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와인 최고의 재료는 자긍심이죠”

 

와인은 역사상 인류가 가장 오래 즐긴 술로 꼽힌다. 최근에는 미국의 사우스플로리다 대학 연구팀이 학술지를 통해 시칠리아 동굴에서 6000년 된 와인을 발견했다고 발표 했다. 기존 가설보다 3000년이나 앞선 것이다. 역사가 오래된 만큼 우리 조상들도 일찍부터 와인과 접해왔다. 사료에는 중국 원나라 쿠빌라이 칸이 사위로 삼은 고려 충렬왕에게 포도주를 하사했다는 기록도 나온다. 본격적으로 국내에 와인이 소개된 것은 조선 후기 선교사들을 통해서다. 그런데 오랜 인연에 반해 실생활 속에서 왜 우리 와인은 찾아보기 어려울까. 충북 영동의 한 와이너리를 찾아 우리 와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컨츄리와인이 직접 재배하는 포도밭

 

 

현재 국산 와인은 충북 영동과 경북 영천이라는 두 축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곳 이외에 전북 무 주와 경기 포천에도 많은 와이너리가 운영되고 있 다. 현재 국내 와이너리는 150여 곳 이상 될 것이라 고 업계에선 추산하고 있다.

충북 영동의 대표적 와이너리 중 한 곳으로 꼽히 는 컨츄리와인은 3대째 와인을 만들어오고 있는 와 이너리다. 컨츄리와인의 시작은 1965년으로 거슬 러 올라간다.

 

재 컨츄리와인의 대표 김덕현(金德賢·34)씨의 할아버지인 김문환(金文煥)씨는 일제 강점기 미크로네시아로 강제 징용을 떠나게 된다. 한때 스페인의 영토였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지배를 받고 있던 당시 그곳에서 김문환씨는 스페인 병사와 친분을 쌓게 되고 포도와 와인의 매력에 대해 눈을 뜨게 된다. 영화 같 은 이야기다. 해방 이후 고향인 영동으로 돌아와 포도농사와 포도로 가양주를 만들기 시작한 것이 1965년이다.

그리고 그 뜻을 2대 김마정(金摩廷·63)씨가 이어받아 2010년 개인농가로는 최 초로 주류제조면허를 취득해 본격적인 와인 생산에 나서게 된다. 현재는 3대인 김덕현씨가 생산과 판매 모두를 책임지고 있다.

 

한국의 와이너리가 살아가는 법

2대 김마정씨가 혼자 공부해 와인 제조에 뛰어든 독학파라면 3대 김덕현 대표 는 정통 학구파라 할 수 있다. 미대를 졸업하고 업계에서 활약하던 디자이너였 던 김 대표는 2009년 직장을 그만두고 와인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국내 와인 스쿨을 통해 기초를 닦은 후 대학 와인발효·식음료서비스학과에서 다시 공부했다. 소믈리에 자격증도 받았다. 이후 프랑스 보르도부터 LA 나파 밸리, 호주 바로사 밸리 등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갔다. 그 국가들 중 컨츄리와인은 어디서 많은 영향을 받았을까. 의외의 답이 나온다. 바로 일본이다.

 

“일본 와인시장의 80% 정도는 자국산 와인이에요. 그만큼 와인의 품질도 높고, 소비자들도 일본 와인 을 인정해주죠. 자국 와인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또 스시와 같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일본 음식의 파트너로 세계시장에 많이 소개되어서 국제적으로 도 알려지기 시작했어요. 그에 반해 우리는 와인시 장의 95% 이상이 수입 와인이에요. 국산 와인에 대 한 평가도 아직은 낮은 편이고요.”

 

국산 와인이 외산과 경쟁이 어려운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높은 주세(酒稅)에 있다. 수입 와인은 FTA로 인해 관세가 사라져 저가로 유통이 가능하지만, 국산 와인의 경우 ‘전통주’에 속해 높은 주세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반면에 전통주의 범주에 속한 만큼 갖게 되는 장점이 있다. 바로 온라인 판매의 허용이다. 그동안 전통주는 우체국 등 제한된 곳에서만 온라인 판매가 가능했 다. 하지만 국세청 고시 및 주세사무처리규정 개정안이 지난 7월 1일부터 시행되 면서 온라인 판매가 허용됐다. 실제로 컨츄리와인 역시 포털 쇼핑몰을 통해 온 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면서 우리 와인의 주 고객층이 많이 낮아졌어요. 그간 와 서 사가시거나 주문해주시는 분들의 연령은 40~50대가 대부분이었거든요. 그 런데 온라인 판매가 시작되면서 20~30대 고객이 늘었어요. 입소문을 타서인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서울 홍대나 강남에서 저희 와인이 식당을 통해 소개된다 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1 발효 과정에서 짓이겨진 포도를 저어주는 모습. 발효기간에 따라 당도가 달라져, 이를 통해 드라이 와인과 스위트 와인을 구분해 제조한다.
2 컨츄리와인에서 판매 중인 제품들. 3 김덕현 대표는 와인 숙성 과정에서 주기적으로 시음을 통해 상태를 점검한다.

