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산된 계획만큼 허탈한 것이 또 있을까? 무산되리라는 걸 고려조차 하지 않고 촘촘히 계획을 세운 경우, 상실감은 더 크다. 2020년 봄날, 수포가 되어버린 계획에 대해 원망할 사람이나 대상조차 없다. 낯설고 두려운 이 코로나19라는 현실을 수용할 뿐이다.

 

 그래서 남겨진 것은 그리움이다. 느리게 움직이는 이 도시를 보면서 예전의 경쾌하고 빨랐던 탬포의 도시를 가슴 시리도록 그리워할 뿐이다. 그 그리움 속에는 원망이 아닌 끈끈하고 가녀린 사랑이 배어 있다. 일상에 대한 사랑! 그것이 지금을 그나마 지탱하게 한다.

 나 역시 남들처럼 2020년 봄의 엄청난 계획이 있었다.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과감하고 통 큰 계획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증발되어버린 그 계획이 속상하다. 그래서 이 봄날, 소박하게나마 그 계획을 그리워하면서 즐기고프다.

 

 지금쯤이면 난 프랑스에 있어야 했다. 사실 업무차 유럽에 갈 일이 있었고 그 참에 프랑스 파리에 들러서 일주일간 머물고자 했었다. 업무도 중요했지만, 파리의 봄을 느끼고 싶었다. 바로 클로드 모네(Claude Monet)의 정원, 파리 서북쪽 인근 지베르니(Giverny)에 있는 모네의 집 정원에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곳은 봄이면 더 화려하고 아름다울 것이다.

 

 

 그림에 대해 식견이 높진 않지만,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봤던 그림을 직접 감상할 기회가 있다면, 그 화가와 그림에 일명 ‘꽂히기’ 때문이다. 그중 하나가 모네의 <수련>이다. 수년 전 뉴욕의 현대미술관에서 <수련>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전시관 전체 벽을 휘감고 있는 엄청난 크기의 수련 작품을 본 이후, 수련을 그렸던 모네의 정원에 직접 가보고 싶었다.

 

 인상주의의 시작과 마지막을 같이 했다는 모네. 같은 장소와 대상이지만 계절, 날씨, 시간에 따른 변화무상한 자연의 경이로운 모습을 캔버스에 담은 것이다. 모네는 정지된 듯한 정원이라는 공간에서 바람, 햇빛, 물에 따라 변화하는 수련의 모습을 250점의 연작으로 남겼다.

 

 어쩌면 지금의 상황과 닮았다. 노년의 모네는 그림 그리러 밖으로 나가는 것이 힘겨워서 자신의 집에 정원을 꾸며서 그곳을 한결같이 그렸다. 나는 코로나19로 바깥 활동을 자제하다 보니 동네 뒷산을 규칙적으로 산책하게 되었다. 같은 길을 이른 아침, 느즈막한 해질녘, 강렬한 햇살을 받으며, 흐린 날 바람과 함께, 새들의 수다를 들으며 산책하고 있다. 마치 모네가 연작으로 그렸던 수련처럼 연작 산책을 즐기고 있다.

 

 

 뒷산에는 햇살, 바람, 새 외에도 숱하게 많은 것들이 있다. 이쁘다는 것을 무기로 나의 산책로를 과감하게 침범한 개나리. 괘씸하기도 하지만 봄의 전령으로 이쁘기까지 하니 용서할 수밖에. 단짝 친구가 되어 얼굴 붉히며 나란히 어깨 내미는 진달래 역시 산책로를 풍성하게 한다. 녹음이 짙어지기 전 아우성치듯이 흔들어대는 연둣빛 나무들의 군무. 제각기 다른 모습들을 하고 있지만, 어디 하나 미운 구석이 없다.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공원에는 가지 못했지만, 놓칠 뻔했던 나의 뒷산을 찾게 된 것이다. 모네의 정원과 나의 뒷산에는 공통점이 있다. 늘 그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있지만, 다양한 색채를 띤 꽃, 크기와 굵기가 서로 다른 나무들, 강도를 달리하는 빛과 바람이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모습, 빛깔, 향기가 있어서 아름다운 정원과 뒷산이 된 것이다.

 

 동네 뒷산에서 내 키, 무게만큼의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산책과 함께 나 자신과의 거리는 허물어지고 있다. 산책이란 오로지 나의 리듬과 속도로 흙을 딛는 것이다. 차를 타고 빨리 달릴 수 없기에, 비행기 타고 높이 날 수 없기에 소박하게 인간적으로 자연을 직면하면서 나 자신을 만날 수 있다. 이중 창호로 소음 차단한 거실보다 오히려 더 시끄러울 수 있는 산책로이지만, 조급함이나 긴장을 유발하거나 경쟁적 불안감을 느끼게 하는 소리가 아니라, 느리고 편안한 다독임의 소리로 나를 조용히 되울리게 한다.

 

 무리하지 말자. 과하게 포장하거나 폄하하지도 말자. 산책하면서 느꼈던 내 부피만큼이 가장 아름다운 나였던 것이다. 키만큼의 높이, 보폭만큼의 속도, 볼 수 있을 만큼의 사유, 느낄 수 있는 만큼의 감성. 그 이상을 탐하거나 부러워하지 말자. 서로 다른 모습의 자연이 한데 어울려 아름다운 산책로를 매 순간 만드는 것처럼, 사물이든 사람이든 서로 다른 크기와 질량만큼 인정하고 사랑하자. 하지도 못한 사랑을 놓치기 싫어하거나, 즐길 줄도 모른 채 누리려고만 하는 어리석은 실수는 하지 말자.

 

 모네의 정원이 아닌 나의 뒷산 산책로에서 모네의 연작 같은 나의 대작이 탄생하고 있다. 삶이 경쟁과 치열한 전쟁터라고 했을 땐 고독과 불안이 있었다. 흙을 딛고, 스쳐 가는 바람을 떠나보내며, 닿을 수 없이 저만큼 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니, 서로 다른 모습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이 보였다. 그러자 갑갑한 지금이 뻥 뚫리며 매 순간이 사랑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