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번 도로는 동해안을 따라 남북으로 길게 이어지는 도로다. 시작이 부산이라면 그 끝은 강원도 고성이다. 그 길을 경험하기 위해 서울에서 일부러 부산까지 내려갈 것까지야 없겠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부터 그 길이 그리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한번 시도해 보는 것도 그 그리움을 해결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부산에서 출발하여 포항을 거쳐 영덕과 울진을 지나 더 북쪽으로 계속 가보는 것이다. 걸어서 가든 자전거를 이용하든 자동차를 운전해 가든, 어떤 교통수단을 이용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 길을 경험해 보는 것이다.

 

7번 도로의 북쪽 끝, 고성의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쪽 해안. 저 멀리 해금강이 바라보인다.

 

동해안 어느 곳에서나 흔히 접할 수 있는 바다 풍경

 

포항은 이른 아침의 도시다. 남쪽 땅에서 가장 먼저 새 날이 되는 곳, 그곳이 포항이다. 그중에서도 호미곶은 새벽이 제일 먼저 밝아오는 곳이다. 이곳 해맞이광장 앞 바다 한가운데 우뚝 서 있는 조형물인 상생의 손은 광장 위에 있는 다른 손과 짝을 이룬다. 바다에는 오른손, 광장에는 왼손이 있다. 두 손이 서로 마주보도록 한 것은 인류가 서로 화합함으로써 평화로운 세상을  꾸려나가자는 의미이다. 새벽에 의해 어두움이 물러나듯이, 조화를 통해 불화를 물리치고 상생을 통해 더 나은 삶을 추구해 나가는 뜻을 담은 조형물이다. 또 포항이 이른 아침의 도시인 것은 그곳에 우리나라의 산업을 이끄는 산업 현장들이 있기 때문이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제철소를 향해 출근하는 자전거와 자동차들을 대하면 누구나 그 도시가 이른 아침의  도시인 것을 인정하게 된다.

 

포항 호미곶의 해맞이광장 앞 바다에 있는 ‘상생의 손’ 조형물

 

영덕 사람들은 일찍부터 푸른 바다에 주목했다. 뜻있는 사람들은 그 푸른 바다에서 건져 올리는 각종 수산물에만 만족하지 않고, 거친 바윗돌로 구성된 바닷가에서 푸른 바다를 깊이 감상하며 수행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길을 개발해냈다. 그래서 그 이름도 영덕 바다의 푸른빛을 띤  블루 로드다. 지금보다 더 불행했던 과거, 남북이 서로 총부리를 겨누고 눈을 부라리던 시절에 군인들이 해안 경비를 위해 만들었던 참호를 잇는 순찰로를 갈고 다듬어 사람이 걸을 수 있는 아름다운 길로 변신시켰다. 그리고 그 길의 한 지점에 영덕 사람들이 자랑으로 여기는 항구가 있다. 강구항은 백두대간부터 흘러내려오는 오십천이 바다와 만나는 곳에 형성되었다. 그래서 풍요로운 항구다. 배가 떠나 쓸쓸함이 가득 묻어나는 우울함이 있는 항구가 아니라 만선이 되어 들어오는 배들로 북적이는 기대 넘치는 항구다.

 

영덕 블루 로드의 코스 중에 있는 대게 조형물

 

영덕의 한 한옥마을에 있는 아담한 한옥집. 분가한 집이라서 본가보다 한 치 낮게 지었다고 집주인이 귀띔했다.

 

암울했던 시절에 울진과 삼척은 반공교육에 늘 등장하던 지명이었다. 두 지명 중 울진의 이름이 앞서 있기 때문에 그 부정적 의미는 다른 곳에 비해 배가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50+같이 나이가 웬만큼 든 사람 아니고는 울진에 대해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오늘날의 울진은, 핵발전에 찬동하든 찬동하지 않든, 모든 사람에게 발전소로 유명해진 고장이 되었다. 실제로 울진 사람들은 이 발전소 덕분에 복지 차원의 혜택을 일부 누리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혜택에도 불구하고 바닷가에서 순수하게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그것과 크게 상관하지 않고, 거센 바람이 몰아치던 겨울이 지나고 배를 띄울 수 있는 새봄이 오면 풍어제를 올리며 자연의 이치를 따라 때 묻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울진의 핵발전소 전경. 송전탑의 왼쪽으로 발전소 건물의 일부가 보인다.

