켰다.

 

그동안 시간을 소비하는데, 유독 TV를 많이 사용했다는 작가의 말에 동의한다. TV는 우리 가정의 가운데, 중심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인기 드라마를 보지 않으면 뒤처지는 것 같고, 이야기에 끼지 못하면, 유행에 떨어지는 사람으로 보일 것만 같았다. 전자제품 중 게임, 영화, 인터넷 서핑하는 모니터가 코로나 감염 시대에 더 많이 팔렸다는 보도가 있었다. 작가는, 잘 사는 삶이란 누군가의 삶을 따라 하지 않는 당신의 삶이어야 하는데, 누군가 ‘당신의 삶은 이것이 더 나은 길이다’고 말했다 해도, 우르르 몰려가는 그런 삶이 아니어야 한다는 이승욱 님의 「포기하는 용기」에서 한 구절을 낭독했다.

 

 

자존감이 충만한 사람은 여러 유형이 있다고 했다. 그 중, 자기 마음대로 인생을 사는 사람이 있다고, 남인숙 님의 「여자의 모든 인생은 자존감에서 시작된다」의 글을 인용했다. 마음대로 산다고 해서 삶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을 마음대로 한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 것도 아니고, 결과도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자신의 삶을 자기 통제 하에 둘 수 있겠다는 느낌을 아는 것, 그 뜻이라고 한다.

 

작가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대로 살기 위해 홀로 여행을 떠난다고 말했다. 오랫동안 멀리 떠나 있다가, 돌아와 책을 내곤 했다. 혼자 맞이하는 낯선 풍경, 예기치 않는 사건, 설렘과 두려움, 그런 것들이 문장으로 나왔던 모양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런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는지 스스로 점검하는 것이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여행은 그냥 휘발되고 소진되고 마는 일정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혼자가 혼자에게」 속에는 사랑에 관한 내용도 있다. 작가는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사랑의 꼴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리고 누굴 떠나갈 때 입체적으로 성장한다고 말했다. 혼자인 삶을 말하면서 남녀 간의 사랑을 말하는 게, 어울리는 주제인가 의문을 가질 수 있지만, 외로움을 전제로 하는 혼자는, 사랑과 교차되는 지점이 분명 존재하고, 그 지점에서 우리는 사랑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배운다고 했다. 혼자 태어났기 때문에 혼자 결정해야 하는 힘과, ‘같이 있음’으로 해서 생기는 힘, 2개의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작가의 호(號)는 ‘부채’. 유명인사가 아니라며, 쑥스러운 듯 말을 이어간다. 그의 말에 따르면, 채무 관계의 부채가 아니라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이다. 부채는 꺼져가는 불씨를 다시 키운다. 응원이다. 댓글 창에 ‘부채작가’님을 호출하는 글이 쑥쑥 올라온다. 평범하면서도 의미가 깊어 작가가 더욱 친근해진다.

 

작가는 청춘은 나이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주도하고 장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춘은 스스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끌어오는 것이라고 했다. 삶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어 ‘할까 말까’ 망설일 수밖에 없는데, 호기심을 버리면 청춘을 끌어오지 못하는 것이며, 때론 무리한 짓을 하는 게 좋다고 경험을 붙여 말했다. 부채의 힘을 작동시키고 있나 보다. 그리고 삶을 주도하는 리스트를 작성하라고 했다. 혼자 할 수 있는 팁이라면서 산책하라고 했다. 도시 속에서 주변의 작은 공원이나 천변을 거닐라고 한다.

 

50+는 혼자되는 것을 대비해 왔다. 직장의 분주함과 동료가 떠나고, 자녀들이 성장하여 따로 일가를 꾸리고, 배우자는 자신만의 시간을 요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예상했다’고 하지만, 쉽지 않다. 혼자의 시간을 단단하게 꾸려나가야 한다. 역설적으로 코로나19가 이것을 훈련하는 시간을 만들어 줬다고 해야 할 것 같다. 혼자서도 잘 있고, 여럿이 잘 어울리는, 그런 관계의 균형을 잘 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들이 올라온다.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오니, 글들이 마음에 차곡차곡 쌓인다. 책을 듣는 것 같다.” 질문을 했다. “혼자 떠나, 오래 있으며, 누군가를 찾게 되지 않을까요?” 작가는 자신을 계속 다독이라고 조언한다. 작가는 ‘얼마만큼 행복한가’가 아니라 ‘무엇으로 행복한가’가 중요하다고 하면서 말을 끝냈다. 행복은 부피가 아니라 내용과 방식의 문제인 것 같다. 화면에서 말하는 작가는 내내 혼자였다. 혼자 말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이 시간을 주도하고 있었고, 장악하고 있었다. 스스로에게 말을 건다. “혼자 있다고 혼자가 아니야, 그럴 땐 나를 초대하면 되니까, 외롭지 않게 되겠지, 조금씩만 나아지겠지.” 이병률 시인의 강의는 유튜브에서 서울시50플러스재단을 찾으면 고스란히 들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