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퇴계 오솔길’ 하늘과 구름, 강물과 바람소리, 햇살, 새들의 합주, 강변 단애, 그리고 숲 사이 오솔길. 있을 게 다 있다. 언제나 거기에 있어온, 본래 그러 한 채로 있는, 자연스러운 자연의 저 완전한 충 만. 그래서 아름답고, 그렇기에 신성하고, 그럴 수밖에 없도록 진실하다. 사람 안엔 결핍된 수 려한 맑음과 밝음으로, 그지없이 온전한 자연 다운 푸른 아우라를 뿜으며 순수의 향연을 펼친다. 모두가 청량산의 식솔들이다. 저만치서 우뚝한 청량산의 모성을 젖줄 삼아 태어나거나 성장한 낙동강과 야산들과 나무들이 오케스트라처럼 어우러져 풍경의 절창을 빚어낸다. 청량산이라 하면 생각나지 않는가? 청량산인(淸凉山人)이 란 호를 쓰며 줄곧 청량산을 사랑한 사람, 도학 (道學)의 부흥을 평생사업으로 삼으며 수많은 저작을 쏟아냈던 공부벌레, 천 원짜리 지폐의 인물 도안에 불려나온 영감님. 바로 퇴계 이황 (1501∼1570)이시다.

 

\

 

이 숲길에 ‘퇴계 오솔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건 퇴계가 거닐었던 길이어서다. 퇴계의 시구(詩 句)에서 따 지은 ‘예던길’, 혹은 ‘녀던길’이라는 이름으로도 부른다. 청량산 자락에서 모태를 박차고 나온 퇴계는 평생 청량산을 애지중지했 다. 끝내는 청량산 자락에 묻혔다. 그는 소싯적 부터 청량산에 들어가 공부를 했다. 기력이 쇠 한 노년에도 느릿느릿 산언저리를 산책하기를 좋아했다. 그러하니 지금 내가 걸어가는 이 숲 길에 퇴계의 숨결이 감돌 수밖에. 퇴계가 내딛 었던 발길에 내 발자국이 포개지고 있을 테니  홍복(洪福)이다. 퇴계 오솔길은 퇴계 종택에서부터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길 50여 리 구간에 걸쳐 있다. 도산면 가송리 농암종택 일대의 강변 오솔길이 단연 백 미다. 농암 이현보(1467~1555)는 34세 연하의 퇴계와 격의 없는 교유를 했다지. 서로의 거처 를 방문해 즉흥시를 주고받고 술잔을 주고받았 다. 덧없는 세사와 뜻 깊은 자연을 교감했다. 이 연상연하 커플의 교제는 문사들답게 낭만적이 었다. 실천적 도학자들답게 준절했으며, 산천 애호가들답게 관조적이었다. 숲길에 강물소리 들이친다. 맑고 세차고 기찬 물줄기와 고요하게 좌정한 나무들의 숲길이 동 행을 하니 절경이다. 숲에서 강으로, 강에서 숲 으로 불어제치는 바람의 거친 애무에 산천이 부 르르 통째 몸을 떤다.

 

 

가을 들꽃들로 오솔길이 밝다. 핀 꽃술이 바람 에 너울거리는 억새, 청초해서 애틋한 쑥부쟁 이, 살랑살랑 몸 흔들어 향을 뿜는 산국(山菊). 저 멀리 도시는 소음과 매연의 저주에 붙들려 있지만 이 숲길엔 가을꽃 향 그윽하니 이방(異 邦)이다. 숲길 어간의 쉴 만한 자리에 이르자 물 가에 도드라진 너럭바위가 보인다. 퇴계가 그 이름을 지었다는 경암(景巖)이다. 자연을 통한 격물치지(格物致知)와 궁구(窮究)를 일삼았던 퇴계는 이 바윗덩어리를 보고 버릇대로 시 한 수를 지었다. 천년을 변함없이 흐르는 물과 부 평초처럼 덧없는 인간사를 빗댄 시를. 길을 돌아 나와 고산정(孤山亭)에 닿자 다시 시 야에 가득 차오르는 찬연한 풍광! 가슴이 두근 거린다. 강물과 단애(斷崖)와 산이 합작한 풍경 의 드라마를 속수무책으로 멍하니 바라만 볼 뿐 이다. 아, 이 견디기 어려운 난해한 세상 속에도 개결한 세상이 있었구나! 풍경의 매혹에 고단 한 인생을, 별 볼 일 없는 삶의 남루를 돌아보게 된다.

 

 

고산정은 퇴계의 제자 금난수(1530~1604)가 세운 정자다. 퇴계는 자주 고산정을 찾아 노닐었다. 주변 일대의 가경을 한눈에 쓸어 담을 수 있는 이 누각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시를 두레박으 로 길어 올렸을 퇴계의 심취한 모습이 환(幻)처럼 정자에 아롱진다. 이곳 에서 수많은 시편을 썼다 하니 말이다. 나는 퇴계를 뵌 적이 없고, 고인(古人) 역시 나를 알 바가 없다. 그러나 유 려한 숲을 서성이며 종일 퇴계를 만난 것만 같다. 퇴계를 생각하면 왜 심 장이 뛰나. 그는 자신의 기질이 산야(山野)와 닮았다 했다. 독일의 거장 괴 테가 울고 갈 만한 학문의 숲을 쌓았다. 그러고서도 겸양으로 일관했다. ‘학문의 길은 구할수록 멀었다’고 토로하지 않았던가. 퇴계의 풍모는 임종 때 더욱 빛을 발했다. 국장(國葬), 그런 거 부질없다. 비석도 세우지 마라! 그는 그리 당부했다. 이승을 떠나는, 이토록 가뿐한 행보를 본 적이 있는 가?

 

박원식 소설가 사진 주민욱 사진작가(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