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길의 돌담 사이에 난 길로 올레꾼들이 걷고 있다

 

제주는 관광도 휴양도 모두 가능한 섬이다. 우리나라에 제주 같은 아름답고 좋은 섬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른다. 이 섬이 여행지로 각광받기 시작하던 초기에는 주로 갓 결혼한 부부들의 신혼여행지로 개발되었다. 신혼부부들은 택시를 전세 내어 타고 운전기사의 도움을 받아 여기저기 관광지라 할 만한 곳을 다니며 구경도 하고 ‘남는 것은 사진밖에 없다’며 사진을 찍곤 했다. 그러다가 제주는 점차 학생들의 수학여행이나 효도관광지로 확대되었다. 여행객들은 2박3일 동안 여러 대의 버스를 나눠 타고 섬의 동쪽과 서쪽을 몰려다녔고, 가이드가 지목한 기념품가게를 드나들며 조용했던 섬을 휘저어놓고 갔다. 최근에는 관광보다는 휴양 개념으로 변화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소규모 동창모임이나 동아리, 가족이나 개인들이 명소와 맛집을 찾아 유행처럼 즐기는 형태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부슬비가 내리는데도 성산일출봉 부근 광치기해변을 걷고 있는 올레꾼들

 

이렇게 관광의 유형이나 경향이 바뀌게 된 데에는 언론이 많은 역할을 한 것 같다. 방송 등이 제주를 다룰 때, 초기에는 주로 감귤 같은 특산품 위주로 다루었으나 일박이일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이 올레길을 직접 걷는 내용을 내보내면서부터 제주의 길은 국민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 방송 이후로 제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이 올레길을 경험한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흔히 만나게 되는 감귤 과수원. 제주도의 남쪽에서 이런 풍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중문에서 모슬포 가는 올레길에 있는 해식동굴.

                                                                                                                                                                                  최근에는 자연보호를 위해 우회하도록 코스가 정리되었다

 

서울 같은 거대 도시에서 삶에 시달리고 사람에게 치이며 시간에 허덕이던 사람들이 어두운 터널 안과 같은 힘들고 지친 삶을 살다가, 한 번쯤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제주를 찾게 되는데, 이때 그들은 올레길을 찾는다. 소위 힐링 바람과 맞물리면서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걷기 위해 일부러 제주를 찾는다고 한다. 올레길은 10여 년 전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20개가 넘는 코스가 개발되었는데, 제주 본섬뿐만 아니라 우도, 마라도, 그리고 추자도에 이르기까지 제주의 속살을 자세히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길이다.

 

천주교인이 아니더라도 들러볼 만한 김대건신부 표착기념관. 오른쪽 흰 건물은 김대건신부 기념성당

 

올레길의 첫 번째 코스는 제주의 동쪽에서 시작된다. 기이하게도 이 섬의 중심지인 제주시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제주 삼일운동의 시발점인 조천에서도 시작하지 않는다. 섬에서 가장 따뜻한 서귀포의 어디에서도 시작하지 않는다.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불어 못살겠다는 모슬포에서도 역시 시작하지 않는다. 출발점은 제주의 동쪽 시흥이다. 과거 조선시대에 제주 목사가 부임하면 맨 처음 시흥부터 방문을 시작하였다는 점에서 착안하여 시흥을 모든 올레길 코스의 시작점으로 잡았다고 한다. 이 코스에서 두 개의 오름을 경험한다. 그 이후의 코스들은 마을 안으로 들어가거나 바다 옆으로 계속된다.

 

올레길을 걷다 보면 흔히 만날 수 있는 바닷가 풍경

 

올레길은 주로 해안에 조성되어 있으니 걷기가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막상 걸어보면 우리의 일상처럼 끊임없이 반복되는 길이다. 수월하게 잘 가다가 높은 언덕이나 깊은 골짝을 만난다. 개울과 시내를 건너는가 하면 다리를 이용해야 할 때도 있다. 햇볕 따가운 나무 한 그루 없는 곳도 있고 울창하게 우거진 곶자왈 지역을 만나기도 한다. 강한 바람 때문에 걸음을 떼기 어려운 곳이 있는가 하면 그냥 휘파람을 불며 걸을 수 있는 평탄한 곳도 있다. 길이 인생을 닮은 것이다. 아니 사실을 말하자면 인생이 이 길을 닮은 것이다.

