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형의 한문 산책<늦봄>

 

 

늦은 봄을 노래한 시 중 필자가 좋아하는 시는 두보(杜甫)의 ‘곡강(曲江)’이다. 이 시는 두보가 47세 되던 AD 758년 늦은 봄, 좌습유(左拾遺) 벼슬을 할 때 지은 작품이다. 좌습유라는 벼슬은 간언(諫言)을 담당하던 종8품의 간관(諫官)이다. 당시 그는 오랫동안 알고 지내온 재상(宰相) 방관(房琯)이란 사람이 죄목을 뒤집어쓰고 파면되는 일이 발생하자 ‘죄가 가벼우니 대신을 파직함은 옳지 못합니다(罪細不宜免大臣)’라는 상소를 올린다. 그러자 숙종(肅宗)은 매우 노하여 삼사(三司)를 시켜 두보를 문초하게 한다. 이때 재상 장호(張鎬)가 얘기하길, ‘(간관인 두보가 간언한 것을 가지고) 죄를 묻는다면 그것은 간관의 언로를 막는 것입니다(甫若抵罪絕言者路)’라고 하여 이 일은 일단락된다. 그러나 황제의 눈 밖에 난 두보는 여름이 되자 결국 화주(華州) 사공참군(司功參軍)으로 좌천된다. 이 시는 당시 황제의 눈 밖에 난 두보가 좌천되기 이전, 자신의 괴로운 심정을 늦봄에 실어 읊은 걸작이다. 2수 중 첫 번째 시의 전련(前聯)을 먼저 살펴보자.

 

一片花飛減却春(일편화비감각춘)

한 조각 꽃잎이 날려도 봄빛이 줄어드는데

風飄萬點正愁人(풍표만점정수인)

만 점 꽃잎이 바람에 흩날리니 정녕 사람을 시름 잠기게 하네

且看欲盡花經眼(차간욕진화경안)

장차 다 지려는 꽃잎, 눈앞을 스쳐가는 것을 보노니

莫厭傷多酒入脣(막염상다주입순)

몸이 많이 상했다 하여 술 마시는 것을 마다할 수 있으리오…

 

한 조각 꽃잎이 날려도 봄빛이 줄어든다’는 의미의 ‘일편화비감각춘(一片花飛減却春)’은 참으로 뛰어난 명구로서 역대로 수많은 문인들에 의해 애송되어왔다. 이 구절은, 대조를 이루는 ‘하나의 나뭇잎이 떨어지는 걸 보고도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안다’라는 의미의 ‘일엽낙지천하추(一葉落知天下秋)’ 구절과 더불어 각각 봄이 짐과 가을이 옴을 읊은 천고의 절창으로 꼽힌다. 황제의 신임을 잃은 신세에, 떨어지는 꽃잎을 보니 어찌 심란하지 않았겠는가? 마지막 구절을 보면 ‘몸이 이미 많이 망가졌다(傷多)’는 표현을 통해 심적 고생이 이미 건강을 해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 시를 짓고 난 뒤 두보는 같은 제목의 두 번째 시를 짓는다. 이 시의 전련에는 ‘인생칠십고래희’라는 유명한 시구가 등장한다.

 

朝回日日典春衣(조회일일전춘의)

정에서 돌아오면 날마다 봄옷을 저당 잡혀

每日江頭盡醉歸(매일강두진취귀)

매일 강가에서 만취하여 돌아온다

酒債尋常行處有(주채심상행처유)

외상 술값이야 으레 가는 곳마다 있기 마련…

人生七十古來稀(인생칠십고래희)

사람은 예로부터 70년 살기도 드문 일 아니겠는가

 

이 시를 보면 그는 더욱 심해진 마음고생을 술로 풀고 있음을 보여준다. 어차피 칠십도 못 사는 인생, 몸을 아낄 필요가 있겠냐고…. 이어지는 후련(後聯)이다.

 

穿花蝶深深見(천화협접심심견)꽃을 파고드는 호랑나비 깊숙이 보이고

點水蜻款款飛(점수청정관관비)물 위를 스치는 잠자리 사뿐히 날아오르네

傳語風光共流轉(전어풍광공류전)말을 좀 전해다오, (우리 인생과) 함께 흘러가는 경치에게…

暫時相賞莫相違(잠시상상막상위)“잠시나마 함께 즐기면서 서로 거스르지 말자고”

 

두보는 자신이 존경했던 도연명의 <음주시> 형식을 빌려 아름다운 봄날 경치에 대한 자신의 헌사를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다.

 

하태형(河泰亨) 전 현대경제연구원장

아호는 양우養愚. 1958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와 KAIST 대학원에서 경영학과 경영과학을 전공했다. 미국으로 유학하여 뉴욕주립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수원대 금융공학대학원에 교수로 복귀하여 강의하고 있다. 오랜 소망이었던 서예와 한학을 다시 공부하게 됐다. ‘난정서’를 접하게 된 이후 국내외 문헌을 찾아가며 난정서 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 저서로는 <난정연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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