 

 

국산 와인 깔끔한 과일 향이 특징

김 대표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와인의 특징을 깔끔 한 과일 향으로 정의한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대표적 포도 품종으로는 캠벨 얼리(Cambel Early)가 있어요. 가장 재배가 많이 되는 품종인데, 과일 향이 무척 강해요. 가볍지만 깔끔한 맛이라서 특히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어요. 가벼운 디저트와 잘 어울린다고 평가받죠.”

 

국내 대표 품종인 캠벨 얼리는 수입 와인과 국산 와 인 맛의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요소로 지목된다. 수 입 와인에서 많이 쓰이는 품종은 카베르네 쇼비뇽 (Cabernet Sauvignon), 피노 누아(Pinot Noir), 시 라(Syrah), 메를로(Merlot) 등이 있는데 캠벨보다 타닌 성분이 많아 무겁고 떫은 느낌이 상대적으로 강하다. 오히려 이런 맛의 와인 재료로는 국내에서 는 포도(캠벨)보다는 산머루가 꼽힌다.

 

“캠벨과 산머루 와인 모두 또 하나의 특징을 갖는데 바로 단기숙성에 적합하다는 것이에요. 수입 와인 에 비교하자면 갓 만들어진 와인을 즐기는 보졸레 누보(Beaujolais Nouveau)에 가깝죠. 우리 와인으 로 장기숙성을 해보면 어떨까 하고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 여러 소믈리에분들이나 와인 애호가분들 과 평가를 한 결과 장기숙성엔 맞지 않는다고 결론 을 내렸어요. 컨츄리와인이 1년산과 2년산만 판매 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김 대표는 수입 와인에 비해 갖고 있는 경쟁력으로 안전 식품으로서의 가치를 꼽았다. 와인 역시 우리 가 먹고 마시는 음식인 만큼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 야 한다는 것이다.

“해외 와이너리의 경우 첨가물에 대단히 관대한 편 이에요. 특히 저가 와인일수록 그렇습니다. 와인이 숙성되는 과정에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산화 방지제나 보존제를 많이 쓰죠. 우리 와인의 경우 이 런 첨가물을 넣지 않으려고 멸균 작업을 별도로 진 행합니다. 파스퇴르 살균법이 라고도 불리는 저온 살균법으로 변질을 막고 있어요. 또 포도를 선별하 는 과정에서도 철저히 선별하고요. 최종적으로 병 입될 때까지 산소와의 접촉을 최소화하다 보니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는 양에도 한계가 있어요. 대량생 산 방식과는 거리가 있죠. 그래도 우리의 고집을 알 아주시는 애호가들이 꾸준히 찾아주셔서 자긍심을 갖고 와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국산 와인의 역사는?

우리가 직접 와인을 만든 기록은 찾기가 쉽지 않다. 포도를 으 깨어 설탕과 소주를 부어 가양주(家釀酒) 로 만들어 먹었다는 이야기는 일제강점 기까지 거슬러 올라 간다.

해방 이후 공식적인 최초 와인의 재료는 아이러니하게도 포 도가 아니라 사과였 다. 1967년에 파라다 이스 주식회사가 출 시한 ‘애플와인 파라 다이스’가 그것. 사과 의 고장 대구에 공장 을 차려놓고 12도의 사과주를 생산한 것 이 시작이다.

포도주로는 1968년 주식회사 한국 산토 리가 생산한 선리프 트 와인·로제 와인· 팸포트 와인이 꼽힌 다. 이후 한국 산토리 는 해태주조로 매각 됐다. 1977년에는 토 종 기술과 포도로 만 든 ‘마주앙’(구 동양 맥주·현 롯데주류) 이 나오면서 한국 와 인 역사에 새 장이 열린다. 1970년대에 정부가 식량 부족을 이유로 곡주보다는 과일주를 장려하는 정책을 펼쳐 한때 와 인은 큰 인기를 얻었 다. 그러나 수입 와인 이 소개되면서 국내 와인의 위세는 갈수 록 떨어졌다.

 

 

글·사진 이준호 기자 jhlee@etoday.co.kr