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포털 필진 이현신님이 지난 여행을 되돌아보며 작성한 글입니다.

 

구름인가 안개인가 저 높은 곳 마추픽추.
마추픽추로 오는 길은 멀고도 멀었다. 비행기로 인천-LA-리마(페루의 수도)-쿠스코까지. 쿠스코에서 버스를 타고 내리막길을 70km 달려서 오얀타이탐보로. 오얀타이탐보에서 마추픽추 아랫마을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까지는 유일한 교통수단인 기차를 타야 한다.
코로나19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갇혔다는 쿠스코는 해발 3,399m다. 2,744인 백두산보다 650m가량 높다. 고산병이 두렵지만 걱정하지 말고 떠나자. 속이 안 좋거나 머리가 아프면 소화제나 두통약을 먹을 게 아니라 의사를 호텔로 부르면 된다. 여행자 보험으로 처리되니 참을 필요가 없다. 혈중산소포화도가 80%는 넘어야 하는데 나는 65%까지 떨어져 있었다. 의사는 LPG 가스통만 한 큰 산소 탱크를 호텔 방으로 가지고 왔다. 밤새 산소호흡을 한 덕분에 주말에만 열리는 장터에 가서 알파카 스웨터를 비롯한 기념품을 살 수 있었다. 만원 정도면 살 수 있는 가볍고 따뜻한 알파카 스웨터는 세탁기에 빨아도 변형이 없어서 한 벌만 사 온 걸 후회했다.

 

주말에만 열리는 장터. 알파카 스웨터를 비롯한 기념품을 살 수 있다


희번하게 날이 밝았으나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다. 어제 저녁 잠들 무렵부터 폭우가 내렸다. 비가 잦아들지 않으면 내일 마추픽추에 못 갈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잠을 설쳤다. 어둑한 가운데 배낭을 지고 밖으로 나왔다. 장대비는 는개로 바뀌어 있었지만, 다리 아래 흐르는 물소리는 폭포 소리를 방불케 했다. 하루 입장객 수가 제한되어 있다기에 발을 재게 놀려 셔틀버스 매표소로 갔다.
골짜기를 휘감은 안개 사이로 버스가 구불구불 산길을 올라갔다. 키 큰 나무들의 형상이 희미하게 보였다. 버스에서 내려 풀에 덮인 광장을 지나서 돌담을 따라 걸으면 입장객을 관리하는 사무실이 나온다. 사위를 감싸고 있는 희부연 입자는 구름이다. 발아래는 맑은데 머리 위는 흐리다. 고산지대에서는 석양이 질 때쯤 구름이 내려와서 도시를 감싸는데 굉장히 빠른 속도로 쉬이익 아래로 내려온다. 땅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나 수면에서 피어오르는 해무만 보았던 터라 위쪽부터 구름 속에 파묻히는 마을을 볼 때마다 가슴이 뛰었다.

 

골짜기를 휘감은 안개

 

우리가 마추픽추라고 부르지만 사실 두 개의 봉우리가 있다. 케추아어로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 와이나픽추는 젊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입산자의 안전을 위해 내외국인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이 사무실에서 입산 신고를 해야 한다. 커다란 장부 책에 여권번호, 이름, 국적 등을 적고 서명한 후에 들어가야 하고 나올 때 나왔다고 또 서명한다. 만일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또 내야 한다. 긴 줄이 생길 수밖에 없다. 불평하는 사람들을 현지인 가이드가 달랬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너희들의 안전을 위해서라고.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오래전 이곳을 건설했던 조상들도 그랬다고. 골짜기가 깊어 왕래가 드문 탓이기도 했지만, 모두를 한 가족이라고 생각했고 언제 어디서 누구를 만나더라도 반겼다고. 스페인 침략자들도 환영했고 기꺼이 환대했기 때문에 망한 거라고 설명했다. 나는 그의 말을 진심으로 믿었다.
마추픽추에 왔지만 늙은 봉우리인 마추픽추에 오르는 사람은 없었다. 이럴 때 나는 생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와이나픽추든 마추픽추든 봉우리가 잉카 사람들의 코를 닮았다는 말은 진실이었다. 인디오들은 남녀 할 것 없이 얼굴의 사 분의 일은 됨직한 매부리코를 가졌다. 콧대가 높고 가로 폭도 넓고 콧방울도 크다. 희박한 산소를 많이 가져가려고 큰 코로 진화한 모양이다. 구름에 가려 있어서 봉우리 전체 모습이 나온 사진이 없다. 상당히 높이 올라가서 찍은 사진인데 뒤에 보이는 봉우리처럼 능선이 이어지는 우리나라 산과 달리 하나하나가 인디오의 코처럼 우뚝 솟아있다.

 

 하나하나가 인디오의 코처럼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

 

마침내 궁전터가 내려다보이는 지점까지 올랐다. 사진에 보이는 희부연 건 안개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빠르게 솟구쳐 오르는 구름이다. 내가 구름 위에 있다는 의미다. 어찌나 빠르게 올라오는지 팔이 아프도록 카메라를 들고 있다가 간신히 건진 사진이다.

 

내려다보이는 궁전터
      

마추픽추에 와 보면 왜 이런 곳에 도시를 건설했는지 알 수 있다. 페루는 면적이 남한의 12배다. 인구는 3,200만이 조금 넘는데 1,000만이 수도인 리마에 산다. 높은 습도 때문에 빨래가 마르지 않아 세탁소에 맡긴다. 풀 한 포기 없는 사막을 끝없이 달리는 동안 국토를 균형 있게 개발해야겠으나 엄청나게 넓은 땅에 인프라를 구축한다는 게 불가능함을 깨달았다.
사막을 지나 마추픽추를 발견했을 때 고대인이 느꼈을 감동을 나도 느꼈다. 황량하고 메마른 사막 너머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초록이 무성한 산과 강을 마주했을 때 얼마나 감격이 컸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성스러운 강’이라는 이름을 붙였나 보다. 어젯밤 내린 비로 물색이 황토색이지만 깊은 계곡을 흐르는 강은 생명의 젖줄인 탓에 성스럽다는 찬사가 전혀 과하지 않다.

 

메마른 사막 너머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초록이 무성한 산과 강

 

궁전터로 내려왔을 때는 햇빛이 쨍쨍하게 비치는 화창한 날씨였다.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었다. 과거 예식이 거행되었던 성소인 달의 신전이 있는 동굴과 경이로운 석조 건축물들과 암석을 깎아 만든 왕좌를 구경했다. 왕의 궁전이라 불리는 건물 밑은 감옥으로 사용된 흔적도 있었다. 문 입구에 나 있는 두 개의 구멍에 죄수의 손목을 넣게 한 다음 잠갔다고 한다. 잉카 사회의 주요 범죄는 도둑질과 거짓말, 그리고 게으름이었다니 n번방 사건을 접하는 내 심정이 착잡할 따름이다.

 

궁전터

 

그대! 사는 게 무언지 궁금하거나 회의가 느껴지거나 새로운 의미를 찾고 싶다면 마추픽추에 가 보라. 어떤 질문에 대한 답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