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늘 피곤했다.

쉬어도 피곤이 가라앉지 않았다.

월요병도 심했다.

새벽 4시부터 배가 조이는 듯 아파오는 걸 시작으로 두통과 피곤함이 지속됐다.

 

봄이면 증상이 더 심해졌다.

남편이 달리기를 같이 하자고 권유했을 때 첫 마디가 “지금도 피곤한데?” 하는 것이었다.

몸이 이런데 무슨 운동? 일요일에 종일 쉬어도 피곤한 판에….

 

달리기를 시작하고 보니 걱정한 그대로였다.

훨씬 더 피곤했고 오전에 졸리는 증세는 심해졌다.

월요병도 여전했고 온몸이 처지는 듯 했다.

몇 달이 지나고 몸이 차츰 적응하면서 몸의 신호가 조금씩 바뀌었다.

 

‘자의반 타의반’으로 달리기를 시작한 지 만 15년이 됐다.

지금은 ‘자타 공인’ 마라톤 마니아다.

42km가 넘는 마라톤 풀코스 대회만 50번 넘게 뛰었다.

하프(21km) 코스 대회에는 잘 나가지 않는다.

한 주에 서너 번, 총 연습 거리가 70~80km나 되는데 하프를 뛰면서 4만원을 내기에는 왠지 ‘본전’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일반적으로 마라톤 대회 참가비는 4만~5만 원 정도다).

울트라마라톤이라고 불리는 100km 대회도 3번 참가했다.

100km가 어느 정도인지 감이 잘 안 온다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설명하곤 한다.

서울시청에서 천안시청까지의 거리가 98km 쯤 된다고.

 

<사진 1> 3년 전 부산 울트라마라톤 완주 후

 

이쯤 되면 나를 만나보지 않은 사람들은 흔히 TV에서 보는, 찰진 근육을 소유한 여성을 상상할지도 모른다.

오히려 정 반대다.

근육질과는 거리가 멀다.

155cm(그나마 지금은 1cm 이상 줄었을 것이다)의 평균 이하 키와 50kg이 채 안 되는 몸무게를 지녔다.

더구나 몇 년 안에 ‘6학년’이 되는 평범한 아줌마다.

 

어찌 보면 나만큼 마라톤에 맞지 않는 몸을 가진 사람도 드물게다.

선천적으로 심장이 튼튼한 편이 못되었다.

더구나 오랜 기자생활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장에 부담을 더했다.

달리기를 시작할 무렵 의사는 “달리다가 언제 당신 심장이 멈출지도 모른다”고 겁을 줬다.

 

발가락도 큰 표시는 나지 않지만 선천적 기형이다.

더구나 평발이다.

국내에서 유명하다는 족부정형외과 의사는 발바닥 부상으로 찾아간 내게 “그런 발로 뛰다가는 발이 완전히 망가진다”면서 특수깔창을 권했었다.

 

하지만 꾸준히 몸을 가꾸면서 달리기를 지속한 끝에 지금 나의 몸 상태는 15년 전보다 오히려 나아졌다.

달리기로 스트레스를 극복하면서 심장은 튼튼해졌고 발바닥도 더 이상 속을 썩이지 않는다.

 

또 하나 좋아진 게 있다.

꽤 오래전부터 봄철이면 꽃가루 알레르기를 심하게 앓는 편이다.

봄철이 다가오면 꽃구경 기대보다 알레르기 걱정이 앞선다.

기침과 재채기를 하도 자주 해서 주위 사람들이 심한 감기에 걸렸느냐고 걱정할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에 잘 가지 않는 이유는 병원을 심하게 무서워하는데다 3주 정도 고생하면 낫기 때문이다.

 

신기한 것은 알레르기를 앓는 3주 동안에도 달리기를 하는 시간만큼은 증상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달리기를 할 때는 기관지가 기침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라서…”라고 농담 같은 해설을 붙이기는 하지만 어쩌면 사실일지도 모른다.

물론 달리기가 끝나면 또 다시 기침과 재채기, 콧물이 연속되지만 달리는 시간만큼은 알레르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러니 어찌 달리기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사진 2> 지난 4월 여의도에서 달리기하는 필자 일행

 

몸도 몸이지만 마음은 더 건강해졌다.

마라톤을 하기 전에는 모든 사물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특히 나의 성향과 기자생활이 잘 맞지 않아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마라톤을 접하면서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방법을 깨닫게 됐다.

특히 달리기는 힘든 일을 참아내는 능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됐다. 단지 달리기만으로 이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했느냐고 묻는다면 “직접 느껴보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

달리기라니, 먼 나라 얘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조언한다면 달리기를 걷기로 바꿔서 생각해도 된다.

걷기만 꾸준히 해도 되고 달리기로 재미를 붙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달리기(또는 걷기)를 어떻게 시작할까.

뜬금없지만 탤런트 차인표가 해답을 제시할 수도 있다.

 

그는 지금은 폐지된 sbs 토크쇼 '힐링캠프'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팔굽혀펴기를 매일 1500개씩 한다고 자랑했다.

자신이 중식당에서 알바를 하던 시절부터 시작된 하루 일과라고 했다.

당시 MC를 보던 이경규가 깜짝 놀라며 되물었다.

 

“그렇다고 1500개라니, 일반인은 불가능한 걸 말하면 안 되죠.”

그는 “의외로 비결은 간단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팔굽혀펴기 한 개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그리고는 하루에 한 개씩 늘려나가는 거죠.”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달리기를 할 수 있는 비결은 일단 운동화를 신는 것이며 1km라도 달리는 것이다.

머릿속으로 생각만 해서는 1km도 뛰지 못한다.

누구보다도 저질체력이었던 나는 처음 달리기를 시작할 때만 해도 1km도 못가서 헉헉댔다.

 

풀코스를 뛴 것은 달리기를 시작한 지 거의 1년이 지나서였다.

중요한 것은 차근차근 이며, 꾸준함이다.

반드시 풀코스까지 뛰어야 한다는 얘기도 아니다.

마음공부 하는 기분으로 달리다 보면 뜻밖에 자신의 삶을 성공으로 이끄는 비결도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잘’ 달리는 게 아니라 ‘달리는’ 것이다.

 


 

마라톤 마니아이자, 칼럼니스트인 제프 갤러웨이는 달리기를 시작하는 방법에 대해 아래와 같이 조언한다.

6단계이지만, 이를 줄이면, 나가서 달린다로 요약된다.

 

- 1단계 : 템포가 빠르고 에너지가 넘치는 음악을 듣는다.

- 2단계 : 편안한 운동복과 운동화를 입는다.

- 3단계 : 몸과 마음을 이완한다.

- 4단계 : 날씨가 어떤지 보기 위해 문 쪽으로 향한다.

- 5단계 : 이웃들이 무엇을 하는지 보기 위하여 골목 끝으로 나가본다.

- 6단계 : 달리기 시작한다-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