 

바닷가 바위에 파도가 부딪혀 부서지고 있다

 

섬이 갖는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순환 회귀 길이 될 수밖에 없는 제주의 올레길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우리의 일상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그래서 이 길을 걷다 보면 많은 성찰이 가능해진다.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며 일상을 반성하고, 자기 앞에 펼쳐진 끝없는 길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꿈꾸게 된다. 걷고 또 걸어 하나의 코스를 끝내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고 또 다른 시작이며 그 일은 섬을 한 바퀴 다 돌 때까지 그치지 않는다.

 

한라산 둘레길 중 사려니숲길의 일부.

사려니숲길은 제주 사람들이 자랑거리로 여기는 삼나무숲으로 조성되어 있다

 

제주를 대표하는 길이 올레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올레길이 주로 해안과 중산간을 오가는 길이라면 더 높은 곳에 조성된 한라산 둘레길도 있다. 이 길은 중산간 지역 해발 600~800미터 정도에 과거부터 있던 병참로와 임도, 표고버섯 재배지의 운송로 등을 활용해 조성하고 있는 숲길이다. 한라산 자락을 휘감아 도는 숲길로서, 아직 완전한 둘레길로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머지않아 완전한 순환 형태로 완성될 것으로 기대된다.

 

절물휴양림 부근의 돌박물관에 늘어서있는 석상들

 

이 길은 모두 연결되면 총 80km에 달하는 긴 걷기 코스가 만들어지게 된다. 현재는 천아숲길, 돌오름길, 동백길, 수악길, 그리고 사려니숲길 등이 열려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길은 사려니숲길이다. 이 길은 제주도 사람들이 모두 자랑으로 여기는 삼나무가 빽빽하게 우거진 길이다. 삼나무 숲이 수려하게 조성되어 있어서 사람들이 이 곳을 즐겨 찾는다. 또 이 숲길은 울창한 나무들 덕분에 각종 영상이나 광고를 촬영하는 곳으로 각광받기도 한다.

 

돌박물관 산책로.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는 돌과 제주의 ‘퐁낭’이 잘 어우러지는 풍경이다

 

국립제주대학교 캠퍼스를 한 바퀴 도는 제주대 올레길의 일부

 

천년이 넘은 비자나무가 있는 비자림 안의 산책로

 

비자나무와 함께 살고 있는 식물들(기생식물인 듯)이 햇빛에 반짝이는 모습이 아름답다

 

 

한라산 등반로. 잘 정비되어 있어서 전문 등산장비를 갖추지 않아도 진달래밭까지는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다        한라산 등반로 옆으로 설치되어 있는 모노레일. 등반로 정비나 비상 상황에 이용할 수 있도록 설치되었다

 

그러나 이 길 전체는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올레길과는 달리 각각의 코스와 대중교통이 모두 잘 연계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이 길을 걸을 때는 이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 또 각각의 독립적인 코스를 서로 연계하여 하나의 길로 조성해 나가는 길이므로 이에 대한 정보도 필요한 길이다.

 

이외에도 소규모로 조성된 길들 역시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괜찮다. 국립제주대학교를 걸어서 경험할 수 있는 제주대 올레길이나 절물, 서귀포, 교래, 붉은오름 등의 자연휴양림에 있는 산책로, 비자림이나 돌공원 같은 관광지 안의 산책로 등도 추천할 만하다. 그리고 건강이 허락한다면 한라산 등산로를 따라 백록담을 경험해 보는 것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정상까지 등산이 어려운 사람은 영실 코스를 이용하여 멀리서 정상을 바라보는 것도 한라산을 경험하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한라산 정상 백록담. 구름이 산정을 가려 신비로운 모습이 연출되고 있다

 

이렇게 모든 길을 다 걸어 보는 것도 좋겠지만, 제주를 여행하려면 무엇보다도 그 여행을 위한 주제를 선정하여 시도하는 것이 더 효율적인 여행이 될 수 있다. 제주는 지루함의 끝판왕처럼 올랐다 내려오는 한라산의 높이만큼이나, 혹은 이어지고 이어지는 해안선만큼이나 많은 이야깃거리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섬이 갖고 있는 신화나 전설도 그렇거니와 최근세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건들로 얼룩진 곳이 제주이며, 그에 따른 사연도 셀 수 없이 많은 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