 

울진 어느 바닷가 마을에서 열린 풍어제의 일부 장면

 

이러한 순수한 삶은 삼척이나 동해에서도 계속된다. 사람들은 여전히 오랫동안 해 오던 일들을 거부하지 않고 습관처럼 살아간다. 이들이 사는 터전의 서쪽은 높은 산이 자리 잡아 막혀 있기 때문에 대부분 사람들은 바다에 의존한다. 어떤 사람은 어구를 만들고 어떤 사람은 물고기를 잡고 어떤 사람은 그것을 손질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것을 판다.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은 이러한 일을 돕는 것이 생업이 된다. 부모들이 했던 대로 자신의 일을 하며 그 지역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포구의 경매 현장. 소규모 경매이지만 표정은 모두 진지하다.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손질하는 아낙

 

더 북쪽으로 올라가면 서울의 먼 동쪽에 있는 강릉, 커피 한 잔으로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수 있는 곳이다. 평창동계올림픽의 개최지이기도 했던 강릉은 올림픽 덕분에 KTX 선로가 연결됨으로써  서울에서 접근하기가 훨씬 편리해졌다. 또 여전히 해돋이를 보기 위해 정동진 가는 무궁화호 열차는 젊은 연인들의 선호 수단이며, 전국 각지에서 건어물을 사기 위해 단체 관광 오는 아주머니들의 웃음소리 가득한 주문진은 전세버스로 북적인다.

 

강릉의 정동진역. 모래시계라는 드라마로 유명해진 이후 젊은 연인들에게 인기 있는 데이트코스가 되었다.

 

7번 도로에서 가장 아름답고 높은 산은 설악산이다. 이 산은 서쪽으로는 인제에 접해있지만 동쪽, 즉 외설악은 아래부터 양양과 속초 그리고 고성에 속해 있다. 7번 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서울에서 출발하여 북면 삼거리를 지나 한계령을 넘으면 천년 고찰 낙산사로 유명한 양양이다. 지난 2005년 산불로 잃어버렸던 낙산사는 최근에 와서야 재건되었다. 사실 이 절은 고려시대에는 몽골의 침입으로,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초기에는 한국전쟁으로 여러 차례 소실된 적이 있듯이 화재와 악연이 깊다.

 

화재 이전의 낙산사 입구. 화재로 소실된 절집들은 모두 복원되었고 국가의 보물로 지정되었던 동종 역시 복원되었으나 다시 보물로 등재되지는 못했다고 한다.

 

 황태로 유명한 용대리를 지나 미시령을 넘으면 속초에 다다른다. 속초의 아바이 마을에 살던 어른들 이야기는 우리의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드러내 주기 때문에 보고 듣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지만 그 세대는 스러져가고 있고, 오늘날에는 후대이거나 외지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때문인지 마을의 분위기는 예전 같지 않아 보인다.

 

고가도로 위에서 본 속초의 아바이마을. 이 마을을 시작했던 세대들은 대부분 세상을 떴고 지금은 그 후세들이나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용대리에서 진부령을 넘으면 고성이며 더 위쪽으로는 구글 지도에도 정확히 표시되지 않는 곳이다. 그 끝에 통일전망대가 있다. 분단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7번 도로를 이용하면 서쪽으로는 설악산을 동쪽으로는 푸른 동해바다를 보며 이 세 지역을 지날 수 있다. 그리고, 그 길을 가다 보면 마침내 더 갈 수 없는 곳을 만나게 된다.

 

고성의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가는 길. 자동차길과 철길이 나란히 가고 있다.

 

원래 ‘길’이라는 것이 주는 의미는 그 끝이 어딘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긴 것은 바로 길이며, 사람들이 만든 모든 것 중 가장 긴 것이 길이라는 것을 부인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군다나 길은 한 가닥으로만 나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로 연결되어 있어서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그 끝이 어딘지 확인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 7번 도로에는 끝이 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보고 싶지 않지만 볼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끝이 ‘없는’ 길에 끝이 ‘있다’는 부조화를 이 도로에서 발견하는 서글픔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그 ‘끝’을 없애기 위해서라도 이 도로는 부지런을 떨며 열심히 가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열심히  다니다 보면 언젠가는 그 ‘끝’이 사라지고 마침내 길이 열리며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리라고 믿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