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50플러스캠퍼스와 센터에서 활동을 하면서 공간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누게 된다.

게다가 사회공헌으로 북코디네이터 활동을 하다 보니 책에 관련된 프로그램에도 자주 참여하게 되면서 작은 책방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나에겐 오래전 공간에 대한 기억이 하나 있으니...

대학에 다닐 때 자주 가던 클래식 카페가 있었다. 그곳에서 음악도 듣고, 책도 읽고, 세미나도 하고 스터디도 하면서 그 공간을 참으로 좋아했었다. 그러면서 지나치듯 이런 공간을 갖고 싶다는 말을 했었나보다.

대학을 졸업하고 방송작가로 일하던 중에 덜커덕 일을 저질렀다. 진짜 카페를 차린 것이다.

시작은 이러했다. 졸업하고 내가 그런 말을 했는지도 잊었던 어느 날 한 선배가 자기 동생이 다니는 K대 앞의 카페가 새 주인을 찾는다며 해보라고 연락을 하였다. 그건 그냥 농담이었노라고 일축해버렸는데 며칠 후 친구와 그 근처에 갔다가 호기심에 카페에 들르게 되었다. 큰 길 건물의 뒤편, 창고 같은 곳에 위치한 카페였다. 돈 들인 티가 전혀 나지 않는, 대충 꾸민 소박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고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나보다 한 살 위의 주인은 Y대 불문과 출신으로 처음 만난 나를 사로잡을 정도로 친화력이 상당했던 데다가(하긴 매수자가 될 사람이 찾아왔으니 당연했으리라) 당시 남자친구가 K대 운동권인 까닭에 카페는 운동권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었다(어느 정도의 일정 수입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면서 곧 대학병원이 들어설 거라서 유동인구가 많아질 거라는 미래 청사진까지 펼쳐보였다 (몇 년 후 병원은 진짜 오픈했지만 삽질도 안한 그 때 김칫국을 마셨으니 참 어렸고 뭘 몰랐다). 뭐에 홀린 듯 카페를 인수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고 당시 방송 원고를 쓰며 꽤 괜찮은 수입으로 통장이 두둑했던 터라 앞뒤 가리지 않고 선뜻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집에 얘기를 꺼내니 아버지는 웬 물장사냐며 우려 섞인 반대를 하셨고 진취적인 성격의 엄마는 학교 앞에서 학생들 상대로 하는 커피숍인데 괜찮을 것 같다고 하며 내 편을 들어주셨다. 자식 인생에 감 놔라 배 놔라 별 개입을 하지 않았던 부모님인지라 반승낙을 얻고 다시 한 번 찾아가보고 내 결정을 굳힌 후 인수를 하였다.

그 당시 임대보증금보다 높은 권리금을 주고 막상 인수를 하고 보니 처음 보고 마음에 들었던 아늑한 분위기가 칙칙하게 느껴져서 리모델링을 하게 되었다. 돈 여유가 없으니 친구, 친구의 친구, 그 친구의 친구를 동원해 공사를 해서 백마역 화사랑 분위기의 카페에서 모던한 스타일로 변신을 했다. 전체 분위기가 바뀌니 그에 맞춰 가구며 집기도 중고로 바꾸게 되었다. 있는 돈을 싹싹 긁어서 새 단장을 하고 오픈을 했건만 손님이 들지를 않았다. 나를 도와줄 것처럼 굴며 나를 매료시켰던 사교성 좋은 주인은 전 주인이 되면서 발길을 끊었고, 전주인과 그 남자친구 때문에 드나들던 친구들도 자연스레 발길이 끊겼다. 게다가 내 활동 반경과는 극과 극에 있던 곳이라서 내 친구들도 마음을 먹지 않으면 들르기가 쉽지 않아 정말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카페를 꾸려 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한 것이 대학 졸업한 지 3년 차로 아직 대학생 티도 못 벗은 그 시절에 뭔 수완이 있었을까. 무엇보다 수입이 얼마 되지 않으니 사람을 쓸 형편도 안 되어 혼자서 하루 종일 그 공간을 지키는 것이 제일 고역이었다. 그나마 막 대학을 졸업한 동생이 취업을 위해 학원을 다니고 있어 시간 조정을 해서 가끔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한동안은 방송 일을 겹쳐 하다가 한 시즌만 집중하기로 하고 풀타임으로 자리를 지켰지만 오지 않는 손님을 그러모으기는 한계가 있었다. 그래도 문을 여닫는 시간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 손님이 없어도 문을 열었는데 문제는 방학이었다. 학생들 외엔 드나드는 사람이 없는데, 방학을 하니 그나마 얼마 되지 않게 드나들던 손님이 뚝 끊겼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여름날, 같은 건물에 있던 도서대여점에서 고우영의 만화,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잔뜩 빌려놓고 읽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책을 읽고 있는 것인지, 책이 나를 읽고 있는 것인지 피아 구분이 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가을 개편에 일을 다시 시작하였고 일 년이 되어 임대 계약이 만료될 때 재계약을 하지 않고 조용히 걷어 치웠다. 한두 달을 제외하곤 임대료도 벌지 못해 저축한 돈을 빼서 썼으니 권리금 포함, 꽤 많은 적자를 보았다.

