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포털 필진 이현신님이 지난 여행을 되돌아보며 작성한 글입니다.

 

피츠로이 봉에 가려면 먼저 광대한 남부 파타고니아의 중심에 있는 작은 도시 엘 찰텐으로 가야 한다. 유네스코 선정 세계 5대 미봉인 피츠로이는 꼭대기가 항상 안개와 구름에 싸여 있어서 원주민들은 연기를 뿜는 산이라는 의미의 '엘 찰텐'이라고 불렀는데 그대로 마을 이름이 되었다. 우리나라 시골 마을 수준이지만 아이스크림과 커피가 맛있다.

 

엘 찰텐 전경 

 

전체가 무지막지하게 큰 하나의 암벽으로 이루어진 피츠로이 봉의 높이는 3,375m. 봉우리를 보기에 가장 좋은 계절은 1월에서 4월인데 이때도 제대로 볼 가능성은 1/3에 불과하다고 한다. 좋은 날씨가 여행자에게 가장 큰 행운을 선사한다는 말은 진리다.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에 출발하기도 하지만 바람이 몹시 거세고 어두워서 다칠 위험이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엘 찰텐을 출발하여 걸어서 왕복 다섯 시간 정도 걸리는 전망대에서 피츠로이 봉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게 좋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라는 명성에 걸맞게 오밀조밀한 변화가 아름답다. 작은 개천도 흐르고 외나무 다리도 건너는 등 지루하지 않도록 변화를 준다. 중간중간에 파타고니아의 수려한 풍광을 보여주는 전망 좋은 장소도 여러 군데 있다. 모퉁이를 돌았을 때 나타난 눈 덮인 바위산이 갑자기 나타났다. 그때의 감동이란. 피츠로이 봉은 1952년 프랑스의 마니욘 등반대가 처음으로 등정했다.

 

만년설에 덮인 피츠로이 봉

 

페리토 모레노 빙하는 아르헨티나 남서부의 산타 크루즈 주의 로스 글라시아 레스 국립 공원에 있는 빙하다. 탐험가 프란시스코 모레노 (Francisco Moreno)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세계 3대 육상빙하 중 하나다. 비교적 젊은 빙하로 다른 빙하에 비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생겨서 엄청나게 빨리 밀려나는 중이라고 한다. 6월에서 12월 사이에 만들어져서 12월에서 4월 사이에 호수 쪽으로 밀려난다. 최초의 빙하(맨뒤)는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했을 때쯤 생겨났다. 앞쪽은 아르헨티노 호수와 연결되어있는데 호수 자체의 경치도 아주 좋다. 총 길이 30km, 5km, 면적 250km2, 수면 위로 솟아오른 평균 높이는 74m. 큰 얼음 조각이 무너지는 파열 현상이 꾸준히 일어나는데 관광객이 보고 싶어 하는 광경이다. 작은 조각이 떨어져 나오는데도 천둥소리가 난다. 모레노 빙하가 팽창하는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600살이 넘는 모레노 빙하

 

5시간짜리 빙하 트레킹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빙하 트레킹을 한다. 트레킹을 위해 아이젠을 신어야 하는데 대여점 직원들이 신겨준다. 적어도 세 명 이상의 현지인 가이드가 인솔한다. 아이젠을 신었지만 걷기가 쉽지 않다. 일렬로 서서 조심조심 발을 옮겨야 하고, 가이드가 인솔하는 길로만 가야 한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얼음 구멍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밧줄에 의지해 구멍 속으로 내려갔다 올라오는 체험도 한다.

 

일렬로 빙하 위를 걷다

 

트레킹이 끝나면 가이드가 빙하에서 떼어낸 얼음에 위스키를 부어서 준다. 목을 넘어가는 시원한 위스키에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 작은 일에 일희일비하며 사는 삶이 덧없다(거무스름한 건 근처 산에서 날아온 흙이다). 술을 못 마시는 사람도 빙하 위스키 한 잔은 사양하지 말기 바란다. 언제 다시 마셔보겠는가.

 

짜릿하게 목을 넘어가는 빙하 칵테일 한 잔

 

버스를 타고 칠레로 넘어가면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이 나온다. 토레스 델 파이네는 파이네의 뿔이란 뜻이다. 빙하와 만년설을 이고 있다. 빙하가 녹아서 흐른 물이 호수가 되었다. 에메랄드색 물빛이 아름답다.

 

파이네의 뿔들이란 이름이 붙은 바위 봉우리

 

호수 가운데 카페가 있다. 나무다리를 건너가서 커피든 와인이든 맥주든 마시며 고단한 다리를 쉬어가자. 비싸기는 하지만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만년설에 덮인 바위산과 에메랄드색 호수를 보며 마시는 한 잔의 술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다. 여독이든 스트레스든 말끔히 풀린다. 자연보다 더 좋은 치료제는 없다. 한 잔의 술을 마시며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는 싯귀를 떠올린다. COVID 19 백신이 나오면 항체를 만든 다음 망설이지 말고 여행을 떠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