그래도 학교 앞이라 학생들이 드나들며 언니, 누나하며 따라줬고 함께 웃고 떠들며 이야기를 나누던 기억은 지금도 남아있다.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실컷 들었고 혼자의 시간도 많이 즐겼다. 나쁘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개인들이 차린 카페가 우후죽순 늘어나기 시작할 즈음 주변 사람들 중에 농담처럼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꿈꾸듯 얘기하는 소리를 종종 듣곤 했다. 어차피 사람들 만나서 차 마시는데 내가 카페를 하면 사람들도 만나고 돈도 벌 수 있지 않겠냐는 말에 오래전 여름철, 에어컨은 고사하고 선풍기 바람도 싫어 참선하듯 인내하며 버텼던 시간이 떠올랐다. 그러고 겉으론 웃지만 속으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했다. 그건 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그런데 이걸 어쩌나. 요즘 책방 하나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일명 맘대로 책방. 책을 소재로, 책을 주제로, 책을 도구로 맘대로 해보고 싶은 거 다 해보는 책방, 반드시 책과 관련이 있지 않아도 된다. 공연을 해도 좋고, 강의를 해도 좋고, 수공예를 해도 좋을 것 같다. 주제를 정해 사람을 모아 수다를 떨어도 좋고 조금 앞서서 그 길을 걸었던 인생 선배의 경험을 나누는 자리가 되어도 좋을 것 같다. 그래서 그곳에 가면 심심하지 않을 것 같은 공간, 어른들을 위한 재미있는 놀이터가 될 수 있는 곳을 상상해본다.

모임 자리에서 슬쩍 책방을 해보고 싶다는 얘길 비치면 열에 일고여덟은 말리고 한둘은 해보라고 부추긴다. 난 소수 의견을 좋아하는 편이라 그 한둘의 얘기를 귀담아듣고 싶어진다. 아마 다수가 하라고 했으면 다수 의견을 좋아한다고 했을 것이다. 결국 하고 싶단 얘기다

그래서 요즘 어디 맞춤한 공간이 없는지 기웃거리는 중이다. 얼마 전엔 민주주의서울에 청원도 냈다. ‘50+에게 서울시의 유휴공간을 내어주세요라고. 그리고 재밌는 일을 함께할 사람을 쟁이는 중이다. 이미 책방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경험도 참고로 하고 있다. 할 마음을 굳히면 도와주겠노라는 지원군도 생겼다.

오래전 망해먹은 카페의 씁쓸한 기억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비싼 수업료의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공간을 위해 어떤 것들을 감당해야할지 정도는 알고 있으니 이제는 좀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바라건대 내년 이맘때는 그곳에서 놀고 싶다는 즐거운 상상을 한다.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 이 글을 읽고 찾아오는 분이 계시다면 특별회원 대우를 해드리겠다. 그리고 혹시나 독자 가운데 오래전 K대 인근의 카페 두이노의 비가를 기억하는 분께도 같은 혜택을 드릴 것을 약속한다. 내년이 벌써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